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무대에서 韓美日 협력 복원
역내 안정·실리도 놓쳐선 안 돼
對중·러 리스크 관리는 과제
험난해진 국익 관리 더 치밀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국제 정세에 많은 변화의 함수를 남겼다. 기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견제를 위한 서방의 ‘역사적 단결’을 과시하고 지난 21일 마무리됐다.
G7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회원국으로 남아 있는 주요 20국 회의(G20)를 대체, 국제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중요한 회의체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공동성명은 미중 간 전략경쟁을 넘어 서방 대 중-러 간 진영 대결로 이어지는 신냉전 기류 속에 서방 선진국 클럽의 단합을 재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장기화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신냉전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까지 더해져 세계의 블록화도 속도가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이번 G7 움직임에 대해 중국은 “강렬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명하고, 러시아도 “우리를 상대로 한 선전포고에 확고히 대응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국, G8 부상 가능성
정상회의에서 G7은 통상적인 공동성명과 별개로 중국의 경제적 강압과 불법적 기술 이전, 비시장 정책 등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공동 조치를 담은 ‘경제 회복력과 경제안보에 관한 G7 정상 성명’을 냈다. 강력한 對중국 견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G7 회원국은 아니지만 한국 역시 초청국으로서 정상회의를 함께했다는 점에서 이들과 보폭을 맞췄다.
G8로의 희망도 있었다. 한국이 G7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과 비슷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다 보면, G8 국가가 되는 것도 한낱 꿈만은 아닐 것이다.
국제사회의 중요한 플레이어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 규모, 군사력, 기술력 등 다양한 지표에서 G7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이 사실상 G8 반열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걱정 어린 시선 존재
이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국을 유럽과 인도, 오세아니아국으로 에워싸는 對중국 포위망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산업질서뿐 아니라 군사안보 분야의 미중 대립도 더욱 수위를 높일 듯하다.
걱정 어린 시선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한·미·일 동맹 가속화가 자칫 북·중·러 결속을 강화시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과 경제적 갈등을 고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의 군사정보 공유 발표는 중국을 재차 자극할 수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우리나라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미·일 동맹 가속화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히로시마 방문 성과 중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미·일 동맹이 더욱 가속화했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와 다시 만났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지난해 6월, 11월에 이어 세 번째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다. 정상들은 각자 발표한 성명을 통해 북한 문제, 3국 정보 공유, 경제 공급망과 관련한 협력을 강조했다.
G7이 일본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 자유진영 중심축 역할을 강화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적극 동참키로 한 것은 불가피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다. 나아가 한·미·일 정상은 별도의 3자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워싱턴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한미일 정상은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와 인도태평양 전략,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
한목소리로 북핵 위협 공동 대응
특히 한미일 정상과 G7 정상들이 한목소리로 북한의 핵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다짐한 것은 주목할 부문이다. 한미일 세 정상이 짧은 기간에 릴레이 회담을 한 것 자체만으로도 분명한 대북 경고 메시지다.
문재인 정부 5년간 한·미·일 3국 협력은 사라졌었다. 윤석열 정권기를 맞아 이제 완전히 복원됐다고 할 수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에 잘못 보일까 봐 3국 협력을 극도로 꺼렸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사안이기도 하다.
G7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북한이 전례 없는 빈도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규탄하고 “무모한 행동은 신속하고 강력한 국제적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긴밀한 공조 의지 재확인
한국과 미국, 일본 정상은 양자·3자회담을 갖고 긴밀한 공조와 협력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공동참배하고 올 들어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일 정상의 공동참배는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두 정상이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도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한·일 정상은 진정성 있는 태도로 얽히고 설킨 과거사 매듭을 풀고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
안보 지킴이 중추 세력으로
한·미·일 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일 정상을 워싱턴 3자회담에 초청했다.
한미일 3각 공조가 안보는 물론 경제와 기술 협력으로 무한 확장해 나간다면 3국이 신국제질서의 중심축으로 주도적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對)중·러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확고한 파트너십을 재확인한 3국이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반도 안보 지킴이의 중추 세력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한편, 우크라이나도 주목됐다. 이번 정상회의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참석해 윤 대통령과 회담을 한 것도 의미가 작지 않다. 공산주의의 침략을 받은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피해를 결코 다른 국가의 일로 치부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한국 위상 크게 제고
한국은 G7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이번에 초청을 받은 것은 높아진 위상을 대변해준다.
자유민주 진영의 주요 국가로서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발언권도 높아졌다.
비록 정식 회원이 아닌 의장국의 초청에 따른 참석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G7 정상들과 만나 에너지, 식량, 기후변화, 핵무기 등 글로벌 의제에 대한 기여 의지를 밝힘으로써 우리나라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교한 외교 절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념할 점은 對중국 관계다. 음양이 교차한다. 미국 등 G7 국가들이 겉으로는 중국을 압박하면서도 속으로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정과 실리,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외교의 기본 과제다.
정교한 외교가 절실한 시점이다. 물론 원칙은 한미동맹과 자유진영 연대가 최우선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는 중국·러시아와 서로 날 선 언사를 주고받았다. 프랑스와 인도가 하는 것처럼 자유연대를 강화하되 국익과 실리를 중시하는 균형외교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중·러는 북핵뿐 아니라 경제 분야도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윤 정부가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외교의 골간으로 삼되 대중·러 외교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미국만 해도 이번 G7 종료 직후 중국과 잇단 장관급 회담을 열기로 하는 등 패권경쟁의 한편에서 실리 관리를 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제시한 진영구도와 비전을 지지하되, 한중·한러 관계의 치밀한 관리는 더욱 절실해졌다.
변동의 조짐은 실질적으로도 없지 않다.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이 중국과의 갈등과 대립까지 감수하던 기조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인 것은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상호의존의 세계 경제에서 그 한계를 인정하고 중국과의 건설적 협력을 꾀할 필요가 있다는데 동의하는 모습이다. 앞으로 깊이 유의해야할 대목이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