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리더십, 국가 경쟁력 무너뜨릴 수도”
“제2차 세계대전 원인은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잼버리 대회는 ‘악몽’으로 남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새만금 잼버리를 ‘최악의 악몽’으로 표현했다. <로이터통신>도 한 참가자 부모의 말을 인용해 “아들의 꿈이 악몽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외에도 각종 외신은 새만금 잼버리의 미흡한 준비를 꼬집으며 비판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찬사를 받은 인물이 있었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갑작스레 잼버리 대회장을 떠나게 된 대원들을 지원했다. 특히 용인은 전체 참가자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500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였음에도 신속하게 숙박시설을 확보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호평을 받았다.
이밖에도 이 시장은 용인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 국가산업단지 유치, 공무원 처우 개선 등을 이뤄내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리더십 상실의 시대. 이 시장이 시민은 물론 노동조합으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이끌어낸 비결은 무엇일까. <시사오늘>은 5월 14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에서 ‘사례와 스토리로 보는 리더의 리더십과 상상력’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 이 시장을 만나 봤다.
그림1. 자크 루이 다비드作 ‘나폴레옹의 대관식’
이 시장 강연은 독특했다. 현안에 대한 주장이나 치적을 내세우는 일반적 정치인 강연과 달리, 이 시장은 파블로 피카소, 르네 마그리트 등 유명 화가들의 명작을 소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단순한 그림 소개에만 그치지 않았다. 명작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로부터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이 시장이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인 ‘나폴레옹의 대관식’에서 발견한 리더십의 핵심은 ‘절제’였다.
“궁정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가로 9미터 세로 6미터가 넘는 대작입니다. 나폴레옹은 1804년에 대관식을 열었는데요. 이때 나폴레옹은 자신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교황을 초대합니다. 당시에는 교황이 황제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게 관례였는데요. 나폴레옹은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더 센 사람이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폴레옹은 교황이 씌워주려던 왕관을 낚아채서 자기가 스스로 씁니다. 그 정도로 나폴레옹은 강한 힘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결국 그는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이렇게 파워풀할 때 절제하고 멈출 줄 알아야 되는데, 끝없는 야망이 나폴레옹을 몰락의 길로 몰고 간 거죠.”
그림2. 붉은 깃발을 든 기수
이 시장은 또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자동차를 선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시대착오적 리더십의 위험성도 강조했다.
“붉은 깃발법이라는 유명한 법이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는 영국이 제일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국한테 뒤쳐졌어요. 그 원인을 제공한 게 바로 붉은 깃발법입니다. 영국에서 자동차가 나오니까 마차 업자들이 위협을 받게 됐는데요. 그 순간 정치인들이 마차 업자들의 표를 의식해서 만든 법이 붉은 깃발법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대의 자동차에는 반드시 운전사, 기관원, 기수 등 3명이 있어야 하며,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6.4km/h, 시가지에서는 3.2km/h로 제한한다. 기수는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들고 자동차의 55m 앞에서 차를 선도해야 한다.’ 그러니까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게 만든 겁니다. 이러니 자동차를 누가 타겠습니까. 자연히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면서 자동차산업이 발전을 못 했죠. 그 결과 후발주자였던 미국이 자동차산업을 선도하게 됩니다. 잘못된 규제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림3.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
이 시장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모티브인 ‘붉은 여왕 가설’도 소개했다. 경쟁 사회에서 ‘안주는 곧 실패’라는 진리를 담은 이야기였다.
“붉은 여왕은 거울나라 엘리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거울나라에서는 열심히 달려도 항상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래서 붉은 여왕한테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달리는데 왜 항상 제자리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을 합니다. ‘여기서는 다 똑같이 뛰기 때문에 네가 두 배는 더 빨리 뛰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20년 전만 해도 싸이월드라는 게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죠. 그런데 지금 싸이월드 쓰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예요. 코닥(Kodak)도 그렇죠. 코닥이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어요. 그런데 필름 카메라가 너무 잘 나가니까,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놓고도 그냥 묻어두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다른 업체들한테 추월을 당해서 이제는 카메라 시장에서 퇴출당할 신세가 됐습니다.
소니(Sony)의 트리트론이라는 TV도 있습니다. 굉장히 고가였는데도 1990년대에는 그거 사려고 난리였어요. 제가 1998년에 미국 월마트에 갔었는데요. 전자제품 코너에 가면 트리트론이 쫙 깔려 있었습니다. 우리 삼성이나 LG TV는 구석에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트리트론이 잘 나간다고 기술 개발을 소홀히 했던 소니는 뒤처져버렸죠.”
그림4. 수에즈 운하
이 시장은 수에즈 운하 그림을 보여주면서 ‘오만’의 위험성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 성공을 하면 그 성공에 인식이 머무르게 됩니다. 다른 방식에 대한 고민을 덜 하게 되죠. 이러면 몰락에 가까워집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에즈 운하입니다. 수에즈 운하는 프랑스 토목기사이자 외교관이었던 레드니낭 드 리셉스가 팠는데요. 이 사람이 나중에 파나마 운하 공사도 맡게 됩니다. 그런데 파나마에서 8년 동안 운하를 팠음에도 완성을 못 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돈만 날린 뒤에 포기했습니다. 현장 상황이나 지형에 대한 고찰을 전혀 하지 않고 예전에 자기가 성공시켰던 방식만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수에즈 운하는 해발 15미터 사막의 평원이고, 파나마 운하가 있는 지역은 해발 150미터의 열대 밀림이에요.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성공했던 방식만 고집하다가 결국 실패합니다. 이게 바로 오만이죠. 피터 드러커라는 경영학자는 ‘변화의 시대에는 어제를 강화하는 것이 내일을 약화시킨다’고 했습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는 절대 승리에 도취돼선 안 됩니다.”
그림5. 히틀러와 체임벌린
이어서 이 시장은 아돌프 히틀러와 네빌 체임벌린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지도자의 판단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체임벌린은 1938년 뮌헨에서 히틀러를 만납니다. 사실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미친 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봤더니 굉장히 나이스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 좋네’라고 판단한 거죠. 이렇게 영국과 독일 사이에는 협정이 체결됐고, 체임벌린은 국민들에게 ‘이제 평화가 왔다, 전쟁 걱정은 전혀 없다’고 선언합니다.
문제는 히틀러가 평화를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위장 평화’를 해서 정신 무장을 해제시키겠다는 게 히틀러의 의도였습니다. 체임벌린이 완전히 오판한 거죠. 게다가 체임벌린은 주데테란트라는 땅만 떼 주면 야욕을 버리겠다는 히틀러의 말만 듣고 그 땅을 떼 줍니다. 6개월 뒤에 히틀러가 협정을 위반하고 다른 곳을 점령했을 때도 ‘협정 위반이다’라고 비난만 하면서 응징을 하지는 않죠. 이러니까 히틀러는 영국과 프랑스의 속마음을 알게 됐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납니다. 히틀러에 대한 체임벌린의 오판이 더 큰 불행을 초래한 거죠.”
마무리. 소명으로서의 정치
끝으로 이 시장은 ‘책임 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강연의 문을 닫았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는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이야기합니다. 누구나 정치를 할 때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신념을 갖고 행한 일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을 때 책임을 져야겠죠. 이게 바로 책임 윤리입니다. 저는 신념 윤리만 가진 정치인은 목적을 앞세워서 파괴적인 수단도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념 윤리에 따라 행한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게 책임 윤리고, 정치인은 책임 윤리를 방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