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국내 건설업계의 돈맥경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 미국발(發) 금리 인상에 따라 나가는 돈은 늘어나는데, 그만큼 돈이 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마이너스(-)로 전환하면서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고려하는 기업들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2022년 시공능력평가 기준 40위권에 이름을 올린 중견건설업체인 A사(社)는 최근 준공을 마친 한 민간공사 현장에서 약 3억 원 안팎의 손실을 입었다.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고물가 흐름이 지속되면서 수주 당시 체결한 도급계약서에 명시된 공사비를 초과하는 비용이 발생해서다.
당초 발주처는 A사의 도급비 증액해 요청에 물가 변동폭에 맞춰 조정을 고려하겠다고 약조했음에도 공사가 마무리되자 입을 싹 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A사는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후속 조치에 나섰으나, 발주처 특성상 갈등이 길어지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 아래 손실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빅5 건설사 중 하나인 B사는 얼마 전 임금·단체협약교섭(임단협)에서 노동조합의 경영성과급 개선 요청에 '자금수지'(당기순이익-비용-미실현수익) 사정을 근거로 어려움을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임단협에 나선 B사 재무관리 담당 임원은 "올해 자금수지는 자체사업 택지비, 주택사업 일정 변경, 해외 프로젝트 저가 수주 등으로 연간 마이너스가 예상되며, 2분기부터 심화될 전망이다. 2023년은 자금수지 측면에서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여기에 금리 인상분을 감안했을 때 차입에 의한 유동성 확보가 절실한 상황임을 (노조가) 인지해 달라"고 설명했다.
10대 건설사인 C사는 2022년 수주·착공한 국내 정비사업 프로젝트들이 대거 적자로 돌아선 것으로 전해진다. 브랜드와 재무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외부에서 받고 있는 만큼, 수주·계약 과정에서 물가 변동에 따라 공사 도급비가 조정될 수 있다는 내용을 일부러 빼서다(관련기사: ‘지을수록 마이너스’…건설업계, 고물가·고금리에 ‘적자전환’ 이어질듯,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8441).
C사의 한 관계자는 "다른 대형 건설사들에 비해 도시정비사업 현장에서 내세울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 가격 경쟁력이라도 높이자는 차원에서 물가 변동 관련 항목을 계약서에서 배제했다. 건자재 값이 너무 크게 올라 지난해 착수한 대부분 국내 현장들이 적자를 인식하고 있다. 올해 적자전환이 불가피한 실정"이라며 "사업팀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위에 수차례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단 수주부터 하고 보자는 논리였다. 작년에 수주·착공한 현장이 많지 않았던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건설사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돈의 흐름이 막히면서 지급능력이 떨어진 실정이다. 10대 건설사 중 2022년 유동비율이 전년 대비 개선된 업체는 대우건설(약 7%p↑)이 유일하다. 현대엔지니어링과 HDC현대산업개발이 각각 약 25%p, 17%p 악화됐고, 롯데건설과 포스코이앤씨(구 포스코건설), 현대건설 등도 10%p 이상 유동비율이 하락했다.
반면, 공사를 실시하고도 발주처에게 대금 지급을 제때, 제대로 요구하지 못한 걸 뜻하는 미청구공사는 확대됐다. 10대 건설사 가운데 지난해 미청구공사가 전년보다 감소한 회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 DL이앤씨(구 대림산업)뿐이다. 나머지 업체들은 최대 60~75%{GS건설,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 등} 가량 미청구공사 규모가 커졌다. 금리 인상에 부동산 시장 침체가 겹치면서 영업이익보다 이자 부담이 더 큰 상황에 빠진 업체들도 속속 목격되고 있다. 지난해 적자전환한 KCC건설, 신세계건설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선 이 같은 흐름이 올해 2분기 이후에도 이어질 경우 비용 절감 차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들린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자금수지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 회사 입장에선 인력 감축에 대한 고민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미실현손실이 상당한 수준에 달한 것으로 소문이 도는 건설사들이 꽤 있다. 지금까진 비(非)인위적 감축이었다면, 이젠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착수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고직급·고연령·고연차 직원 대상 희망퇴직이 유력할 거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수익성이 악화된 사업부문 내 인적자원을 다른 본부나 현장으로 보내는 방식이 지금까진 먹혔는데, 이마저도 점점 쉽지 않아지는 실정이다. 요즘 우리 회사에선 삼성전자의 감산 조치 추이를 눈여겨보고 있다. 국내 주택 시장이 침체되면서 그간 미운 오리 새끼였던 플랜트 부문이 다시 떠오르고 있고, 적잖은 직원들이 플랜트로 이동을 한 상황인데 이번에 삼성전자의 감산 결정으로 플랜트 사업도 불투명성이 확대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며 "주택에 이어 플랜트 시장도 어려워지면 일부 고용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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