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민주자유당을 다루기 전에, 먼저 ‘민주당’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민주당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민주자유당을 말할 때 민주당을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1955년 민주당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는데요. 사실 1955년 민주당을 직접 계승한 정당은 현(現)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1955년 민주당은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해산됐다가 민정당(民政黨)과 민주당(재건민주당)으로 부활, 민중당(民衆黨)으로 이어집니다. 이 민중당이 신민당(新民黨)이 됐다가 신한민주당으로, 통일민주당으로 흘러가게 되죠. 즉, 1955년 민주당을 계승한 정당은 1987년의 통일민주당입니다.
그런데 제13대 대선을 앞두고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계보가 복잡해집니다. 어디까지나 평화민주당은 DJ가 통일민주당에서 ‘탈당’해서 만든 정당이었으므로, 1955년 민주당에서 시작해 신한민주당, 통일민주당으로 이어진 ‘민주당의 유산’은 여전히 통일민주당에 잔존했기 때문입니다. 1990년까지도 민주당의 ‘적통(嫡統)’은 통일민주당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통일민주당이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 합당했으니, 정확히 따지면 1955년 민주당의 후예(後裔)는 민주자유당이 되는 겁니다. 3당 합당에 반대한 일부 인사들이 이른바 ‘꼬마민주당’을 창당하고 ‘통일민주당의 직계’를 자처하긴 했지만, 통일민주당 출신으로 꼬마민주당에 입당한 의원은 5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50여 명은 모두 민주자유당으로 향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든 1955년 민주당을 계승한 쪽은 민주자유당이 되는 거죠.
이런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자유당은 1955년 민주당의 유산에서부터 군사독재정권의 유산까지 모조리 끌어 모은 초거대 여당이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당내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 군사독재세력과 민주화세력이라는 이질적 집단의 결합체였던 데다, YS(김영삼 전 대통령)부터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간다’는 마음가짐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치열한 당내 투쟁 끝에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하고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자리에 오른 YS는 ‘호랑이 축출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권력을 손에 쥐었으니, 필생의 숙원이었던 ‘군부독재 종식’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거죠. 실제로 YS는 조금씩 민주계의 세력을 키우는 한편, 민정계와 공화계 인사는 하나 둘 당직에서 몰아냈습니다. 이 즈음 유행했던 단어가 바로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이 끝난 뒤 사냥개도 삶아먹는다는 뜻)입니다.
이에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필두로 한 민정계와 공화계는 짐을 싸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합니다.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해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한 12·12 군사반란 가담자를 전격 구속한 YS는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변경했죠. 신한국당의 탄생은 호랑이굴에 들어갔던 YS가 ‘호랑이 사냥’을 마쳤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던 셈입니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 민주계 주도로 당이 운영되면서 95년초 당시 김종필 대표의 탈당으로 합당의 한 축이 이탈했고, 그해 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의 소용돌이 속에서 김 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를 내세우며 3당 합당의 잔재를 씻어내기 위해 당명을 개칭할 것을 지시, 민자당은 다시 신한국당으로 바뀌었다.
1997년 11월 20일 <연합뉴스> ‘1년11개월 만에 막 내리는 신한국당’
신한국당은 역대 보수정당 가운데 가장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김문수 등을 영입했을 정도로 개방적이었고, 정책적인 면에서도 특정 이념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세종연구소 이내영 연구위원의 논문 <제15대 총선과 한국정치의 진로>에 따르면 신한국당은 보수와 중도, 진보 모든 이념 스펙트럼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은 정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존속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당 지지율이 폭락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당시 신한국당 총재였던 이회창은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조순 총재가 이끌던 민주당과의 합당을 추진, 한나라당을 창당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보수정당 역사상 ‘가장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신한국당은 탄생 1년 11개월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신한국당의 경우는 보수-중도-진보라는 이념적 스펙트럼 모두로부터 골고루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회창의 영입과 구민중당 지도부를 포함한 비교적 개혁적 인물들의 공천을 통해서 진보적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신한국당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긍정적 평가가 총선에서 중도의 표로 나타났다.
세종연구소 이내영 연구위원 <제15대 총선과 한국정치의 진로>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