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여기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골목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동네주민 사랑방으로 애용됐지만 코로나19와 이커머스 등장으로 경쟁력에 밀려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할 처지가 됐습니다. 결국 가게주인은 남은 재고를 처리하고 점포를 정리해 떠나게 됐죠.
그러나 은행은 이렇게 쉽게 점포를 정리할 수가 없습니다. 은행이 제공하는 금융서비스가 공공재적 성격을 띤다는 이유에서죠.
코로나19 이후 비대해진 비대면 채널 영업으로, 점포 위주의 대면 영업은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점포 유지비 등 기타 비용이 커지는 와중에 은행은 지점 통폐합을 단행하고 있죠.
한때 4000곳에 육박하던 은행 영업점(출장소 포함)은 이제 3000선 마저도 위협받고 있죠.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시중은행 영업점 수는 2017년 12월 말 3858곳에 달했지만 불과 5년 사이 1000곳 가까이 줄어들며 2022년 12월 말 기준 3088곳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이르면 올해 하반기 중 3000곳 미만으로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은행이 지점 통폐합을 단행하고 있지만, 고충이 없는 건 아닙니다. 지점이 줄어들면서 금융소비자 사각지대 우려가 덩달아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지점 통폐합과 관련해 은행연합회와 지침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사전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진행하고 이 결과를 금융당국에 제출해 은행 통폐합이 미질 영향을 사전에 파악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또한 점포 철수 시 STM(Smart Teller Machine) 설치 등 은행 영업창구를 대신할 보완책 마련도 은행권 차원에서 이뤄졌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같은 지침은 그다지 소용은 없었습니다. 지침을 지키면서 일부 시중은행이 추진한 점포 통폐합(디지털 영업점 전환)을 두고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결국 지점 통폐합 계획이 변동되거나 유보된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신한은행의 경우 2021년 월계동 지점을 통폐합하려다가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기존 점포는 대면 창구가 없는 디지털라운지로 전환해 운영하려고 했지만, 지역 주민들이 대책위까지 꾸려 반대 목소리를 내자 창구와 디지털라운지를 함께 운영하는 이른바 ‘디지털출장소’를 선보였죠.
KB국민은행은 목포지점 폐쇄 추진과 관련해 목포시로부터 ‘재검토’ 건의를 받았죠. 사실상 시(市) 차원에서 폐쇄를 반대한 셈입니다. 해당 지점은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1월 하당금융센터와 통폐합이 돼야 했지만 1년여 뒤인 올해 1월에서야 통합이 진행됐습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은행 지점 통폐합 현황을 공시하면서 줄세우기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어디 은행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나를 단순 수치로 비교하면서 금융 사각지대 책임을 물을 소지가 있죠.
은행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점포를 없애려면, 당국과 주민, 지자체의 눈치를 봐야하는 지금의 현실이 내심 불편하죠. 최근 금융지주와 은행의 화두인 ‘상생금융’ 차원에서 접근해볼 수 있지도 않겠냐는 반문도 있지만, 비효율적인 점포를 유지하는 게 과연 은행 이용고객에게 이득이 될 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입니다. 점포 효율화를 통해 절감한 비용이 고객들에게 돌아가면, 이 역시도 ‘상생금융’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은행 점포 축소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면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건 맞습니다. 금융 사각지대를 조장하기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라 진행된 통폐합조차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게 온당한지는 고민이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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