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 한국경제 위험 변수
급격한 변동성 파도 대비해야
美 역대 2번째 규모 은행 파산
비상대응책 철저로 국내 피해 최소화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전격 파산했다. SVB는 혁신금융의 상징이었다. 지난 40년간 미국 스타트업과 VC(벤처캐피털)를 주요 고객으로 실리콘밸리의 산파 역할을 해왔다.
파장이 심상치 않다. 이번 파산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는 제한적이라고 하나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세계 금융 시장은 충격에 휩싸였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에 돌입한 지 1년여 만에 벌어진 일인데, 금융시장에 공포가 가득하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다. 1982년 설립된 SVB는 기술 스타트업 분야에 자금을 지원하는 전문 은행으로 총자산 2090억 달러(약 276조 원) 규모의 미국 내 16위 은행이다.
세계는 지금 미국 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그리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SVB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외 변수에 민감…한국경제 충격파
문제는 SVB 파산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더 나아가 우리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다.
한국 경제는 대외 충격에 민감하다.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환율과 자본 유출입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외부 쓰나미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은 한국 경제에도 큰 충격파가 된다. 원·달러 환율 불안으로 이어져 물가와 무역수지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현재 1.25%포인트 수준인 한·미 간 금리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도 우려된다. SVB 붕괴 여파가 금융권으로 확산하면 국내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 경기 침체 와중에 우리 경제가 특히 취약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어떤 여파로 닥칠지 모른다. 금리 인상으로 인한 가계부채 리스크와 부동산 급락, 경상수지 사정까지 최악이어서 살얼음판 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작에 불과…암울한 전망도
미국 IT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SVB의 파산사태에 국내 금융권과 경제계가 술렁이고 있다. 고금리로 인한 가계 부채 리스크와 부동산 급락, 경상수지 악화 등 가뜩이나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터져 나온 악재이니 걱정이 클 만도 하다.
특히 우리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아 해외 불확실성이 국내 경제 불안으로 쉽게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이 불안하면 세계적으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커지고,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우리 금융시장에서 외국인이 빠져나가게 된다. 이 경우 주가 하락이나 환율 상승 등 금융시장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당국도 국내 기업의 SVB 예치금, 손실 추정액 등에 대한 신속한 파악부터 착수해야 한다. 또 국내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태 전개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적극 대응해 나가기 바란다.
상황은 유동적이다. 전 세계 금융권과 기업들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영국의 경우 SVB 영국 지점이 파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영국 재무부는 스타트업들과 긴급 간담회를 가졌다. 이 은행은 캐나다를 포함해 중국 덴마크 독일 인도 이스라엘 스웨덴 등에서도 영업하고 있어 이번 사태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짙은 어둠의 관측도 나온다.
줄도산 우려 제기
SVB의 파산은 미국 은행에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붕괴된 워싱턴뮤추얼은행(자산 3070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SVB는 1982년 설립된 기술 스타트업 분야의 주요 은행으로, 미국 테크·헬스케어 벤처기업 중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당장 스타트업 줄도산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전세계 금융권이 SVB 파산 영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몰락의 원인은 단순했다. 연준(Fed)이 지난 1년간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올린 여파로 차입비용이 커진 기술업체들의 돈줄이 마르자 SVB는 예금 유입 감소로 자금난에 직면했다. 예금 대부분을 미국 국채에 투자했던 SVB로선 보유자산을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18억 달러 규모의 손실이 확정되자 주가폭락과 불안을 느낀 고객들의 예금인출(뱅크런)이 가속화하며 끝내 문을 닫아야 했다.
이 은행은 지난 2021년 유동성 호황 때 2천억 달러가 넘는 예금 잔고가 쌓이자 이 돈 가운데 절반 이상을 미 국채 장기채와 주택저당채권 매입에 썼다가 지난해부터 미국의 공격적인 고금리 정책으로 예금 인출 사태가 빚어지면서 결국 파산한 것이다. 15년 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라는 부실 자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고금리와 안전 자산 투자가 원인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SVB는 정보기술(IT)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에서 IT기업과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하며 40년간 성장해왔는데 위기가 불거진 지 불과 44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과거 비싼 값에 사들였던 국채 등 장기채권 210억달러어치를 싼값에 처분, 18억달러의 손실을 낸 게 화근이었다. 이는 주 고객인 IT기업과 스타트업의 뱅크런으로 번졌고 다급해진 금융당국이 폐쇄조치를 결정했다.
미 잠재손실 6200억 달러
고금리로 국채값이 폭락해 미 금융업계는 6200억 달러의 잠재 손실을 떠안고 있다. SVB 예금 중 95%가 보장보험한도 25만 달러를 넘어 미 벤처들의 줄도산 우려도 꼬리를 문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를 불안감이 지배하고 있다.
당장 SVB 사태로 일부 미 은행은 이틀간 주가가 폭락했고, 시장에서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기억을 소환하며 경계심을 높인다는 소식도 들린다.
SVB는 40여년간 미국 신생 기업의 돈줄로 기술·건강 관리 벤처기업의 44%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파산으로 예금자 보호 한도인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 이상의 예치금은 묶이게 돼 기업의 자금 융통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지난 주말 뉴욕증시는 은행주 폭락 속에 급락세를 빚었고 유럽과 아시아증시도 요동쳤다.
미 당국이 예금 전액 보증이라는 특단 조치를 사태 발생 사흘 만에 신속하게 발표한 것은 공포심 확산이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금융 불안 가중
외풍에 취약한 한국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가뜩이나 올 들어 무역·경상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환율급등·주가급락 등 금융불안도 가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더욱이 1월 경상수지 적자규모(45억2000만 달러)가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대규모를 기록하는 등 대외균형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 경상적자가 고착화되면 신인도는 추락하고 자본 유출의 위험은 커지게 마련이다. 여기에 미국발 충격이 더해지면 외환시장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기타 고피나트 수석부총재는 “한국이 반도체 시장 악화에 따른 수출 위축, 고금리로 인한 내수 부진 등 복합적 역풍을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성장률·물가·환율·경상수지 등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나빠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 1년간 원화 환율 변동성은 일평균 0.53%로 태국의 바트화나 인도의 루피화보다 더 크게 휘청거렸다.
안심하기 이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경제·금융수장들은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서 SVB사태가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봤다. 국내은행들은 SVB와 실리콘밸리와 직접 관련이 없고 채권투자비중이 크지 않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SVB 폐쇄로 이 은행에 자금이 묶이게 된 한국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들도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주택 자금 대출 등 창업자들을 위한 상품이 특화돼 있어 한국 스타트업과 VC도 많이 거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스타트업에 특화된 SVB 파산이 15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처럼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작금의 고금리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우리 경제의 취약한 고리를 언제 급습할지 모른다. 이번 일이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국내 스타트업에도 영향
국내에서는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가 작년 말 기준 SVB 파이낸셜 그룹 지분 약 307억원과 61억원 규모를 각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제외하면 국내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의 SVB 투자 규모는 미미하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에 위기를 몰아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심리다. 지나친 공포감·불안심리가 형성되면 뜻하지 않은 곳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기조 등 악재로 가뜩이나 스타트업 투자 절벽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데, SVB 파산 사태가 이를 더욱 악화시킬까 우려된다.
SVB는 스타트업 등 기술기업에 대한 대출, 보증, 투자 같은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술 혁신과 창업 생태계 조성을 촉진해 왔으나 이번 일로 이런 기업들의 자금 조달과 성장에 차질이 생겼다. 이는 미국 진출을 추진 중인 국내 스타트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선제적 대응노력 필요성
이 같은 대외 여건 변화로 변동성 파도가 급격히 커질 수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신축적인 정책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한국은행은 환율, 자본 유출입 등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국내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유연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당국은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 불안 요인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오는 21일부터는 미국의 금리인상 수준을 결정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린다. 경우에 따라 한미 간 금리차가 역대 최대치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여러 해외발 변수 속에 정부 당국과 한국은행, 기업들의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응 노력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안 요인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환율 관리를 위해 한미 금리역전 현상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상 대응책과 정책 여력 확보를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커진 데 따른 자금 유출 가능성 등 국내 자금시장의 불확실성을 시나리오별로 잘 점검해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는 국내외 금융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충격을 최소화하는 선제 대응에 나서야 한다. 금융권 전반에 걸쳐 자산 건전성과 유동성을 점검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응책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비상하고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때다.
근본적으로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고삐를 더욱 단단히 좨야 한다. 수출 활력을 높여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를 줄이는 동시에 환율 맷집을 키우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제어해 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게 필수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