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통합 실패와 제1야당으로 도약한 평민당 [한국정당사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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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통합 실패와 제1야당으로 도약한 평민당 [한국정당사⑪]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9.05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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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평민당, 제13대 총선 앞두고 통합 무산…평민당, 소선거구제 계기로 제1야당 도약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제13대 총선을 앞두고 추진했던 야권 통합이 무산되면서, YS와 DJ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시사오늘 정세연
제13대 총선을 앞두고 추진했던 야권 통합이 무산되면서, YS와 DJ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시사오늘 정세연

1987년 제13대 대선을 기점으로 우리 정치는 대구·경북의 민주정의당, 부산·경남의 통일민주당, 호남의 평화민주당, 충청의 신민주공화당이라는 지역주의 기반 4당 체제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군사독재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전통적인 대결 구도가 완전히 무너진 건 아니었습니다. 제13대 대선이 노태우의 승리로 끝나자, 민주화진영 내에서는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이 통합해 제13대 총선에 임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었습니다.

이에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총선을 위한 야권 단일화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양측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통합’을 외친 통일민주당과 달리 평화민주당은 ‘소선거구제 합의 후 통합’을 들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요. 중선거구제를 바라보는 YS와 DJ의 시각은 달랐습니다.

‘전국 정당’인 통일민주당 입장에선 중선거구제를 유지하는 쪽이 유리했습니다. 반면 호남이라는 확고한 지역기반을 가진 평화민주당은 소선거구제 도입을 정치적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통합이 이뤄지더라도 당권, 나아가 차기 대권을 놓고 격돌해야 하는 YS와 DJ로서는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이 문제로 인해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의 통합 논의는 사실상 무산 단계로까지 접어듭니다.

이러자 YS가 나섰습니다.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 설악산, 속리산 등을 오르며 잠행하던 YS는 야권 통합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급히 상경해 DJ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선거구제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측근이었던 김덕룡이 “야권 통합은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이런 상황에서 소선거구제를 하면 총선에서 우리가 굉장히 불리해진다”고 말렸지만, YS는 DJ의 통합 약속을 믿고 소선거구제를 수용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야권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한겨레민주당이 통합 협상을 갖기로 한 1988년 3월 19일. 회의 장소인 서울시 마포구 서교호텔에서 소요(騷擾)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후 통일민주당은 폭력을 휘두른 주체가 평화민주당원이라고 주장하면서 공식 사과를 요구했고, 평화민주당은 불순분자의 소행이라고 반박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양당의 통합은 완전히 무산되고 맙니다.

이로써 제13대 총선 역시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4당 체제로 치러졌습니다. 그 결과는 김덕룡의 예상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소선거구제로 치러진 이 선거에서, 호남을 싹쓸이한 평화민주당은 무려 70석을 획득하며 제1야당으로 뛰어오릅니다. 반면 부산·경남을 민주정의당과 나눠 가진 통일민주당은 59석을 얻는 데 그치면서 제2야당으로 추락합니다.

“당시 여론조사를 하면 민주당은 중선거구제를 유지하는 게 유리했고 평민당은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게 유리했다. 그런데 DJ가 소선거구제로 바꾸지 않으면 선거를 보이콧하겠다고까지 하니까 YS가 양보를 했던 거다. YS가 불리한 걸 알면서도 양보를 했던 이유는 야권 통합을 하기 위해서였다.”

김현철 김영삼 대통령 기념재단 이사장

 

제13대 대선에서의 4자 필승론과 제13대 총선에서의 야권 통합 무산이 낳은 4당 체제는 현재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군사독재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라는 구도가 DJ의 호남, YS의 부산·경남, JP의 충청이라는 지역주의 구도로 전환되는 계기였으니까요. 현 더불어민주당의 뿌리는 사실상 제13대 대선을 앞두고 창당한 평화민주당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2년 후, 대한민국 정치를 뒤흔든 사건 하나가 벌어집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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