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는 왜 괴물이 됐나, 집필 고민 중인 金’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 죄다 녹음해서 공유하고
안에서 하지도 않은 얘기를 마치 얘기한 것처럼
블러핑(bluffing) 심하게 해 한 사람 바보 만드는
폭력적인 일들 반복,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부류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청년 정신을 찾고 있다. 생물학적 나이를 떠나 구체제의 불의와 부조리, 불합리를 답습한다면 새체제를 여는 청년이라 할 수 없다. 그런 자들로 사회를 개혁해 미래를 열 수 없다.
새롭다는 것은 구태와 과감히 작별할 때만이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 무모한 도전일지언정 패기 있게 부딪쳐 보는 열정, 때 묻지 않는 순수함으로 타락과 싸워나가는 결단력을 보일 때 의협심을 갖춘 청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를 위해 노력하는 신념과 소신을 갖춘 자에게 청년이란 칭호를 부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청년 YS
정치인 중에서는 YS가 대표적 청년 정치인이다. 그는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25살 정계에 입문한 뒤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자유당 정권이 사사오입을 단행하자 이에 맞서 야당의 길을 선택했다. 박정희 정권 때는 삼선개헌 저지를 위해 하루 두세 시간씩밖에 잠을 못 자면서도 반대 투쟁을 전개했다. 초산 테러를 당했음에도 굴하지 않았으며 원내총무 5회, 최연소 야당 총재를 하는 동안 스스로의 정치력으로 입지를 다져갔다. 반독재 투쟁 전선을 공고히 하고자 야당 세력 간의 반목 대신 통합을 이루고자 애써왔다.
“YS-DJ(김대중) 때나 운동권 1세대 때는 청년이었지만 어른 대접을 받았다고 해요. 대학생들도 방학이 돼 시골집에 내려가면 아버지들하고 똑같은 대우를 해줬대요. 1세대 운동권들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개혁해야겠다, 그런 의지를 갖춘 분이라고 들었어요.”
주대환 <제3의 길> 대표의 말을 인용해, 김소연 변호사가 전해왔다. 지난달 31일 서울역 카페에서 만났을 때다.
밀레니얼 세대인 청년 정치인 출신인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 <청년 정치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라는 책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 재작년 출간한 <페미니즘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오세라비-김소연 공저)에 이어서다.
오늘날 청년 정치의 현주소
몇 해 전부터 2030 MZ 이슈가 부상하면서 당사자성에 기초한 청년 정치가 주목받고 있다. 정계 입문 수도 대폭 늘어가는 추세다. 이런 흐름에 대해, 그는 “청년 정치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라는 말부터 해왔다.
김소연 변호사(이하 김소연) : YS도 청년 정치인으로 혜택받고 조명됐던 게 아니었잖아요. 그냥 정치인이었지.
고개를 끄덕였다.
김소연 : 적어도 청년정치인이라 하면 어떤 정책을 집행할 때 그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고 겁 없이 질문도 하고 부딪쳐도 보고 해당 당사자들을 만나보기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반문해왔다.
김소연 : 요즘은 어떤가요. 지금의 이준석을 필두로 한 청년 호소인들은 청년 정치 자체가 목적이자 수단이 돼버렸어요.
-어느 면에서요.
김소연 : 청년 정치를 위한 청년 정치에 의한 청년 정치 자체를 구현하는 게 청년 정치인인 거예요. 내용은 상관없어요. 자기들이 ‘틀딱 수구세력’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의 말을 반복해도 그네들이 하면 청년 정치가 되는 거죠. 줄서기만 있고 예산서 하나 볼 줄 모르면서 말이에요.”
수년간 ‘이준석식 청년 정치’의 폐단에 대해 “권력 투쟁에만 특화돼 왔다”고 꼬집어 온 그다. 관련해 읽을만한 글이 있다며 국민의힘 중앙청년분과 옥지원 부위원장의 페북 글을 소개하며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준석의 청년은 기적의 논리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준석에 의하면, 청년은 무슨 말을 해도 다 옳다. 이준석 말 안 들으면 다 구태다. 이준석 생각이랑 다르면 윤핵관, 틀딱, 페미가 된다. 하나라도 다르면 배제한다. 청년이라도 친이준석이 아니면, 구태다. 청년이라도 남자들과 다른 말을 하면, 페미다. 청년이라도 생각이 구태스러운 사람도 있고 나이가 있어도 생각이 젊은 사람도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안 중요하고 청년은 좋은 거고 틀딱은 구태다. 한 마디로 매우 배타적이다. 자기한테 유리할 때만 공정하다. 여자는 페미로 몰고 중장년층은 틀딱이라는 전제가 작동돼야지만, 즉 남성이고 청년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비교우위를 점할 수 있어야지만 편안하고 공정하다고 느낀다.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것에 만족하고, 제 위치로 돌려놓는 것을 불공정이라고 한다. (후략)” - 옥지원의 페북 글 중-
“청년 정치, 블루오션처럼 돼”
김소연 : 이준석이 좋은 모델을 만들었어요. 방송하고, 유명해지고, 돈 벌고 배지 달면, 이보다 뛰어난 공룡 벤처 스타트업이 없거든요. 이들에게 청년 정치는 블루오션일 뿐이에요.
단언했다.
김소연 : 잭팟 터지면 평생 먹고사는 직업이 된 거예요. 청년이란 이름을 단, 가성비 좋은 직업이 된 거예요. 그럼에도 사회생활하려는 청년이 대부분이지, 정치판에 들어와서 분탕 치면서 내 자리 내놔라. 할당해달라는 주장은 안 하거든요. 그게 공정은 아니니까요.
-(이 전 대표 경우) 청년 할당제 폐지 주장도 했었는데요.
김소연 : 스스로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고, 경쟁을 뚫고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당위에 빠져 있다고 봐요. 본인은 꽃가마 탄 사람인데 말이죠.
이준석 전 대표는 ‘아빠 친구 찬스’ 논란이 있었다. 2011년 26세의 정치 입문 당시 아버지 친구인 유승민 전 대표를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체제의 비대위원으로 임명됐다. 손수조 비대위원과 함께 ‘박근혜 키즈’로도 불렸지만, 실제는 ‘유승민 키즈’로 평가돼왔다.
새누리당 때부터 미래통합당까지 서울 노원 공천을 받을 때도 청년 우선 몫의 단수 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이런 이유로 청년할당제 폐지를 언급할 당시 특혜를 받아왔던 당사자가 정작 청년 사다리를 걷어내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어왔다.
김소연 : 공정의 상징이 되고 싶으니 능력주의 화신처럼 구는 거예요. ‘할당은 안 돼. 나처럼 해야 해.’
동그란 눈이 찌푸려졌다.
-그게 뭔가요.
김소연 : 유일하게 내세우는 능력 있잖아요.
-?
김소연 : 토론이오. 정량평가, 정성평가가 안 되는 영역이거든요.
여러 토론 배틀을 해왔다.
김소연 : 그조차도 본인이 심판자가 되겠다는 거거든요.
이유가 뭘까.
김소연 : 왜냐면 자기 같은 사람이 계속 나와야 당위가 형성되거든요.
그리 가늠했다.
김소연 : 토론실력이 전부라는 규칙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근데 대한민국이 토론으로 생계를 판단할 만큼 한가한가요?
“결혼 상대도, 성 상납 의혹 여부도 토론으로 결정하지 그러냐”고 페북에 쓴 적도 있다.
또 하나,
김소연 : 이준석은 청년이 피해자라는 담론을 만드는 데 굉장한 역할을 했어요.
-요즘 사회를 대변하는 것 아닐까요.
김소연 : 이력서 한 장 제대로 써본 적 없는 사람이 또래를 어떻게 압니까.
좀 격앙한 듯,
김소연 : 진짜 어렵게 사는 이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노인 고독사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눈물 나는 사례가 얼마나 많나요.
청년 고독사를 들었다.
# 지난해 7월 청년 고독사 이야기가 전해졌다. 지방에서 올라온 30세 A 씨는 서울 강남구 한 원룸에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발견됐다. 방안 곳곳 생활고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했고, 취업을 희망하며 쓴 이력서가 수십여 장 가득했다고 한다. |
기가 막힐 일이다.
김소연 : 과거 386세대 때의 청년은 명분이라도 있었지, 지금의 청년 호소인들은 또래한테 할 말이 없습니다.
목소리가 울렸다.
김소연 : 사회적 약자인 그들의 대표가 자신들이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저성장 시대로 힘든 건 다 같이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 청년이 힘들다고 또래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이준석 당대표 나왔을 때 청년의 이름 더럽히지 말라고, 아무 데나 갖다 써먹지 말라고, 구태 중 구태라고 한 적이 있어요.
-이후 당대표가 됐고, 대권 꿈도 어필했잖아요.
김소연 : 이준석이란 사람이 대통령 하고 싶은 건 알겠어요.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처럼 나토를 가입해 IT 강국으로 뭘 하겠다, 지식산업 쪽이 강국이니 특허 쪽을 특화해보겠다든가 등의 내용 말이에요. 아 맞다. 김정은이 북조선에 있으니까 젊은 사람들끼리 만나 평화통일해 보겠다는 부푼 꿈이 있는 것 같기는 하더라고요. 그것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이 저 XX 짓을 계속 봐줘야 하는 건가요.
되물었다. 그러면서도,
김소연 : 이준석 십 년 정치 역사상 지금이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요?
김소연 : 계기나 이유를 막론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국민 만나면서 스킨십하고 있잖아요. 분탕이 목적이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이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진심으로 호평하는 모습.
이준석 전 대표는 성 접대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 건으로 7월 8일 당 윤리위로부터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뒤 전국을 돌며 지지자들을 만나왔다.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부류들”
-왜 (이준석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 건가요.
궁금했다. 차근차근 돌아가, 이 점부터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 시절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일부를 지칭하며,
김소연 : 사회생활하면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부류들 있잖아요?
-네.
김소연 : 그 집단이 그래요.
이준석 측근을 비롯해 청년정치학교 출신들, 하우스카페 모임 등 바른정당-새로운보수당계 중심의 직간접 조직 활동을 해온 이들을 말했다.
김소연 :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 죄다 녹음해서 공유하고, 안에서 하지도 않은 얘기를 마치 있었던 것처럼 블러핑(bluffing) 심하게 해 한 사람 바보 만드는 폭력적인 일들이 일상화돼 있더라고요.
인간 이하의 짓으로 보는 듯했다.
김소연 : 과거 K-Y 유출 사건부터 윤석열 대통령, 원희룡 장관과의 녹취록 공개까지 모두 반복되는 패턴들이죠.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이준석 전 대표는 청와대 행정관과 사석에서 나눈 대화 중 K-Y(김무성-유승민)를 저격하는 취지의 발언을 유출했고 해당 사건으로 한쪽이 퇴장할 때까지 권력 싸움을 가속화시킨 바 있다.
지난해에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과정 중 유출 논란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이준석 대표 측 실무진이 기자들에게 돌린 데 이어 ‘윤석열 금방 정리된다’ 발언 관련 ‘원희룡 vs 이준석’ 진실공방전을 둘러싸고 또 한 번 이 전 대표가 녹취록을 공개해 파문을 확산시켰다.
“K-Y부터 같은 수법”
김소연 : 혁신위 때도 그랬어요.
“권력 투쟁에 혈안이 돼 녹음하고 유출하고 사건을 키워 한 쪽을 내몰려고 했다”고 했다.
김소연 : 지켜보면서 ‘너네랑은 절대 아무것도 안 해’를 마음먹게 됐어요. 특이하게 특정 몇몇은 나쁠 수 있을지언정 나머지는 평범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 집단은 대부분이 그래요.
혀를 내둘렀다.
김소연 : 청년 정치를 한다며 온갖 불법과 범죄를 학습하는 상황이더라고요. 한쪽은 시민단체 보조금 빼먹고, 386한테 줄 서는 게 일이라면, 이쪽 친구들은 과감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본인들이 국회의원 배지도 안 달고 선출직에 당선된 적도 없으면서 뭐라도 된 양 갑질하고 영향력 행사하고 범죄나 불법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행태를 보이는 거죠.
대표적인 모습이 “이준석 성접대 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 집단의 공통점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김소연 : 도련님 정치라고 해야 할지 약간의 혼종 같기도 해요. 강남좌파와 다르면서도 저 자리는 내 거야. 세습정치를 당연히 여기는 부류부터 군림하려는 모습 등 독특한 사고를 하고 있어요.
혁신위 출범 배경
2019년 7월 1일 바른미래당 혁신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그 무렵 당은 6·13 지방선거 참패에 이어 4·13 재보궐까지 연패하면서 갈림길에 있었다. 개혁보수, 안철수계, 호남계로 한 지붕 세 가족을 이뤘던 당은 영호남 통합 및 중도와 합리적 진보, 개혁보수 간 결합이라는 거창한 가치적 명분과 달리 물과 기름 같은 생활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김소연 : 중도실험은 안철수 대표 개인의 캐릭터로 밀고 갔다면 실효성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모였었기 때문에 애초에 화학적 결합이 도저히 불가능했던 거지요.
1년 남짓 남은 21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공천권을 얻기 위해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지였다. 계파별로는 각자가 생각하는 활로도 달랐다. 안철수계는 안 전 대표가 해외로 가 있던 만큼 로드맵을 정하는 대신 사안에 따라 오고 갔다.
유승민 중심의 바른정당계는 개개인으로 보면 결집력이 강한 것은 아니었으나 행동에 나설 때는 집단화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속내는 자유한국당(국민의힘)과 다시 합쳐 공천권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는 모습이었다. 지역 출마를 염두에 둔 호남계 일부는 당이 보수화되는 순간 총선서 기약할 수 없기에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손학규 대표는 거대 양당에 흡수되지 않도록 다당제를 지켜야 한다는 주의였다.
당은 크게는 바른정당계(비당권파) 대 손학규+호남계(당권파) 간 내홍으로 극심해져 갔다. 접전을 찾은 것이 계파 갈등 봉합과 총선 승리를 위해 혁신안을 논의하는 혁신위원회를 출범키로 한 것이었다.
그 무렵 바른미래당 소속이었던 김소연 변호사는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점에 집중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일부 시민단체 추진으로 전국서 설치돼가던 상황. 김 변호사는 대전시청 앞 등에 건립된 헐벗고 깡마른 노동자 모델은 우리 조상이 아닌 일본 홋카이도 현장에서 학대당한 일본인인데다 허가받지 않은 불법 설치물이라며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소녀상에 이어 노동자 동상을 만든 작가들은 김 변호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으나 법원에서는 이를 기각했다.
김 변호사는 더불어 시민 세금으로 진행되는 주민참여예산제가 특정단체의 예산 나눠먹기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제기하면서 일부 시민단체에 맞섰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위가 꾸려졌고 김 변호사는 주대환 혁신위원장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들어가게 됐다. 주 위원장과는 강제징용노동자 동상 문제 때부터 교류를 해오던 사이였다.
“혁신안보다 孫 퇴진론만”
혁신위원들은 주 위원장을 제외하면 대다수 MZ세대들로 채워졌다. 바른정당계인 권성주-이기인, 안철수계인 구혁모-장지훈, 당권파에서 추천한 김지환, 김지나, 조용술, 주 위원장이 추천한 김소연 변호사가 혁신위원의 면면을 이뤘다. 처음엔 당권 다툼이나 계파싸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서명을 할 정도로 의기투합하려는 모양새를 비췄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도로 원상태가 됐다는 게 김 변호사의 지적이다.
김소연 : 바른미래당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몰랐는데 (입당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혁신위 회의 3-4회차 가니까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고 했다.
김소연 : (바른정당계에서) 밖에 나갔다가 전화 받고 들어오면 막 푸시를 하는 거예요.
-어떻게요?
김소연 : 손학규 대표 퇴진을 1안으로 무조건 내세우는 거예요. 청년의 이름으로 노욕이라고 하면서 사람 참 바보 만드는 거예요.
한때 치매설도 돌았다.
김소연 : 내막을 알고 보니 손학규 대표가 뭘 잘못한 게 없어요. 지방선거 참패 후 당이 힘들 때 당대표 된 거고 이를 지키려 한 것도 있지만 자유한국당 가려는 바른정당계와 버티는 호남쪽 의원들 사이에서 제3지대를 지키려 했던 거죠.
-혁신위가 파국을 맞게 된 결정적 계기는 뭣 때문이었나요.
김소연 : 5회차, 6회차 회의 때였을 거예요.
생각을 더듬어 나갔다.
김소연 : 갑자기 어디서 급하게 오더 받고 왔는지, 어떻게든 오늘(7월 10일) 내로 결론 내야 한다는 거예요.
바른정당계가 그랬다는 거였다.
김소연 : 다수결로 해야 한다고 난리 치는 거예요. 이건 폭력이거든요. 주대환 위원장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따로 불러 설득하고 달래느라 한 말을 또 녹음해서 공개하고….
다시 녹음 유출 사건이 이어졌다. “‘늙은 호랑이가 덫에 걸려서 울부짖고 있다. 틀에서 풀어줘야 한다’”고 한 주 위원장의 발언을 녹음해 이를 공개했다. 주 위원장 역시 손 대표 퇴진에 동의했다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김소연 : ‘사람 너무 짓밟지 말아라’ ‘퇴로를 열어줘라’ ‘너네 너무 심하다’ 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거란 말이에요. 달래려고 한 건데 그걸 녹음해서 오픈한 거예요. 그걸로 방송 나가서 떠들고….
또, 이런 일도 있다며,
김소연 : 당 최고위 안에서 대놓고 뭐라고 하다가(손 대표를 공개 저격하다가) 기자들 싹 빠지면 비공개회의 때는 막상 뭐라고 안 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눈치 보고 있다가 백블에서만 난리 치는 거예요. 마치 안에서 무슨 일이 었었던 것처럼, 자기들이 무시당한 양 뭘 만들어대요. 피해자 코스프레하니까, 젊은 언론인들이 동조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때 수법을 다 봤어요.
혀를 찼다.
김소연 : 손학규 대표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이분은 면전서 자기 비난해도 심한 얘기를 하지 못해요. 굉장히 점잖은 분이죠. 뒤에서 뭐라 하지도 않고.
파국의 과정
다시 파국 직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로 넘어왔다.
김소연 : (바른정당계에서) 오늘(7월 10일) 내로 끝내자고 밀어붙이는데, 주 위원장이 정말 멘탈 나가겠더라고요. 그래서 ‘좋다. 하자. 밤샘토론 하자.’
김 변호사도 끝장을 볼 참이었다. 다음날 형사재판이 있어, 회의에 끝까지 참석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렇지만, 안 되겠다 싶어 결판을 볼 작정이었다.
김소연 : 토론 끝에 결국, 그날 밤 12시 넘어 표결에 부쳤어요.
5대 4로 밀렸다.
‘당대표 퇴진’을 주장하는 쪽이 한 명 더 많았다.
김소연 : (안철수계인) 장지훈, 구혁모가 바른정당계에 넘어간 거예요.
안 전 대표가 정치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독일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김소연 : 그전엔 안 친했거든요.
고개를 저었다.
김소연 : 혁신위하면서 (바른정당계에서) 작업을 엄청나게 한 거예요.
안 넘어간 쪽은?
김소연 : 김지훈-조용술은 안 넘어갔고, 나야 워낙 ‘꼴통’이니 아무도 안 부르더라고요(웃음).
표결 결과에 주대환 위원장은 다음날(7월 11일) “당을 깨려는 검은 세력이 있다”며 혁신위원장 사퇴를 선언했다. “뒤에서 조종하지 말고 앞으로 나오라”고 발언하면서 ‘유승민 배후설’이 돌았다. 유 전 대표는 허위사실이라고 펄쩍 뛰었다. 김소연 변호사에 이어 김지환, 조용술 위원도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혁신위가 해체되려 하자, 남아 있는 바른정당계와 이에 동조한 장지훈 등은 “검은 세력은 오히려 주대환”이라며 반발했다. 권성주 위원은 혁신위 재개를 촉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손학규 대표는 바른정당계를 겨냥해 “한국당 가려면 혼자 가고 당을 끌고 갈 생각은 말라. 그런 일은 끝까지 막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중엔 결국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잖아요?
김소연 : 그렇죠.
“실패한 두 번의 쿠데타”
손 대표가 물러나지 않자 바른정당계는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둔 1월 당에서 나와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한 달여 뒤 자유한국당과 신설합당(미래통합당)했다.
김소연 : 자기들은 절대로 자유한국당에 안 돌아간다며 침을 뱉고 나온 사람들이잖아요. 나중엔 다 들어오더라고요.
당시 김 변호사는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연동형비례제 및 검경수사권, 공수처법 관련 범여권 4+1 동참에 반발해 탈당했던 상태였다.
김소연 : 당론을 따르는 게 당원의 의무일 수 있지만,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의 문제였어요.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고 위헌적인 법안에 동의할 수 없었어요.
이들과 달리 김 변호사는 반문(문재인)을 기치로 홀로 입당했다. 어쨌든 그 뒤 바른정당계와 다시 조우하게 된 점은 이채롭다.
-지나고 보면 바른정당계는 자유한국당 복귀를 위해 당권을 잡으려 했던 거 아닐까요.
결국, 당시 손 대표 말이 맞았다는 평가다.
김소연 : 혁신위 때부터 다 거짓말이었던 거죠.
생각이 났는지,
김소연 : 하태경 의원은 두 번의 쿠데타가 실패했다고 했어요.
혁신위 파행 후, 대전역에서였다. 하태경 의원과 친분이 있을 때였다. 김 변호사가 바른미래당에 영입될 무렵에는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
김소연 : 그래도 “비교적 솔직한 분이에요. 만나서 얘기하면.” 바른정당계와는 조금 차이를 두는 모습이 엿보였다. 어찌 됐든 비록 혁신위는 난장판으로 끝났지만, 주대환 위원장과 하 의원의 만남을 주선해 이 둘만은 화해를 시키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바람대로 셋이 대전역서 만나 화기애애한 만남을 가졌다. 이후 둔산역에서 하 의원이 말한 게 ‘쿠데타’ 발언이었다.
김소연 : 처음으로 당내 얘기를 해주던 날이었어요. 지분을 갖고 자유한국당 가서 당권 잡으러 가야 하는데 두 번의 쿠데타 모두 실패했다고 하더라고요.
두 번의 쿠데타는 무얼 말할까. 한 번은 혁신위 때를 말했다면, 첫 번째 쿠데타는 2019년 4월을 말했을 거로 짐작된다. 당이 4·3 보궐선거에서 패하자, 이를 명분으로 하태경-이준석 당시 최고위원은 ‘손학규 대표 퇴진론’을 들고 나오며 당무 보이콧을 선언했다. 한 달 넘게 최고위 회의를 불참했고 여론전을 통해 손 대표를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손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을 새로 세우는 등 상황을 진압하면서 퇴진 촉구도 힘을 잃어갔다. 그 뒤 혁신위 구성을 통해 퇴진론을 강행하려다 또다시 어그러졌다고 볼 수 있다.
김소연 : 본인들은 당권을 갖고 자유한국당과 거래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된 거죠. 회의 때도 ‘(총선서 기호) 3번 달고 어떻게 나가냐.’ 이런 얘기를 대놓고 했어요. 그래서 나도 '이 모임 자체가 2번을 달려고 임하는 것이냐'고 맞받았죠.
돌직구를 던졌다.
김소연 : 콕 집어 물으면 싸해져요.
그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소연 : 포장하기 바쁘더라고요. 문제는 나처럼 따지는 사람들은 없고 다들 순하단 말이에요. 콕 찌르면 난감해할까, 망설이고 에두르는 사이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밀어붙이는데 말이죠.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혁신위 때는 김 변호사가 그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었다.
김소연 : 내가 막 따지면, 도저히 안 되겠으니 주대환 위원장이 회의 다음으로 미루자고 끝내거든요.
그러면,
김소연 : 옆자리(바른정당계)에서 험상궂게 ‘회의 안 끝났습니다’ ‘앉으십시오.’ 책상 쾅, 두드리고….
주 위원장을 향해 으름장을 놨다고 한다.
김소연 : 지난번 이준석이 조수진 의원한테 책상치고 고성 한 것과 똑같이 하는 거예요.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尹-원희룡 녹음 공개도 마찬가지”
‘이준석계의 게릴라 작전’이라고도 했다.
김소연 : 다들 이런 습성을 잘 모르니까, 내가 작년에 <폴리뉴스> 통해 예언처럼 해놓은 거예요. 당시 원희룡 전 지사 녹음 터트릴 때 ‘얘네 또 시작이구나.’
했다고 한다.
김소연 : 보세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잖아요. 자기네 뜻대로 안 되면 깽판 치거든요.
지난해 11월 이준석 전 대표는 당 선대위 구성과 관련해 자신이 패싱 당했다며 “그렇다면 여기까지” 말하고는 윤석열 후보 선대위를 보이콧 했다.
일찌감치 대선 훨씬 전부터 “안철수 서울시장, 윤석열 대통령 되면 지구를 떠나겠다”고 했던 발언이 알려지면서 꺼림직한 상태였다. 이후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고 윤 후보가 울산으로 달려가서야, 극한 대치가 봉합됐다. 그러나 불안한 봉합이었다.
한 달여 뒤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성접대 및 증거인멸교사 의혹 건도 커질 때인 데다 1월경 당직 인선을 놓고 이 전 대표가 윤 후보를 비토하면서 당 내홍이 극에 달했다. 대선에 악영향을 가져오면서 국민의힘은 의총을 통해 당대표 사퇴 결의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의총 안에서 극적으로 윤 후보가 이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가까스로 봉합되는 모양새를 취했다.
공교롭게도 김 변호사는 그때 탈당했다.
김소연 : 성접대 받고 증거인멸 교사한 것이 명백해진 상태에서 그런 사람을 당대표로 두고 보궐선거에 나갈 수는 없었어요.
지난 1월 7일 김 변호사는 “당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팔아 호가호위하며 성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바로잡을 자정 능력이 없는 정당에 대해 대신 사과드린다”며 탈당계를 제출했다. 서울 서초갑 보궐을 준비 중이던 그는 성접대 당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국민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고도 했다.
이 전 대표는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에게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수차례 성 접대 및 금품을 제공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뒤 새누리당 청년비대위원도 하고, 봉사활동 단체인 ‘배움을나누는사람들’(배나사) 대표로서 좋은 이미지를 얻고 있던 시절이라 큰 충격을 안겼다. 여기에 김철근 정무실장을 시켜 2013년 접대 의전 담당자였던 장 모 제보자에게 7억 원 투자 각서를 미끼로 성상납 받은 적 없다는 허위 진술을 쓰게끔 증거인멸을 교사했다는 추가 의혹도 제기돼 혼란스러움을 부채질했다. 이 전 대표는 김 정무실장 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반박했지만, 의혹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김소연 : 누군가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탈당의 진짜 변이라며 해준 말이었다. 말처럼 그는 그동안 여러 기록을 남겨왔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는 “이준석을 편든다면 공범”이라는 등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대선이 지난 뒤에도 업그레이드는 계속됐다. ‘사회가 모든 게 다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지만 국민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라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어록을 인용하며 이 전 대표를 향해 “수사 받는 게 공정한 것”이라며 경고해 왔다.
“불법과 함께 할 수 없어”
사서 고생하는 것 같다는 취지로 응시하자, 김 변호사는 자신을 일컬어 범죄에 민감한 사람이라고 했다. 촉이 좋다고도 했다.
“형사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범죄를 탁 감지하면 조용히 알아보는 스타일이에요. 행동을 노출하면 안 되거든요.”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며 민주당 박범계 의원 측의 불법 정치자금 관련 공천 헌금을 폭로했을 때도 그랬다고 했다.
때는 2018년이었다. 민사고-카이스트-고대-독학사 출신의 여성 청년 워킹맘 변호사로서 대전서 이름을 얻고 있을 시절,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범계 의원이 김 변호사를 찾아왔다. 출마 권유를 하길래, 거절했더니 변호사한테 시의원 제의를 해서 미안하다면서도 나와달라고 통사정했다고 한다.
자신을 왜 영입하려 했는지, 내막에 대해 풀어놓기 시작했다.
김소연 : 朴은 ‘내가 여자 변호사를 시의원 정도로 공천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때만 해도 김 변호사는 박 의원에 대해 “듣던 거랑 달리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추진력 있고 진솔하게 통사정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면서 좋게 봤다고 한다.
김소연 :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 정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가 추대하는 게 아니라요. (박 의원이 그리 보였다고 한다) 한 번 시의원 제의를 거절하니까 대놓고 '나 좀 도와달라' 하더라고요. 그래. 이 정도 적극성이면 뭐라도 하겠다, 싶었어요. 순수하게 도와줄 마음으로 선거(김 변호사는 제8대 대전광역시의원으로 당선됐다)에 나갔던 거였죠.
“공천헌금 폭로”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삐걱댔다.
김소연 : 朴도 내 캐릭터를 잘 몰랐던 거죠. 나는 이상하면 이상하다고 말하거든요. 그제야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파악한 거예요. 이후 나를 고개 숙이게 하려는 시도를 보이더라고요. 급기야는 측근들이 공천헌금 1억 원을 달라고까지 했고요. 집요하게 요구했어요.
-(김소연 캐릭터 관련) 어떤 성향인지 모르지 않았을 텐데 왜 그랬다고 보나요.
김소연 : 범죄자로 묶어놔야 말을 잘 들을 것으로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요.
김 변호사는 맞섰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민주당 제명이었다.
김소연 : 윤리위가 열려 중앙당에 갔더니 단수공천해 줬으면 朴한테 고마워해야지 않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朴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그 자리 넣을 사람 없을 때 내게 사정사정해 나가 준 거다.’
김소연 : 이렇게 말하고 제명당했죠.
-아쉽지 않았나요.
김소연 : 좋았어요.
의외였다.
김소연 : 많이들 나를 부러워했어요(웃음).
-왜요.
김소연 : 지역위원장이 내려오면 시의원들은 의정 활동하다가도 집합을 해야 했어요.
줄 서는 모습을 “병풍 친다”에 빗댔다.
김소연 : (서구갑의) 박병석 의장(전 국회의장)은 사람들 보기 안 좋다고 시의원들 줄 세워 병풍 치게 안 하거든요. 일 잘하든 못하든 혼자 다니고 겸손해요.
반면에,
김소연 : 몇십 명 공천권을 쥐고 있어요. 구청장까지는 시당위원장과 지역위원장이 좌우하거든요. 호출하면 시의원들은 예속돼서 의정활동도 제대로 못 해요.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명됐으니 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있었다고 했다. 김 변호사의 폭로 이후 박 의원은 법무부 장관 취임 전인 2018년 12월 김 변호사를 상대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7월 패소했다. 불법자금을 요구한 측근들은 실형을 받았다. 박 의원은 이들과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주변 정치권에서는 겁 없이 덤비는 김 변호사의 모습에 “쟤 또라이 아니야?” 고 했다. 지인들 사이에서는 혼자 저러다 다치면 어떡하냐는 우려도 나왔다.
-무섭지 않나요.
김소연 :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 씩씩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朴에 맞설 때는 대전시의회 출입 기자분들 덕분에 버텼어요.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 폭로 건에 대해 서울은 <중앙일보> 정도만 다뤘다면, 대전 지역 언론에서는 집단으로 매일매일 기사를 써댔다고 한다. 박 의원이 언론사 상대로 소송도 걸었지만, 그 역시 패소했다.
김소연 : 지칠 때도 있었는데, ‘김 의원 그만두면 안 돼.’
용기를 준 것도 출입 기자들이었다. ‘기자들이 뽑은 의원 상’도 받았다. 비공식적인 상이었다. 각자가 펜 하나씩 들고 시의원실로 와서는 ‘우리 마음속 기자상은 김소연 의원’이라고 해줬다. 의정활동에 대한 보람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잊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짧다면 짧은 정치 여정인데 돌아보면 험난함이 컸다. 민주당을 거쳐 바른미래당서는 전쟁터와 같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국민의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 번은 윤석열 캠프에서 조직본부장 임명장을 받았을 때다.
김소연 : 이핵관(이준석 측) 기자들이 권성동 의원(총괄본부장)한테 전화해서는 ‘이준석과 갈라서려는 뜻이냐’ ‘당대표 무시하는 거냐’ 난리 쳤고, 그 뒤 선대위에서 해촉 보도자료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해촉에 이르게 된 내막을 아는 듯했다.
-항의하지 그랬어요.
김소연 : 서운했지만, 항의 같은 것은 안 했어요.
-선당후사 같은 마음이었나요.
김소연 : 한창 대선 중인데 이 문제가 대통령 귀에까지 들어갈 일이 아니잖아요.
혼자만 서운해하고 끝냈다. 대신 윤석열 후보가 자신이 총선 출마 때부터 강조해 왔던 탈원전 폐지, 여가부 폐지 등의 정책에 대해 최우선 공약으로 발표한 것에 위안을 삼았다.
-또 어떤 일이 있었나요.
김소연 : 이준석의 X신 발언(바른미래당 시절 청년정치학교 뒤풀이에서 이준석 당시 최고위원은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해 X신이라고 욕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을 미러링 해 역으로 그를 비판하자(일종의 풍자였다), 중앙당에서 당에 극히 해가 되는 발언이라며 징계를 내리려 했어요. 윤리위원 중 이준석 옹호자가 있었어요. ‘당대표가 맘에 안 들면 탈당해 맘껏 비판하지 그래요.’
김 변호사는 정색했다.
김소연 : ‘당대표가 당입니까. 북조선의 인민공화국에 있을 법한 얘깁니다. 우리가 뽑은 문 대통령을 당은 그럼 왜 비판하는 겁니까.’
반박했다.
‘이준석 저격수’로 통하면서 그의 지지자로부터 가족들에 대한 살해 협박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이준석 전 대표에게 성접대를 했다고 주장하는 김성진 아이카이스트 대표의 법률대리인을 맡았을 당시의 발언을 갖고 이 전 대표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되기도 했다.
김소연 : 명예훼손 성립조차 안 되는 일이에요. 허위사실이라면서 당사자(김성진)가 아닌 왜 나를 고소했는지부터가 의문이에요. 내 앞에서는 정면으로 못하면서, 항상 뒤에서 그래요. 부정선거 진실공방전 때도 몇 번이나 공개토론을 제의했지만 회피하더라고요.
비겁하다고 보는 듯했다.
-강골이다 보니 손해도 은근 많이 볼 것 같은데요. 일만 하고 빛을 보지 못한다거나, 운이 없는 듯도 하고요.
김소연 :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 빗대면요. 그게 왜 재밌냐면, 극이 드라마틱하고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신박해서거든요. 앞으로는 나처럼 일하는 정치인들이 조명 받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했다.
김소연 : 지금은 유튜브 통해 실시간으로 다 보여줄 수 있는 시대에요. 앞에서는 서민처럼 굴고 뒤에서는 귀족처럼 노는 정치인들이 더는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될 거예요.
“모두가 예할 때, 아니오”
-대단한 수재잖아요.
화제를 돌렸다. 1981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민족사관학교의 여자 첫 입학생이자 첫 졸업생이다. 민사고를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조기 합격하면서 그 같은 기록을 갖게 됐다. 학교 친구들의 부모들은 대다수 석박사 출신에 교수 등을 하고 있었다. 여상, 상고 나온 공무원 외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서민 가정의 그와는 다른 환경이었지만, 기죽지 않고 오직 공부가 즐거워 씩씩하게 헤쳐나갔다. 하지만 카이스트에서는 울기도 많이 운 듯했다.
김소연 : 융합형 인재 교육 중심의 민사고에서는 책도 많이 읽고 인문학 교육도 하는데 카이스트에 와보니 시험만 보는 과학고 출신들이 대다수였어요. 분위기가 달랐어요. 이공계로 갔는데 각자 과학고별로 족구 하고, 게임 하고, 야식 먹고 하는데 나만 혼자 덩그러니 여자 기숙사에 남아 있을 때가 많았어요.
진로를 수정해 입시를 다시 치렀다. 우여곡절 끝에 고려대 경영학과를 들어갔으나 도저히 맞지 않았다. 집안 형편도 어렵고, 휴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하고, 서울 반지하에서 동생 뒷바라지하며 살던 때였다. 홀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적잖았다. 그 와중에 남자친구가 취직하면서, 부모의 권유로 결혼을 하게 됐다. 임신 8개월 만에 고시 세 개를 보는 등 끝까지 꿈을 놓지 않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아픈 것을 알게 됐다. 공부를 접고, 일부터 찾아 나섰다. 휴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던 중 맡게 된 것이 교습서 강사 자리였다. 이후 독학사와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변호사가 되기까지 쉼 없는 청년 워킹맘으로서 살았다.
김소연 : 덕분에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어린 친구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진로 고민할 때 상담도 많이 해줄 수 있었어요. 열여덟 열아홉 어린 나이 때는 별 것 아닌 것도 큰일처럼 여겨지거든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발랄함이 느껴졌다. 끝으로 ‘청년 정신’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물었다.
김소연 : 옳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혼자서라도 예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는 말로 들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청년 정치라는 말을 싫어하는 그에게 새로운 찐 청년스러움이 묻어나니 말이다. 김소연식 청년 정치의 너머가 보고 싶다.
좌우명 : 꿈은 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