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과 이상(理想)의 간극, 역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가장 큰 틀의 ‘한얼정기’ 회복은 ‘남북통일’
= 한민족 초강대국 부상 수순 ‘弘益人間과 경제’ 중심
파쟁(派爭)에 급급한 사회 각계 고질적 행태
= 고(故) 김수환 추기경, “내 탓이오” 사회운동 대안 제시
허물어진 弘益人間 정신, 실사구시 재착근 세계화 시켜라
= 李舜臣 정신, 정의와 불의의 전쟁 자력(自力)으로 통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이 글은 한민족 7800만 동포에 띄우는 ‘역사의 便紙’ 이다. 우리 민족의 단군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기뻐하는, 사실상 모든 思想의 아버지다. 모든 종교를 섭렵하고 포용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은 그 실천 이념을 대표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 이념은 오늘 세계화적 실사구시를 망라하고, 민족혼의 핵심이 바로 그곳에 있음을 알린다. 이것이 진정한 민족주체다.
역사는 역사를 부르고, 그것은 또 다른 역사를 낳는다.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맞물려 돌아간다. 동서고금을 망라, ‘홍익인간’의 실천을 위배하면 현실과 이상(理想)의 간극 만큼, 역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오늘의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다. 민족혼과 양심의 문제로 귀결된다.
대표적 편린은 많다. 우선 남한의 현실만 보자. 단군 사상의 본류는 한없이 흐트러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를 둘러싼 풍경들은 참담함 그 자체다. 민족혼의 정통성과 조국애(祖國愛)에 대한 자부심을 거부하는 좌파(左派)가 정치와 사회에 온갖 악영향을 끼치는 나라가 됐다. 국가 정신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다.
일 예로, 우리 국회와 정부의 적나라한 민낯들은 어떤 모습인가. 한 실토는 이렇다. “여야간 정쟁은 물론이고, 행정부조차 전 정권의 알박기 인사가 가득해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게 중진 여당 의원이 전한, 국가 지도부의 현실이다. 분열과 증오가 일상화된 사회다. 윗물인 정치의 탐욕이 진원지가 되어 함께 추락하는 국격이 만신창이가 됐다. 공감·통합으로의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다. ‘홍익인간’은 이미 전면 파괴됐다. ‘홍익인간’에 입각한 강력한 새로운 테제(These)가 다시 던저져야만 한다.
지상명령 ‘홍익인간(弘益人間)’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이해·존중해 보려는 것이 진정한 공감이요 단합 노력이며, 홍익인간 정신이다. 스스로 정직해야 가능한 격이다. 또 하나, 정파나 자기보다 국가와 공동체를 우선해야 통합을 이룬다. 헌신, 자기희생을 우선해야 할 터다. 이 역시 홍익인간 맥락이다.
남북관계는 최대의 화두이자 현안이다. 이 또한 인간주의(人間主義)가 그 중심에 서야한다. 인간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진실로 이롭게 해야 한다는, 민족전래의 유구한 민족혼,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의 투철한 구현을 역사적 지상명령으로 요구받는다. 그런 면에서, 엄청난 동족을 무차별 사살한 6.25의 상흔은 깊다. ‘홍익인간’을 무차별 짓밟았다. 아직도 갈등과 긴장의 연속일 뿐,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최대의 숙제, 민족통일은 여전히 역사의 간극이자 한(恨)으로 남아있다.
민족 범죄를 저지른 북한 공산집단 동포들은 한 점 부끄럼 없는, 철저한 회개의 토대위에서 민족혼의 대열에 동참토록 해야 한다. 단일민족 웅비의 시대를 다시 열어 진정한 세계화 한민족 중심시대를 펼쳐야 한다. 실로 하늘을 뚫는 꿈속의 황금마차(경제) 형세로 솟아 오르게 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남북 국가 구성원 개개인간의 참된 인간주의도 작동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목표는 민족 구성원 모두가 온 몸을 바쳐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깊고 높은 새로운 ‘홍익인간’ 한민족 시대의 창출(創出)을 의미한다. 우리는 할 수 있고, 또 해내야만 한다. 세기적 감명속에 화려한 새시대의 여명을 밝힐 수 있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러면, 우리의 참된 모습이 누구인지 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민족의 뿌리, 나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들 몸속에 내재된 민족 유전인자(DNA)에 확실히 응답해야 한다. 반만년 선조들이 물려준 혼(魂)의 위대한 용광로에서 거대 저력(底力)이 제대로 분출되도록 해야만 한다. 그 성격과 방법론, 그리고 귀결점을 본격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필자는 지난 집필 분 ‘국가 민족개조론’ 중에서 일부 핵심을 발췌, 이를 혼돈과 모순의 시대상황과 한반도 전체 민족구성원에 대한 강력한 처방책으로 보낸다.
세계적 기상 불굴의 민족정기
우리 한민족은 인류유일의 단일 백의민족이다. 유구한 반 만년 역사에서 한민족처럼 끈기있게 단일 민족의 찬란한 문화를 굳건히 이어온 민족은 없다.
지난 5000년 세월, 온갖 역경과 시련의 연속, 그리고 간단없는 외침(外侵)속에서도 한민족의 ‘피’는 그 통일된 순결성을 지켜왔다. 어떠한 도전과 역경속에서도 ‘민족혼’만은 뺏기지 않았다. 시대는 바뀌고, 국가와 정권은 흥망을 거듭해도 ‘한얼’의 ‘민족정기’만은 면면히 5000년을 관통해왔다. 수려한 삼천리 금수강산을 중심으로 ‘하나의 얼’을 반만년동안이나 영속시켜온 불굴의 민족정신은 우리의 세계적 기상이었다.
그 순결한 ‘한얼정기’는 우리가 앞으로 열어야할 21세기, 새로운 1000년 민족사 웅비의 발판, 그 자체이다. 그것은 민족정신의 재통일과 단결을 의미한다. 21세기 통일 한민족이 새로운 민족사를 개척할 수 있는 정신적 뿌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체적으로 각인해온 한민족의 반만년 문화, 그 총제적 본질은 무엇인가. 동방예의지국으로 상징되는 탁월한 도덕성의 문화는 독보적인 우리만의 긍지이자 자랑이었다. 또한 뛰어난 정신적 창의력과 근면성은 세계 최초 최장의 인쇄본 불교경전인 팔만대장경, 세계최초의 천문기상 관측소인 첨성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세계최초의 자연시계등 수많은 세계사상(世界史上), 시대를 앞서가는 기념비적 첨단 발명품을 낳았다. 우리는 그때만해도 최고의 과학국가였다. 세계각지의 정신토양인 각종 종교를 주체적으로 수용, 한민족 전통의 큰 그릇에 용해시켜 평화로운 공존을 이룩하게한, 지구상 유일의 다원적 ‘정신세계 평화공존의 땅’을 기록했던 것도 한반도였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21세기 새로운 1000년동안 세계 문화중심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흔들릴 수 없는 기초토양이 될 것임을 의미한다.
현 세기 인류문명 한민족이 치유
이는 곧 오늘날 도덕 해이와 분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현세기의 인류문명을 한민족이 치유할 수 있음을 기약하게 한다. 이는 곧 불세출의 한민족 창의력이 21세기 생명력과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인류문명을 이끌 역동적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 인류가 모든 민족, 모든 국가, 모든 단체, 모든 가정, 모든 개인간에 이기심을 떨치고,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한얼정신’으로 새롭게 무장, 새로운 세계문화사를 창조하게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는 한민족이 21세기 세계 문화혁명의 발원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될 것임을 기약케한다.
이러한 민족웅비의 장대한 지표앞에서 과연 오늘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 무엇을 삭제하고, 무엇을 배양할 것인가.
무엇을 도려내고 무엇을 수술해야 할 것인가.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고쳐야할 일인가. 무엇이 달라지고, 새롭게 태어나야할 일인가.
민족정기 현실진단
현실진단은 21세기 대비젼의 정치를 위한 1차적 검증작업이 된다. 문제의 본질은 역시 정신이다. 정신이 올바로 서야 사람이 올바르게 서고, 사람이 올바르게 서야 나라가 올바르게 선다. 민족적인 정신을 우리는 민족정기라고 부른다. 민족정기에 대한 현실진단은 그래서 앞으로의 처방을 위한 기본이자, 단서가 된다.
21세기 새로운 민족사 건축을 위해서는 우선, 향후 100년(21세기)을 위해 지난 20세기 100년간 우리의 모습을 현실진단의 시공간대로 설정해야 한다. 앞으로 100년의 도약대가 잘 구축되면, 그후 1000년은 기약된다. 조선조 역사는 이를 증거한다. 개국초의 피비린내나는 고통은 바로 500년 왕업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지난 100년의 과업을 압축 점검, 우리의 현실을 현실성있게 진단 분석하는 일은 그래서 필수적이다. 그 정확한 증상을 토대로 향후 100년의 나라 운영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 잘했던 것은 더욱 창조적으로 확대 발전시키고, 잘못했던 것은 과감히 수술, 폐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항구적인 새 민족사의 진정한 비젼은 비로소 제시된다. 새 역사의 지평은 열린다.
지난 100년 대혼란 시대
그렇다면, 지난 100년 우리의 현실은 과연 어땟는가. 조선조 500년 사직의 멸망과 외세에 국권이 통채로 넘어가는 한민족 최악의 사태, 일제침탈 망국으로부터 발단된 지난 100년 간의 ‘우리의 모습’은 한마디로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비운의 시기였다. 그 끈기있었던 민족정기는 좌절과 혼돈으로 갈기갈기 찢어지고, 한민족 특유의 가치관의 대혼란시대를 맞으니 온갖 사회병리, 국가파탄의 증상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것은 당연했다.
구한말 우리 조선민족은 개방개혁의 실패, 정치지도자들의 부패와 사리사욕, 일신영달을 위한 외세의존적 사대주의, 백성들의 사치낭비풍조 확산, 위선과 거짓의 사회풍조, 외래문화의 왜곡된 유입에 의한 우리 전통 미풍양속의 저해등 온갖 국가사회 와해현상 끝에 일본의 무력적 침탈이란 국가명운의 최후를 처참하게 맞아야 했다. 민족혼을 송두리째 외세 민족에게 갇다바쳤다. 말과 글로부터 여성의 정조까지 팔아넘겨 버렸다. 백의민족을 집어던지고 통한의 기모노를 입어야 했다. 여기서부터 민족문화의 가치관은 사실상 말살됐다.
일제통치 36년 우리의 정신적 뿌리는 철저히 유린됐다. 우리의 ‘혼’은 이미 옛것이 됐었다.
민족정기 능력 소멸
해방은 왔지만, 그것도 주체적이 아닌, 외세에 의한 것이었다. 외세에 의한 해방은 외세에 의한 민족분열을 또다시 몰고왔다. 가뜩이나 허물어진 방향잃은 민족정신 상황에서 업친데 덥친 격으로 또 외세에 의해 나라가 두 동강으로 잘려 민족간 분열과 반목의 시대가 몰려왔다.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외래의 서구가치관은 더욱 엄청난 혼돈과 부작용을 가속화 시켰다. 우리에겐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할 민족정기의 능력이 이미 소멸돼 있었다.
남한에서는 무분별한 국제사조를 방만하게 받아들이고, 정치적으로 어설픈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무조건 흉내내려다 온갖 역기능이 빚어졌다.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폭력과 무질서가 기승을 부렸으며, 군사부패 무력독재의 발호등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끝없는 권력투쟁의 정치가 더렵혀질 대로 더렵혀진 민족문화를 더욱 오염시켜갔다.
국민의식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진정한 민주적 가치의 성숙은커녕, 사회 곳곳에 반인륜 범죄, 이기주의와 사기, 사술 편법이 난무하는 불신병의 세상으로 한때의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은 침몰하고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무책임한 자본주의 실험은 마침내 한국전체를 부패와 타락, 부정과 사기,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 불평등과 불균형의 천민자본주의 경제국가로 전락시켜 버렸다. 나라의 중심을 잡을 주체세력이 없어지고, 주인없는 국가,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회풍조가 만연, 총체적 위기속에 재망국의 조짐은 갈수록 확연해졌다. 해방 50년의 역사흐름은 지론(枝論)면에서는 정권의 부침에 따라 다소 성쇄의 완곡은 있었으나, 큰 흐름에서는 줄곧 한국호를 회생불능의 구조적 파탄의 늪으로 침몰시켜간 역사국면에 있었다.
북한에서는 소련의 무력지원을 등에 업은 김일성 집단에 의해 오도된 공산주의 정권의 비인간적 독재전횡이 무참히 벌어짐으로서 민생은 도탄에 허덕이고, 현대사상 최악의 반인륜적 독재국가를 출현시켰다. 삐뚤어진 몰락의 민족사였다. 급기야 북한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기아선상의 사회상황을 연출, 최소한의 인륜마져 저버려야 하는, 민족사상 최악의 치욕을 세계만방에 드러내고야 말았다. 한민족의 위상에서 최악의 수모의 역사를 북한정권은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그 찬란했던 선조의 전통을 북한정권은 철저히 배신하고 짓밟았다.
가치관의 대(大)혼돈기
남북한을 통틀어 ‘홍익인간’에 바탕한 민족정기의 엄청난 퇴락이며, 한민족이 ‘한얼’을 송두리째 팽개친 가치관의 대혼돈기였다. 그것이 지난 1백년, 우리 민족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그 우수했던 우리의 주체적 민족가치를 현대세계의 혼잡한 가치물결에 휘말려 그대로 폐기해 버리고, 민족전체가 정치 경제등 총체적 외래문화를 멋대로 적용, 아노미(가치부재)의 공멸의 길로 들어서버린 시기가 바로 우리의 지난 모습이었다. 가치관의 공중분해였다.
이 엄청난 민족정기 퇴락의 질곡을 어떻게 근본 처방, 찬란했던 옛 정기를 다시 살려낼수 있을 것인가. 민족정신의 새로운 기반구축을 어떻게 성공시키느냐에 21세기를 앞둔 한국운명의 단서가 도사린다. 새로운 1000년의 민족사를 기약하는 대업의 기운은 민족정신 중흥에서 시작되야 옳다.
국민정신이 우선 건강하고, 주체적인 중심을 확고히 잡아야만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새로운 각론적 도약의 토대가 마련될 수밖에 없다. 모든 분야가 비로소 건강한 작동을 시작할 것이다. 정신자체가 문제다. 찬란했던 한민족혼이 다시 봉화를 올릴 수 있게될 것이다.
‘한얼’은 통일성과 단결성
이를 위하나 기본처방의 두 개 핵심축 가운데 하나는 ‘한얼정신’의 회복이며, 다른 하나는 ‘찬연했던 전통 정신문화’의 재구축이다.
첫째, 한얼정신의 현실적 재해석은 무엇인가. ‘한얼’은 한마디로 ‘하나’, 즉 통일성과 단결성을 의미한다. 유구한 5000년 하나의 민족으로서 통일성과 단결성의 기반위에서 이뤄지는 ‘홍익인간’의 단군 개국이념의 발양이 그 근본배경이다. 홍익인간,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하는 굳건한 단결의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크게는 정치이념적으로 분열된 남북간의 통일을 이루는 일로부터 시작, 집단간, 이웃간, 가정간, 개인간에 진정한 정신적 통합을 이루는 인간혁신, 인격혁신의 실행을 의미한다. 사회 곳곳에서 이 인성의 개조를 이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기본명제다.
모든 국가사회의 제도와 정책이 이 기본명제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철저히 사회 제반 구성요소의 이기심을 차단시키고, 나 자신이 아닌 남, 가정보다는 이웃, 개인보다는 전체를 위해 희생 봉사 헌신할 줄 아는 홍익인간의 ‘인류애적’ 가치관의 실현에 목표를 두고 전면 쇄신돼야 한다는 방향성을 필요로 한다. 항구적 민족도약 전략의 성공을 위해 사회제도적 정책적 ‘인성개조’ 처방은 그 출발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에워싸는 사회환경의 변혁을 말하는 것이다. 정책은 그렇게 가야만 한다.
가장 우선적인 큰 틀의 ‘한얼정기’ 회복은 남북통일이다. 21세기 남북통일의 정책적 제도적 처방의 기본방향은 무엇인가. 21세기 한민족 도약의 기본틀이 될 남북 통일 또한 ‘홍익인간’ 정신에 입각, 인류애적 가치관에 기초해 추구돼야만 한다. 남과 북이 서로가 서로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남북이 각기 집단적 이기심을 버리고, 인간애의 토대위에서 ‘한동포’라는 인식으로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를 통일전략의 잣대로 삼도록 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책임있는 당국인 남북 정권은 정권안보 또는 이데올로기 안보차원의 통일전략 측정기준을 과감히 폐기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 깊은 인류애적 ‘한얼정신’에 입각해 남북주민의 생활과 복리증진을 통일전략의 기본축으로 삼고, 이를 통해 남북주민이 단결력을 공고화, 세계로 뻗는 민족혼의 시대를 열어가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러한 통일달성 기본방향은 바로 구시대 고착화돼온 전세기의 정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철저 배격해야 함을 수반한다. 정치적 논리없이 순수한 민족복지증진차원의 경제통일- 체제통일-민족의식의 결집-해외시장 석권-초강대국 부상이란 수순이 한민족 웅비의 시대를 기약하는 첩경임을 말하는 것이다.
국가 힘의 기준, 이제는 “경제”
21세기 민족간 국가간 힘의 기준은 한마디로 민족의 경제력이다. 군사력과 영토확장으로 국력을 평가하는 시대는 이미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던져진지 오래다. 이제는 경제다. 인간애적 민족복지와 민족경제 번영의 극대화를 통한 한민족 신시대의 개막은 21세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중대한 소명이 될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전체가 ‘하나의 얼’을 가진 동질성으로 가도록 하는 첫발이 될 것이다.
다음, ‘한얼정신’ 회복을 위한 사회통합의 기초적 틀로서 우리는 정치세력간, 제집단간, 이웃간, 개인간의 통합을 이루는 제도적 정책적 처방이 필수적이다. 통합과 단결력을 이루지 못하는 한 우리는 21세기 조국의 미래를 위해 아무일도 실행해 낼 수가 없다.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앞서의 진단대로 현재 우리사회의 망국적 풍조는 분열과 극심한 이기주의, 부정과 편법이 난무,극도의 사회병리상태인 깊은 불신의 병에 빠져있다는 데 있다. 불신은 국가의 내부를 좀먹는 암적 존재로, 국가 만병의 근원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지 않을 정도의 불신상황에서는 어떤 지도자, 어떤 정치지도력도 백약이 무효다. 믿질 않으니 아무일도 될 일이 없다. 이 심각한 국가위기의 증상은 우리 민족사회가 이제 구한말 망국 100년만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집단 히스테리, 정신 분열증세로 까지 치닫기에 이르렀다는 진단을 받을 만 하다. 이를 근본적으로 처방, 건강한 사회통합의 기운을 다시 일으켜내야 하는 것이 이 시대 우리의 부름이다. 그러기 위한 정책 전략적 방향은 무엇보다 분열과 타락의 구정치 질서를 전면 타파, 새로운 형태의 국민통합 지도력의 페러다임을 창출, 강력하고도 낭비없는 능률적 권력체제의 틀을 구축하는데 있다할 것이다.
전통 정신문화 복원 과제
‘한얼정신’에 기초한 통일과 정치지도력의 통합외에 ‘민족개조’를 위한 다른 하나의 큰 처방기준은 ‘찬연했던 한민족 전통 정신문화’의 복원이란 문화적 각도다.
이의 달성전략과 정책처방은 1차로 교육에 집중된다. 국민교육의 대전환을 말한다. 국민인성을, 민족 주체성을 세우기위한 방향으로 바꾸는 교육체제를 의미한다.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유입과 범람으로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사회기강을 바로 세우고, 한민족 전래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되살려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내용과 방식,그리고 틀이 전면적으로 뒤바껴 져야한다. 한민족 주체성에 입각, 사회 학교 가정 개인을 망라해 교육이 실질 생활습관의 변화로 나타나도록 해야한다. 이를 뒷받힘하기위한 문화 창작활동 민족사 재해석 커리큘럼의 쇄신등으로 한민족 전통의 도덕적 생활가치와 사회봉사활동이 가장 중요한 국민생활의 실천덕목이 되도록 해야한다.
국민통합의 정치체제 혁신이 국가와 민족 개조의 하드웨어라면, 교육혁신은 곧 국민정신 개조의 소프트웨어가 된다. 이것은 결국 국민 인성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 그 인성은 우리 민족이 옛부터 면면히 이어온 공동체 생활의 예의 범절, 희노애락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인정많은 사회, 국악예술등 전통문화, 인내와 끝기, 근면과 창의력을 굳건히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을 겨냥한다. 이 변화된 국민인성의 토양위에서 과학과 기술과 산업과 경제를 올려 담아 확실한 토대위에서 21세기 민족 도약전략을 추진해야만 항구적 번영의 길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속절없이 붕괴되는 수출…현실 냉혹
허지만, 현실은 역시 냉혹하다. 현대사 전체가 그렇다. 한국 정치 74년, 민주화 35년. 마음속에 믿음이 아로새겨진 공감과 존중, 통합의 기억은 별로 없다. 사람과 사회, 국가의 품격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부디 후대들이라도 품격 사회의 시민 대접 받도록 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나라의 운명 좀 생각하며 사시라. 정치인들이여.
그렇다면, 실질적 현실은 과연 어떤가. 지난 임인년은 그야말로 격랑의 한 해였다. 실사구시의 핵심축인 경제는 지금 문제점 투성이다. 한국 수출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8개월 연속 무역적자에다 올해 11월 20일까지 무역적자 규모가 400억 달러에 달한다. 연간 최대 적자를 보였던 1996년(206억2000만 달러 적자)의 2배를 넘어서 사상 최대 적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글로벌 경기가 둔화하고 있긴 하지만 경쟁국인 중국·일본과 비교해봐도 우리 수출의 둔화세가 더 두드러진다. 일본도 우리와 유사하게 적자 규모가 크긴 하지만 수출 증가세가 우리보다 낫다. 또 다른 경쟁국인 대만의 수출까지 우리보다 호조세다. 주력 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크게 밀린다.
수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원인을 꼽자면 크게 두 가지가 지적된다. 하나는 주력 상품인 반도체와 다른 하나는 주력 시장인 중국에서 한국 상품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시장 상황이 단기간에 급변하지 않는다고 본다면 수출이 계속 고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도체 수출 부진도 중국의 ‘제로 코로나’로 인한 봉쇄 지속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 팬데믹 이후 재고 소진 과정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내년에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일부 종교성직자의 노골적 탈선
언론인 이학영 논설고문에 따르면 사회 분야에서, 일부 종교성직자의 노골적 탈선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깊은 병(病)에 걸려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직자 두 사람이 그렇게까지 혐오를 터뜨린 발단은 158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이태원 참사’다. 있어서는 안 될 어이없는 재난이 많은 사람 눈앞에서 벌어졌으니 국민들이 분노하고 애통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재난관리 시스템이 허술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고위공직자들의 처신과 행태가 얼마나 안일했는지가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의 실망과 증오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국정 최종 책임을 진 대통령에게 사고 원인과 전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응분의 조치,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과 그 부인에게 “제발 죽어라”고 대놓고 저주하는 글을 현직 종교사제들이 연거푸 올린 것은 충격적이고 경악스럽다. ‘일부 정신 나간 자들의 경거망동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정치적으로 현 정부에 반대해 온 거의 모든 집단이 “너희들, 잘 걸렸다”는 식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워 대통령 퇴진을 압박하는 집단행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두 사람이 저주의 기도문을 올린 것은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국가적 재난 앞에서 파쟁(派爭)에 급급해 재발 방지의 온전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 각계의 고질적 행태다. 304명이 희생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가 대표적인 예다. 원인 규명을 위한 수사와 조사가 아홉 차례나 실시됐고, 매년 700억~800억 원의 예산을 해양사고 예방에 쓰고 있는데도 해난사고가 되레 늘어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은 이처럼 어렵다.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데는 수십~수백 가지의 크고 작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부상을 당하는 데도 여러 가지 요인이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정치적 반대진영에 모든 책임을 몰아 씌운 채 정죄하고 저주하는 저급한 광기(狂氣)에서 이제라도 벗어나야 한다.
손호철 교수에 따르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지성적 논의, 합리적 논쟁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한 것은 누구 편, 어느 진영이냐는 편 가르기와 진영논리다. 비극적이지만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더 이상 지성이 아니라 진영논리에 의한 증오다.반지성과 증오가 ‘광기’의 수준에 이른 ‘광기의 사회’에 달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고 밉다 하더라도, 세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직자가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기를 빌며 국민들이 이 염원에 함께하기를 호소할 수 있단 말인가? 한마디로, 자기성찰이란 찾아볼 수 없는 ‘확신범’으로, ‘반사’에서 하늘이 내려준 사명감에 충만해 화형에 처할 이단과 마녀를 쫓던 중세 종교심판관들의 잘못된 정의감과 광기를 본다. 더 무서운 것은 일반 지지자들도 정치인 등이 조금만 자기성찰을 요구하거나 자기들과 다른 입장을 보이면 좌표찍기와 문자폭탄이라는 광기에 가까운 사이버테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천주교의 큰 어른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1990년대 우리나라에서 “내 탓이오” 사회운동을 펼친 이유를 모두가 새겨야 할 것이다.
현재 특히 우려되는 것은 정치권, 나아가 성직자, 지식인 같은 ‘사회지도층’들이 반목적 광기를 제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와 증오와 광기의 정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상업주의와 선정주의가 지배하는 SNS와 유튜브, 팬덤정치의 시대에 이 같은 광기에 편승하는 것이 자기 진영의 지지를 얻고 진영의 결속에 도움을 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회지도층만은 달라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사회지도층이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적대진영’에 대해서도 무조건의 증오 대신에 합리적인 논쟁과 절제를 실천하는 한편 이 같은 것들을 우리 사회에, 특히 자기 진영에 주문해야 한다. 새해에는 누군가 광기의 질주, ‘총만 들지 않은 사실상의 내전’에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
획기적 변화 요구
주영섭 교수에 따르면 세계는 지금 초변화 대전환 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 코로나 팬데믹, 신냉전 시대와 함께 세계 경제환경, 기술, 사람·세대, 자본주의, 경영철학, 기후 위기 등 모든 면이 광속으로 바뀌는 초변화 시대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 그린, 문명 대전환이 전방위로 일어나는 대전환 시대이기도 하다. 격변의 초변화 대전환 시대에 살아남고 발전하려면 단결이 필수적이다. 기업은 물론 국가도 개별 기업, 개별 국가로는 대응이 어렵고 기업 간, 국가 간 협력해야만 생존과 발전이 가능한 시대이다. 혼자서는 초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고 대전환의 방향을 가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경제의 주체인 기업과 정부는 협력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전략, 조직, 인사 등 일련의 경영 체계를 전면 혁신해야 한다. 기업은 경영 환경이 바뀌면 경영 전략을 경영 환경에 맞게 바꾼다. 전략이 바뀌면 그 전략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조직과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 기본이다. 과거 경영 환경의 변화가 완만한 시대에는 전략과 조직, 인사의 변화가 적어도 되었으나 작금의 초변화 대전환 시대에는 획기적 변화가 요구된다. 초변화 대전환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략, 조직, 인사 혁신이 필수적이다. 과거에 통하던 기준은 이제 폐기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부패와 불법에 도취해 있는 민노총
이러한 변화는 기업만이 아니라 정부의 국가 경영에도 적용돼야 한다. 새 정부가 시작되면 100대 국정 과제를 정하여 5년간 추진하게 되는데, 이 역시 과거에는 통할 수 있었으나 초변화 대전환 시대에는 혁신이 시급한 대목이다. 매년 숨가쁘게 변화하는 국내외 상황에 따라 국정 과제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10대 국정 과제를 추진 중인 현 정부도 초변화 대전환에 대응해 국정 전략, 정부 조직, 인사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노동운동도 그렇다. 혁신이 요구된다. 그 애잔한, 그리고 너무나 간절했던 모습이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초심(初心)이자 출발이었다. 노동운동의 선진화를 외면한 채 투쟁과 폭력, 부패와 불법에 도취해 있는 작금의 민노총을 보노라면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특권 노조의 ‘약자 코스프레’가 대다수 국민에게 무슨 감동을 주겠는가? 대한민국이 언필칭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임에도 각종 노사관계 국가경쟁력 지표는 일제히 100위권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현실은 누가 봐도 모순이자 기형이다. 화물연대 파업 철회는 차제에 본격적인 노동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노동운동의 변심과 변질이 노동 개혁의 매를 벌었다.
정치인들의 공(公)의식 실종
언론인 박제균 씨에 따르면 오늘, 현실 정치인들도 문제 투성이다. “내가 득점하는 것보다 팀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멘트다. 하지만 이는 스포츠 세계의 미담일 뿐. 어느 때부턴가 한국 정치에선 이런 정치인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팀의 승리(정권의 성공)보다 자신의 득점(당선)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작금의 여의도다.
‘나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를 앞세웠던 선배 정치인들의 공(公)의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그 대신 정치 영역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양 착각하는 ‘정치업자’들이 판친다. 여의도를 ‘정치 양로원’ 삼는 노추(老醜)들이 늘어만 간다. 심지어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으로, 대선후보가 광역단체장으로 격을 낮추며 한사코 방 빼기를 거부한다.
이러니 국회가 신인들의 충원을 막고, 권세와 생계를 동시에 챙겨주는 최고의 노인 일자리로 전락해가는 느낌이다. 정치를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정치에 발 들이고 제 발로 나온 사람은 거의 없다. 시대의 화두인 ‘세대 불평등 해소’에 가장 노력해야 할 정치야말로 그 불평등의 본산(本山)이다.
언론인 노원명 씨에 따르면 집권 8개월 차 윤 정부가 처한 상황은 창 하나를 들고 거대한 괴수를 상대하는 투우사처럼 위태위태하다.
대장동 주변 인물들이 죄다 구속된 지금도 검찰이 ‘몸통’으로 지목된 야당 대표를 조사할 수 있을지 회의하는 시각이 다수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야당 탄압용 수사’라는 답변이 더 높게 나온다. 범죄 혐의가 드러나도 조사할 수 없고 국민 다수가 드러난 사실 해석에 난독증이 있다면 그만큼 나라의 병이 깊은 것이다. 지난 대선은 국가 타락이라는 괴수를 해치운 것이 아니라 상처 입혀 성질만 돋운 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 속 자신의 소명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와 정치 상황이 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소명은 다수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는 아닌 듯하다. 우리 시대의 모순은 윤 대통령으로 하여금 미국으로 치면 아이젠하워가 아니라 링컨이 되기를 언명하고 있다. 시대의 모순으로 곪아 터진 곳곳의 환부에 칼을 대는 대통령 말이다. 환부는 정치 시스템에도 있고 노동구조에도 있고 교육에도 있고 국민의 의식 속에도 있다.
李舜臣 정신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결하는 지도 정신, 시대 정신으로서 이순신 정신은 무엇일까. 남송우 이순신학교 교장은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꼽은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력을 제시했다. 자기를 넘어 남을 품고, 궁극적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순신 행적이 바로 사랑이다. 죽음을 넘어서는 근본적인 힘, 삶에 지쳐 포기하려는 사람을 끝까지 배려하는 마음이다.
장군은 임란 1년 전 전라좌수사로 임명된 뒤 임란 하루 전 거북선을 완성한다. 할 수 있는 힘을 다 쏟는 게 정성이다. 정의는 영화 ‘한산’에서 제시한 ‘정의와 불의의 전쟁’이란 화두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자력은 스스로 힘으로 어려움을 개척해 나가려는 자세다.
현실은 이상과의 간극만큼 역사가 복수한다. 한민족도 마찬가지다. 모든 구성원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민족 정통성을 제대로 알고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다시 역사의 엄중 경고다. 한민족은 한민족이다. 한민족은 일어나라! 그리고 힘차게 다시 뛰어라!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