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윤석열 정부의 벌떼입찰(공공택지 낙찰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동원해 입찰하는 행위) 의혹 건설사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흥건설, 호반건설, 대방건설, 우미건설, 제일건설 등을 수사 의뢰한 데 이어, 지난 11일 국토교통부는 벌떼입찰이 의심되는 업체 13개를 추가 적발해 경찰에 수사를 맡겼다고 밝혔다. 오로지 공공택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운영하지도 않는 회사를 설립하고, 창고로 쓰는 사무실을 만들고, 택지 입찰 조건상 요구되는 건설기술인을 모기업으로부터 지원받은 회사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린 것이다. 국토부는 경찰 수사, 검찰 기소를 거쳐 이들의 위법 행위가 사실로 확인될 시 기존 체결된 계약을 해제하고, 택지 환수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위반 의심 업체들 대해서는 땅끝까지 쫓아가 공공택지 시장의 공정한 질서를 세우겠다"고 내세웠다.
국토부의 이 같은 엄포와는 상반되게도, 벌떼입찰 의심 건설사들 대부분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당시 국토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책임 있는 공공기관에서 제시한 룰(Rule)에 따라 입찰에 참여한 것뿐인데, 수년이 흐른 이제서야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민간회사에게 책임을 묻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설사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해 택지를 낙찰받으려 한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행위라고 해도,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입장에선 지극히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시도였다는 논리다. 이에 맞서 정부가 꺼낸 논리는 '업무방해'다. 공정한 시장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공공택지 입찰 관련 룰을 악용해 입찰에 나선 건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임은 물론,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편법적이고 불공정한 행태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토부는 이번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형법상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과연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붙는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위계나 위력으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압박했을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고, 남은 건 허위(위장계열사)에 따른 요건뿐인데, 페이퍼컴퍼니 자체를 부정하기가 어렵지 않아서다. 모기업과 계열사(위장일지언정)간 업무 지원 관련 계약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계열사가 적법하게 운영됐음을 입증하면 된다. 짜고 치면 그만이란 얘기다. 때문에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건설사 중 벌떼입찰 의혹을 인정한 업체는 일부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현 정국 흐름에 맞춰 불가피하게 또는 이해관계에 의해 '고개를 숙여준 것'이라는 분석이 일각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의 취지에 반하는 편법적이고 불공정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정부의 주장은 국민 대다수로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벌떼입찰 의심 업체들 대부분이 세종 등에서 알짜 공공택지를 이 같은 방식으로 확보해 최소 수천억 원, 최대 조(兆)단위 이득을 봤고, 이를 오너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 실탄으로 활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형법보다는 특경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이 더 어울리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다만, 벌떼입찰 의심 건설사들에게 형법상 업무방해죄 또는 특경법상 재산범죄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정부에서 마땅히 선행 또는 병행해야 할 게 있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꼼수를 부리게끔 허술한 룰을 만든 LH한국토지주택공사, 10여 년 전부터 제기된 보완 입법의 필요성을 무시한 국토부·국회에게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직무 수행 의무를 어긴 죄, 형법상 직무유기죄 등을 묻는 것(LH는 국가공무원법을 토대로 임직원 강령을 마련했으니 충분히 적용 여지가 있다)이다. 모든 제도는 미비한 상태에서 출발하기 마련이고, 시대적 흐름과 상황에 따라 여러 차례 보완을 거쳐 완성된다. 이 과정에선 편법으로 부당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입안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법의 구멍들을 이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예가 삼성그룹이다. 삼성이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법의 공백을 파고들 때마다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나마 꾸준히 그 공백을 메웠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법, 세법 등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벌떼입찰의 경우 정부와 국회, LH한국토지주택공사 모두 구멍이 무엇인지 알고도 손을 놓고 있었다. 1년에 1번 국정감사 호통쇼 용도로만 사용하는 데에 그쳤다. 의식적·적극적으로 방관했으니 명백한 직무유기, 최소한 직무태만이다.
벌떼입찰 의심 업체들을 처벌하기 위해 땅끝까지 쫓아가겠다고 했다. 직무유기 의심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선 멀리 나설 필요가 없다. 서울 여의도, 세종, 경남 진주까지만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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