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과 정책으로 승부하는 건강한 정치판 절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총선때마다 되풀이되는 탈당과 신당창당, 이합집산의 한국 현대정치사 정당문화.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또 한탕의 정치쇼로 끝나고 말것인가. 아니면 낭비와 파행의 정치권 개혁 기폭제로 새로운 족적을 남길 것인가.
현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이 자체 정치쇄신에 성공해 나간다면 ‘제3지대’는 이번 총선에서 미풍에 그치고 말겠지만, 미온에 그칠 경우 정치권 파장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제3지대론’은 국민의힘의 향후 개혁 보폭이 최대 변수다.
제3지대 스스로도 새 정치에 대한 청사진 없이 공천 지분과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의 냉혹한 심판을 피하기 어렵다. 총선에서 불거질 공천 갈등을 우려해 신당 행보에 나섰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넘어야 할 과제다. 오직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신당을 창당하고 이합집산을 거듭한다면 역대 선거 때마다 등장했던 ‘총선용 떴다방’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거대 양당 체제는 극단적 진영 대립과 증오 정치, 파괴 정치, 소모 정치 등 퇴행의 수렁에 빠져 있는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재명 대표 ‘사당’(私黨)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심각하다. 거대 의석으로 국회를 장악한 제1야당과 여당인 국민의힘이 극도로 대립하니 국회 입법이든 행정부 정책이든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다.
여야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빠져 무한 정쟁과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거대 양당이 민생은 외면하고 기득권만 챙기니 정치 혐오는 커지고 부동층만 늘어나는 것이다. 제3세력은 유권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정치공학적 합종연횡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의회민주주의를 복원하고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미래 지향적 가치 중심의 정당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여야는 물론 제3세력은 진흙탕 정쟁을 멈추고 미래 비전과 가치, 정책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제3지대 세력이 가시화된 것은 기본적으로 현 정치권에 대한 실망에 기인한다. 민생은 외면하고 기득권에만 안주하려는 두 거대 정당의 행태에 무당층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선거제도 개편만 해도 그렇다. 당장 총선 석달 전인데도 의석 수 유불리를 따지느라 ‘선거룰’조차 확정하지 않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양당의 도를 넘는 진영 싸움이 국민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넘친다. 갈 곳 잃은 표심을 겨냥한 새로운 선택지 등장은 수반되기 마련이다. 3지대 선택지 폭을 넓혀 양당에 자극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긍정적 역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도 크다. 제3지대 세력은 기득권 타파와 다당제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기성 정당과 차별화된 새로운 비전과 노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현 정치권에 대한 실망에 기대면서 ‘반윤(반윤석열)·반명(반이재명)’의 기치만 높이 내세웠을 뿐이다. 이 전 대표의 지지자들 행사에서 피습 당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목에 칼빵을 맞았다’는 막말이 나온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이래서는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기 어렵다.
이른바 ‘제3지대 인사들’은 각자 창당 작업과 세 불리기 등을 추진하면서 합종연횡을 모색할 것이다. 제3지대 인사들의 창당과 합종연횡 목표는 ‘양당 정치 폐해 타파’여야 한다고 본다. 정치가 국민 삶을 바꾸고, 나라를 건강하고 부강하게 하기는커녕 권력을 다투고 정치인 개인의 이익과 정치적 생명을 지키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문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국민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얼마나 줄 수 있느냐는 것이 핵심이다. 양당의 공천 탈락자를 모아 단순히 세를 불려 겉모습만 갖추는 수준이라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숱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싫으면 우리에게로 오라는 단순한 정치공학적 계산으론 선거철에 난립하는 ‘떴다방 정당’ 신세를 결코 면치 못할 것이다. 지향하는 가치와 제시할 미래 비전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내놓아야 ‘새로운 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제3지대 정당'의 성패는 이들이 과연 무엇을 목표로 신당을 창당하고, 합종연횡하는지에 달렸다. ‘혁명’과 ’쿠데타’를 구분하는 큰 기준은 그것이 ‘기존 질서’와 ‘정치체제’를 바꾸는 변혁이냐, 아니면 권력을 쥔 세력들만 바뀌느냐에 있다. 각 정파의 비주류들이 기존 정당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비주류’에서 ‘주류’로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바꾸는 데 그친다면 ‘제3지대 정당’은 별 의미가 없다. 총선 이후 신당들이 존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제3지대 인사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줘야 한다.
제3지대의 출현은 한국의 정치풍토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 진영 논리와 극단의 혐오 정치에서 빠져 나와 민생과 정책으로 승부하는 건강한 정치판이 절실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두 거대 정당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과감히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양한 인재를 모아 재창당의 각오로 다시 출발선에 서야 할 것이다. 극성 지지층에 안주하는 정치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 구르지 않는 돌은 이끼가 끼게 마련이다. 우리는 영광된 새 조국을 위해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다시 일어서야만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