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병은 이미 깊은 상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세상은 끝났다. 인류사회의 소용돌이는 거침이 없다. 악(惡)을 향한 질주다. 북러 핵군사동맹과 모로코 사태는 이를 상징한다. 북러 군사거래는 막을 수단이 없다. 유엔도 무시됐다. 무기거래 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양국이 그간의 ‘자동참전’을 넘어선 전략동맹의 구조적인 길로 계속 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전이 아닌 확전으로 설정한 푸틴과 국제사회 누구도 반대하는 핵개발을 고도화하는 김정은이 핵으로 얽힌 전략적 동맹을 택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물론 인류사회의 안보 전환기를 알리는 불길한 신호탄이다. 미래를 검은 빛으로 채색한다.
모로코 지진사태 등도 그렇다. 2000명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부상하는, 엽기적인 참사가 빚어졎음에도, 세계는 말이없다. 조금 도와준다고 생색만 낼뿐 모두가 건성이다. 모로코 최고 지도자의 자세는 물론이고 주요 강대국들의 행태도 그렇다. 인류의 병은 이미 깊을대로 깊은 상태다. 안전한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정신이 문제다. 사람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아는 온갖 군사적 악성 테러가 난무하고, 한편에선 또 돈 이면 전부다. 목적을 위해 온갖 수단적 편법과 사술, 음모와 모략, 집단이기주의가 난무한다. 온전한 세계라고 할 수가 없다.
물신주의(物神主義) 광풍
인간관계는 더욱 이기주의로, 분열로 깨져만 간다. 독선의 도그마와 물신주의(物神主義) 광풍이 극단의 정점을 향해 전세계를 휩쓸며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이 타락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주의의 숭고성을 유린하는 구조가 점점 더 팽배해져 가고 있다.
진정한 인권의 상실시대. 세계 곳곳 구석에는 굶어죽어가는 사람이 시체처럼 길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도 그렇다. 더욱이 그 뒷편에서는 신(新)경제제국주의란 검은 돌풍의 물신주의 망령이 인정사정없이 ‘인간화 지대’를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죽어가는 자에 눈길한번 제대로 줄 겨를이 없다. 그들은 ‘돈, 돈’에 골몰한다. 온통 ‘나만 잘살면 된다’ ‘어떻게 상대방을 이용하고 활용하느냐’는 이기주의와 불신, 분열이 전 세상을 끝없이 혼돈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인간성은 도적맞고 먹느냐 먹히느냐는 ‘정글의 법칙’만 남은 형국이다.
역사역류 징후
그러니, 진정한 지구정의가 있을리 없다. 배터지도록 먹고자고, 푸른 호수에 유람선 뛰우고 하루종일 놀고먹는 자가 있는 가 하면, 쌀 한톨, 밀가루 한 스푼이 없어 송장처럼 쓰러져 웅크려 자는어린이가 세계 곳곳에 보인다.
그래도 통회(痛懷)는커녕, 반성의 기미도 없다. 조금 도와준다고 생색만 낼뿐, 고통을 함께 나누는 인류애의진실된 ‘행동력’은 어느 국가에도 잘 보이질 않는다. 유엔도 그렇다. 이른바 ‘무역자유화’란 미명하에 주요 강대국들은 입과 배가 찢어질 정도로 세계의 돈을 끌어들이려 한다. 경제패권을 장악키위해 더욱 혈안일 뿐이다.
반면, 인류의 고귀한 정신적 유산을 많이 보유한 문화국들에서 마져 점점 그 문화유산이 패퇴하고 경시당하는 역현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도 그 확연한 역사역류의 징후다. 그러니 인간정신의 유산도 이제는 물신의 하부구조, 상업주의의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인간이 인간성을 배격하는 이런 대모순의 국면이 새로운 2000년대를 열면서도 더욱 오도된 큰 흐름으로 심화되고 있음은 참으로 인류역사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판국인데도 아직도 각국은 앞다퉈 무기를 개발하고, 남의 나라를 짓밟고 위협키위한 무모한 힘겨류기에 여전히 정신나간 행동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터전, 고향을 잃고 눈물로 한평생을 보내는 전쟁난민이 동서냉전 구조가 무너진지 오래인 오늘도 해마다 수십만 명씩 여전히 생겨나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 인간이 전쟁의 사슬에서 벗어날 길은 정말 없는 것인가. 이런 세상을 우리는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할 것인가. 누가 어떻게 이 거대한 탁류의 물길을 돌릴 것인가.
세기적 집단최면
인간이 하찮은 각 집단별 독선의 도그마와 문명의 수단에 발이 묶여 인간자체를 서로 경원하는 이런 현상은 창조질서, 즉 자연섭리의 거부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급기야 구멍이 숭숭뚫려 버린 오존층, 각종 생태계의 급변이라는, 전대미문 지구전체의 위기라는 거대한 수렁에 떨어져 버린 오늘의 현실.
현대의 인류, 우리는 ‘하늘’앞에서 죄악의 심판대위에 그렇게 들어서고 있는 것인가. 잘못되도 뭔가 크게 잘못됐다. 그런데도, 모두가 방관만 하고 있다. 그저 그런대로 계속 오도된 흐름에 휘말려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고 너도 나도 따라만 가고 있는 이런 엄청난 세기적 집단최면 현상. 누가 과연 대각성의 결단을 해야할 것인가. 참다운 깃발을 들어야 할 것인가. 단초를 어디서부터 열도록 해야 할 것인가. 그 적임자는 과연 누구인가. 누구여야만 할 것인가.
바로 한반도가 결정적 대안으로 떠오른다. 왜인가. 한반도는 인류의 대모순과 비극이 가장 상징적으로 얽혀든 곳이다. 그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한반도 사정의 해법은 ‘인류문제 해결’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 지역에는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수천 수만갈래 온갖 인간의 모순이 실타래처럼 얽혀있고, 농축돼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한반도 문제를 푸는 길, 그것은 현시대, 인류전체의 소명을 정면으로 푸는 길이며, 한민족 스스로가 온인류와 함께 짊어진 무거운 역사의 짐이 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대모순, 그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 실체를 바로 아는데 해법의 단서가 있다.
한반도, 극단의 문화충돌
한마디로 한반도는 세계 최고의 정신적 유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 시대, 정신, 물질양면에서 가장 황폐화된 지역임이 드러난다. 동서고금을 망라, 최악의 모순과 분열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인류사상 끝없는 혼란을 부채질 해온, 정신주의와 물질주의란 두개의 본질과 동·서양 문명, 그리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거짓 속박의 근세 냉전 이데올로기가 3각(三角)의 복합성으로 교차 충돌, 전대미문의 혼돈에 휩싸여 있는 곳이다.
수단과 방법이 뒤바뀌고, 목적과 과정이 뒤범벅이 되고, 무엇이 기준인지, 인간과 삶의 가치이며 의미인지 제멋대로 얼빠진 춤을 추는 대혼돈의 현장. 극단적 문명충돌, 문화충돌로 인한 대분열의 폭발점. 그곳이 바로 한반도다.
그 구체적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큰 근거로, 5천년 한 핏줄 한민족을 서로 죽이고 집단 살상을 한 세계 유일한 지역이며, 21세기가 열리고 있는 지금도 남아있는 지구상의 최후의 동서냉전 분열국가임도 유일하다. 뿌리깊은 동양적 전통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서양종교가 가장 번성하고 있는 것도 유일하며, 서구적 제도라는 민주주의란 껍데리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권위적 지도자에 의한 전통적 반민주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상징적이다.
신의와 예의범절을 가장 큰 정신적 덕목으로 말하면서도 정작 행동은 거짓과 위선, 부패가 판을 치는 곳도 이곳이요, 민주주의란 미명하에 인류사상 최장의 종신 1인신격화 독재가 벌어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다.
단일 민족주의가 강하면서도, 무차별적 개방화로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연주의적인, 그 우수한 토속문화의 뿌리마져 잘라 버린채 인위적 외래문화 밖으로 거의 완벽히 밀어내 버린 모순을 저지르고 있는 곳도 한반도다.
‘소돔과 고모라’의 한반도
또한 작은 생활행태 면에서도, 완전히 뒤집혀진 곳이 이 지역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까지 칭송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은 완벽히 ‘악마의 손’으로 넘어갔다.
부정과 부패의 ‘고리’ 없이는 상당수 대통령으로부터 말단 관리, 일반 시민생활에 이르기까지 ‘아무일도 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 됐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자기의 두다리를 잘라 버리는 극단의 삐뚤어진 ‘황금만능주의’가 벌어지고 있는 곳도 이곳이 됐다. 미국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고등교육자가 돈 안준다고 아버지를 찔러 죽이는 곳도 이 지역이며, 무질서의 극치를 이뤄 교통사고율이 세계 수위를 다투는 곳도 이곳이 됐다.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어 국가 패퇴의 흔적이 역력하고, 동서고금 전래의 깊은 정마저 메말라 희멀건 껍데기 일희일비가 횡행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 됐다. 전국 도시 곳곳에서 14,5세 이하의 어린 소녀들과 버젖한 주부의 매춘행위가 무차별적으로 벌어져, ‘소돔과 고모라’의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는 곳도 이곳이며, 교육입국을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학생이 스승을 평가하고, 자식이 부모에 삿대질하고 있는 곳도 이곳이 됐다.
말끝마다 사회정의의 구호를 외치면서도 상당수 대통령과 그 주변 지배층이 뒤돌아 앉아 밀실에서 ‘검은 뇌물’을 세고 있는 곳도 이곳이며, 버젖한 대낮에 술취한 취객의 뒷통수를 때려, 지갑과 돈을 거침없이 탈취해가는 곳도 이곳이 됐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쌀한톨이 없어 풀잎이라도 뜯어먹기위해 앙상한 몰골로 벌거벗은 산을 헤메고, 기아상태로 어머니의 젖 마져 말라 버려 어린 애기를 밀쳐내 버리는 비정의 모정(母情)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신격화된 통치자는 혁명가극만을 끝없이 노래하며, 눈 질끔 깜고 있는 곳도 이곳이 됐다.
강력한 민족주의를 말하면서도 1인통치자만 숭배토록 하고, 민족전래의 조상 제사조차 경시하게 하는, 참으로 엄청난 모순의 특수한 곳, 그곳이 바로 한반도가 됐다.
이런 대모순을 인류가 역사상 찾아낼 수 있을까. 과거 인류사의 모순과 현대사의 모순이 가중되어 가공스런 결과를 일으키고 있는 한반도의 유례없는 대모순. 진단은 냉정할 수 밖에 없다.
세계혁명, 그리고 한국의 대장정(大長程)
인류는 대모순의 집결지, 한반도를 풀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가 풀린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한반도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나서야 함은 자승자박의 결과다.
전 인류가 함께 나설수 있도록 먼저 깃발을 올려야 한다. 먼저 희생해야 한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말은 소용없다. 행동과 실천만이 비로소 세계의 구원으로 연결된다. 분열에서 통합으로, 불신에서 믿음으로, 악령에서 성령으로, 탐욕에서 청정(淸靜)으로, 비인간화에서 인간화로, 오도된 역사의 거대한 탁류를, 어떤 ‘장벽’이 있더라도 바로 돌려 놓아야 한다.
정신과 가치를 다시 일으켜세워야 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한민족 출발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 그 웅대하고 아름다웠던 숭고한 옛 기상과 정신을 다시 살려 내야 한다. ‘현실’과 후손, 한반도와 세계 모두를 항구적으로 이롭게 하는 진정한 제3의 천년 대계 목표를 굳건히 세우고, 착실히 전진해야 한다. 세월이 얼마나 걸리던 기어이 달성토록 해야만 한다. 세계의 빛으로, 선물로 전파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한민족의 역사도 진정 새롭게 웅비한다.
정신적으로 오도된 비인간화의 세계. 정신이 바로서야 물질도 바로선다. 마음이 바로돼야 행동도 발라진다. 정치도, 경제도 바로된다. 세상이 달라진다. 뒤집어진 인류사를 다시 뒤집어 지도록 앞장서는 일. 그것이 진실한 혁명이다.
한반도 과업. 그것은 전 인류의 숙제며, 시험지다. 역사는 명백히 혁명을 부르고 있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인류여! 한반도여! 한반도가 일어나야 세계가 일어난다. 그래서, 그 진정한 주체, 한국의 혁명적 대장정(大長程)은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 밖에 없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