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범 “SVB사태서 목격된 국가 금융개입 확대…모럴해저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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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범 “SVB사태서 목격된 국가 금융개입 확대…모럴해저드 우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4.14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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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포럼(96)] 김홍범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김홍범 경상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3일 동반성장연구소(이사장 정운찬) 주최 제96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에스브이비 파산으로 다시 생각해 본 금융위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시사오늘
김홍범 경상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3일 동반성장연구소(이사장 정운찬) 주최 제96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에스브이비 파산으로 다시 생각해 본 금융위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 시사오늘

지난달 미국 실리콘 밸리 은행(Silicon Valley Bank, SVB) 파산 사태 당시 조 바이든 행정부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예금자들의 예금을 전액 보전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 등은 "은행 시스템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강화하기 위한 조처다. 금융 시스템이 예금을 보호하고, 가계·기업에게 신용을 제공하는 사활적 역할을 계속 수행하도록 보장할 것"이라며 현행법상 예금보장 상한액인 25만 달러 이상 예금까지 전부 보호하겠다고 공언했다.

시장 구성원과 언론은 찬사를 보냈다. 글로벌 은행 연쇄 부도 등 충격 확산을 막는 데 미국 정부가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였다.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유사 시 이와 비슷한 조치를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언급했다. 호평 일색 기조엔 '금융위기는 금융을 시장에 지나치게 맡겨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보편적 시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가는 원래 돈을 좋아하는 사고뭉치 집단이고, 그들이 터뜨린 사고를 뒷수습하는 건 당연히 정부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여론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부터 2008년 금융위기까지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 혼란을 수차례 겪으면서 금융권에 대한 국가개입이 조금씩 정당화·합리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보편적 시각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는 전문가도 존재한다. 지난 13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제96회 동반성장포럼에서 'SVB 파산으로 다시 생각해 본 금융위기'라는 주제로 연단에 선 김홍범 경상대학교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김 명예교수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발전심의위원, 제24대 한국금융학회장 등을 지낸 경제학자다. 그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터질 때마다 국가개입 수위가 점진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오늘날엔 지나치게 과도한 수준에 이르러 '금융권 모럴헤저드'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이 위기를 빚어내듯, 위기도 금융을 빚어낸다(Finace is not merely prone to crisis, it is shaped by them)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삶을 향상하는 데 기여한 현 금융제도는 주의 깊은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절벽 밑바닥에서 대충 급조된 게 대부분이다. 금융위기가 터질 때마다 임시 반창고 붙이듯 시작된 조치가 시스템화됐다는 것이다. 1792년 미국 버블 붕괴로 월가가 최초의 위기를 맞을 때 설립된 뉴욕증권거래소, 1907년 미국 비상유동성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출범한 연준 등은 위기가 불러온 금융 혁신이었다. 하지만 해로운 점도 공존했다. 금융위기에 대응할 때마다 국가의 비중이 점차 확대됐고, 정부는 금융을 점점 더 많이 보호하는 방식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 당시 예금자 보호 목적으로 설립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대표적이다. 금융의 지나친 위험 추구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가 만들어졌고, 이와 동시에 수많은 보호·지원 수단들이 마련됐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국가는 사람들의 지나친 위험추구를 제대로 막아내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적절한 규제와 보호의 배합, 올바른 균형을 이루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 국가가 시스템을 보호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위험을 추구하되, 그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김 명예교수는 이번 SVB 파산 사태에서도 민간부분인 금융에 대한 국가개입의 증대에 따른 부작용이 표출된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규제 완화의 혜택이 규제 완화의 저주로 변해서다. 

"SVB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엄청 단순하다. 예금 받아서 자금을 조달하고, 그걸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 흔한 파생상품도 없다. 그런데 스타트업·IT사 호황으로 대출 규모 자체가 크지 않았고, 결국 다른 방향으로 수익성을 제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17년 244억 달러 규모에 불과했던 투자증권이 2021년 말 1280억 달러로 확대됐고, 파산 사태 직전인 2022년 말에도 1201억 달러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호황으로 예금(2017년 443억 달러→2022년 1731억 달러)이 많아졌는데, 역시 호황으로 인해 대출 증가폭(2017년 229억 달러→2022년 736억 달러)이 상대적으로 저조하자 수익성 도모를 위해 투자증권을 늘린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됐다. SVB는 HTM증권(만기보유증권) 장기채권을 엄청 많이 사들인 상태였고, 이 가운데 지난해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서 장기채 가격이 떨어졌다. HTM증권은 대차대조표에 공정가치(시세)가 아닌 장부가액(순자산가치)으로 표기되는데, 그러면서 미실현손실이 발생했다. 2022년 SVB 대차대조표엔 총 177억 달러 규모 미실현손실이 있다고 조그맣게 써있다. HTM증권에서만 152억 달러다. 총자본(163억 달러)을 초과하는 손실이 지난해 말 난 셈이다. 실현이었으면 이미 파산하고도 남은 상태다.

대형 은행이라면 미실현손실이 있어도 예금주 충성도가 높아서 예금 이탈 가능성이 없는데, SVB는 이탈 가능성이 높은 중형 사업은행이었다. 실제로 2022년 말에 예금이 줄어드는 현상이 있었고, 이는 올해 초 더 심화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SVB는 지난 3월 8일 유동성 확충 과정에서 손실을 얼마나 입었는지, 앞으로 자본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AFS증권(매도가능증권, 단기매매증권과 만기보유증권이 아닌, 경우에 따라 매도해 현금화 가능한 증권) 포트폴리오 정리에 따라 18억 달러 규모 손실이 실현됐고, 22.5억 달러 규모 자본을 확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뱅크런을 자초했다. 예금 이탈 속도를 가속화시킨 것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연준은 SVB 파산은 은행 자체만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마이클 바 연준 부의장은 "SVB는 부실경영의 교과적인 사례다. 투자증권(장기채권) 관련 금리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지도 않았고, 효과적 측정 도구나 모형, 정량지표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연준은 감독을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은행이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데에 포인트를 준 증언으로 느껴졌다. 법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SVB는 2010년 금융개혁법 하에 강하게 감독되고 있었는데, 2019년 트럼프 행정부 시절 규제완화법(경제성장, 규제완화 및 소비자보호법)이 통과되면서 연준의 규제 체계가 변경됐고, 그 결과 SVB에게 스트레스테스트 빈도 감축, 정리계획 제출 의무 면제 등 완화된 규제가 적용됐다. 이에 따라 SVB는 규제 완화의 혜택을 누렸는데, 결과적으론 규제 완화의 저주를 겪은 셈이다. 연준은 법대로 했으니 청문회에서 자신들은 잘했다고 한 것이고, 은행이 잘못한 점만 강조한 것이다."

특히 그는 SVB 파산 사태라는 위기에 대한 당국의 대응 과정에서 향후 거대한 모럴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목격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연준과 FDIC는 SVB를 '대마불사' 기관으로 판단하고 예금 전액 보장을 권유했고, 재무부가 이를 수용했다.  SVB 예금주는 대부분 기업 고객으로 각기 예금보호 상한(25만 달러)을 크게 초과한다. 금융 안정을 위한 비부보예금(비보호대상예금)의 보호 필요성을 재무부가 시스템적 관점에서 인정한 것으로 정부 주도 '구제'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중형 은행도 현실적으로 대마불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보다 중요한 부분은 '한시적 펀딩 프로그램'(Bank Term Funding Program)을 통해서 은행에게 무조건 유동성을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은행이 보유한 국채 등을 '액면가'로 평가해 담보로 잡고, 그 담보 가액만큼 대출해주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그런데 지금 장기 만기 국채의 시가는 연준의 금리 인상 영향으로 액면가의 60~70% 수준에 형성돼 있다. 굉장히 유리한 담보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예금 전액 보장도 파격적인데, 담보 룰은 더 파격적이다.

이렇게 너그럽게 담보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건 향후 담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바꿀 공산이 커 보인다. 이자율이 떨어지면 채권 가격이 오를 테니 이득이고, 금리가 오르더라도 채권가 하락에 따른 손해는 연준이 다 메워줄 거라는 식으로 생각할 것이니, 앞으론 은행이 아무 걱정 없이 국채를 막 사들일 거다. 엄청난 모럴해저드가 나타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콘티브라운 펜실베니아대학교 교수는 "당국의 이번 대응은 둘 중 하나일 것으로 평가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민반응'이거나, 우리처럼 내부 기밀자료에 접근할 수 없는 외부자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미국 은행 시스템에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내가 보기에도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두 가지 중 후자가 정답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지속된 금리 상승으로 인해 미국 은행 시스템(총 4884개)의 총 자산 시장가치는 장부가치보다 2조 달러 가량 낮은 실정으로 전해진다. 미실현손실이 2조 달러라는 의미다. 이는 총자본(2.3조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SVB보다 더 심각한 미실현손실을 경험 중인 은행이 500개 정도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홍범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 제공=동반성장연구소
김홍범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 제공=동반성장연구소

그러면서 김 명예교수는 금융에 대한 국가개입이 증대될수록 규제와 보호간 악순환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며, 금융시스템 왜곡까지 계속 늘어나는 우려할 만한 '해로운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국가의 금융 개입을 줄이기 위해선 공적부문이 떠안은 위험을 다시 민간부문으로 되돌리는 게 유일하고도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차선책'으로 '여우와 고슴도치'라는 우화를 소개했다.

"모든 은행에 천편일률적인, 담보가치도 시가보다 훨씬 부풀린 파격적 지원, 이게 과연 해결책일까. 국가개입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금융이) 악화되는 과정으로 가는 게 분명해 보이는 상황 가운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뭘까. 연준(최종대부자) 등 정부의 역할이 '구제'로 전락하지 않도록 규율을 수립하고, 예금보호제도를 축소시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일까. SVB 파산 사태 직후 미국 금융당국의 정책 대응을 보면 이 같은 해결책의 실행은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나마 실행 가능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차선책은 무엇일까. 하도 답답해서 머리를 짜내다가 '여우와 고슴도치'라는 우화를 생각했다. 이 우화에 나오는 여우는 깊은 강물을 헤엄쳐 건너느라 지쳐 모기떼가 달라 붙는데도 가만히 쉬고만 있다. 이를 딱하게 여긴 고슴도치가 여우에게 다가와 모기떼를 쫓아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여우는 이 모기떼를 쫓으면 다른 모기떼가 몰려와 더 많은 피를 빨 것이니 그냥 두라며 거절했다. 제대로 된 해결책 실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임기응변 대처만 가능하다면 차라리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견디는 게 장기적으로 더 낫다는 교훈을 품고 있는 이야기다. 금융당국의 금융위기 대응에 이 우화를 적용해보면 우린 과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이건 여러분들의 생각에 맡긴다."

김 명예교수는 이날 강연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SVB라는 개별 은행의 경영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연준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더욱이 은행들이 경영을 못할 수 있기 때문에 감독자가 필요한 것인데…. 그런데 왜 연준은 사태가 터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을까요. 그건 제가 미처 파악을 못했습니다(웃음)"라고.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서 이에 대한 답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국가의 금융 개입 증대는 국가권위주의 확대 영향이 아니겠느냐는 청중 질문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포퓰리즘이 더해져서 금융이 한동안 계속 망가지고, 경제논리가 어그러질 것 같아요. 그런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 예금 전액 보장 정책도 기본적으로 포퓰리즘이라고 봐야 하고요. 물론,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한다면 그것도 공감합니다. 은행 시스템이 위험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왜 이렇게 틀린 쪽으로 가도록 문제를 방치했느냐에 있죠. 위기에는 모럴해저드 언급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유명한 분이 계신데요. 아니, 평소에도 레슨(Lesson)을 안 주면서 위기 때도 레슨을 안 주면 어떻게 하나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권위주의와 포퓰리즘,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감독당국이 감독을 하는 건지, (금융사들과) 상생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상생이라는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 가치는 상생을 추구하는 기관이 해야 할 일이죠. 감독기관은 감독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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