보훈, 계층과 이념 간극 넘어야
일류 보훈 구현 기반 일단 마련
한국 정부에서 유독 잦은 부침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국가보훈처가 거듭났다. 국가보훈부로 공식 출범했다. 호국 영웅들이 흘린 피와 땀방울 위에 오늘날 우리가 존재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예우하고 유족의 삶을 돌보는 건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다. 보훈이야말로 국방력과 애국심의 근간이다. 보훈정책 총괄 부서가 부(部)로 승격된 건 1961년 군사원호청 출범 이후 62년 만이다.
대한민국이 항일 독립운동가와 6·25전쟁 영웅의 숱한 희생 위에 세워진 나라임을 돌이켜 보면 만시지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제68회 현충일은 그 어느 해보다 뜻깊은 국가추념일이 됐다.
나라를 지키려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보훈 기구는 한국 정부에서 유독 잦은 부침을 겪었다. 1985년 장관급 국가보훈처로 격상됐다가 김대중정부에서 차관급으로 낮아졌고, 이명박정부에서 차관급 등으로 위상이 바뀌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상이 급변했다는 사실은 지난 60여년간 보훈 기능이 국가의 근간에 자리 잡지 못했음을 뜻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희생과 헌신의 용사들이 결코 잊혀져선 안 된다. 유가족들에게 합당한 예우가 소홀이 되는 국가는 결속력을 갖추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국가의 본질적 기능
갈수록 분열의 시대다.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의 극심한 갈등 속에서 국론을 모으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보훈은 계층과 이념의 간극을 넘어 국민이 하나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치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민 통합의 지난한 여정에 보훈부가 충분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보훈은 나라를 위해 산화한 이들에게 보답하고 예우하는 일로, 국가를 유지·발전시키고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본질적 기능에 속한다.
일류 보훈은 국가 구성원들을 운명과 기억의 공동체로 묶어 주고 국민 통합을 담보한다. 북한과 대치 중인 대한민국의 존립을 보훈이 결정 짓는다 해도 절대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61년 군사원호청으로 출발
1961년 군사원호청으로 출발한 보훈처는 1985년 ‘처’로 승격됐다가 올해 ‘부’로 격상됐다. ‘부’ 승격에 따라 헌법상 부서권을 행사하는 등 권한이 강화된다. 보훈부 출범으로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 과제에 들어가 있는 일류 보훈을 구현하는 제도적 기반이 일단 마련됐다.
보훈부 출범은 잘못된 보훈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27일 국가보훈처 업무보고에서 “보훈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라며 “보훈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침 보훈부가 ‘경제적 보훈 안전망’을 5대 중점 과제 중 하나로 설정했다. 국가 유공자와 유가족의 현실적 어려움을 보듬어줄 다양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충분한 재정적 뒷받침 속에 시행해가야 할 것이다. 전국 국립묘지의 관리와 운영도 보훈부로 이관된다. 특히 서울현충원은 우리나라 보훈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일상 속에서 보훈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도록 일반 국민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 무한한 보훈 예우
외국의 사례를 봐도 미국·캐나다·호주 등 여러 선진국들이 우리나라 ‘보훈부’에 해당하는 장관급 독립기구를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6·25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실종 미군의 유해를 찾고 있을 만큼 무한한 보훈 예우를 다한다.
국무총리 주재 국가보훈위원회는 보훈부 승격에 맞춰 국방부가 운영하던 서울현충원을 보훈부로 이관하고,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에 대한 경제·의료·생활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보훈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하면서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을 국정과제로 삼고 보훈처 격상을 우선과제로 추진해 왔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오래전부터 보훈 부처를 부로 운영해 온 다른 선진국에 비해선 늦은 성과로, 그사이 보훈 대상자들은 평균 75세로 고령화했고 상당수 보훈 가족이 생활고를 겪고 있다.
독립과 호국, 민주화 아우를 수 있어야
보훈은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기도 하다. 보훈이 특정 이념이나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듯, 보훈 정책은 독립과 호국, 민주화를 모두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재외동포청도 외교부 외청으로 출범했다. 인천 송도 청사에서 열린 출범식엔 윤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재외동포 정책·집행 기능이 한데 모이면서 동포 보호와 지원, 모국과의 교류·협력 등 정책 수행의 일관성이 높아지고 국적, 사증 등 민원 업무도 원스톱 처리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국가보훈위원회를 열어 국가보훈 정책 방향을 담은 ‘제5차 국가보훈발전 기본계획’도 발표했다. ‘국민이 하나되는 보훈,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보훈문화,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체계, 자유세계와 연대하는 보훈외교를 3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회의를 주재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가 보훈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이라며 “한 나라의 국격이자 국가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말했다.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리도록 가꿔갈 책임
보훈부와 재외동포청 출범은 정부가 당면 과제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의 존립 기반과 확장 가능성에 정책적 관심을 돌렸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의 위상과 국격에 걸맞은 미래지향적 정책 노력이 계속 뒤따르길 기대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이 많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경찰, 군인, 소방관으로서 제복의 무게를 견디며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제대로 예우해야 한다. 제복을 입은 이들을 존경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우리 모두가 할 일이다.
영웅을 기리지 않으면 미래의 영웅이 나오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리도록 가꿔갈 책임이 보훈부에 있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