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예·적금 금리 최대 0.4% 인상 발표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곽수연 기자]
은행 주택담보 대출금리는 대폭 상승하는데 예·적금 수신금리는 정체되거나 소폭 상승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예대마진(대출금리와 예금금리의 차이)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지적이죠.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시중 금융지주사의 올해 3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은 사상 최대 실적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의 진정한 승리자는 은행이라는 뼈 있는 말도 나옵니다.
더 나아가 대출금리 급등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공개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지난 5일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진행되는 은행의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26일 오전 기준 1만 5817명이 동의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청원인은 "은행과 금융기관이 '대출의 희소성'을 무기로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를 없애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며 "이미 받은 대출을 연장할 때도 은행이 가산금리를 1%씩 높여서 연장해주곤 한다. 당장 갚을 돈이 없는 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연장을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는 대출 총량관리 가이드를 지키지 않고 마구 대출해주던 금융기관이 하반기에는 가계대출 총량관리로 대출 규모가 줄어드니 수익성 놓치지 않기 위해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는 없앤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금융당국은 금리인상으로 인한 피해가 우려된다"며 "가계대출 관리를 해놓고 금융기관이 금리를 크게 인상하는 것을 좌시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구를 위한 대출규제냐"고 금융당국에게 질문을 던지며 "서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빠른 조치를 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처럼 은행과 금융당국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비난 여론이 확산하자, 금융위원회는 사태 진화에 들어갔습니다. 금융위는 지난 1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낮아졌던 시중 대출금리가 올해 하반기 들어 크게 상승한 점을 인정했습니다. 한국은행 통계를 언급하면서 올해 3분기 은행 신용대출금리는 3.75→4.15%, 주택담보대출금리는 2.74→3.01% 상승했다는 점을 시인했죠.
금융위는 하반기 대출금리가 상승한 이유는 대출의 기준이 되는 준거금리가 상승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대출금리는 준거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차감해서 결정되는데 준거금리가 상승했으니 대출금리도 상승했다는 뜻입니다. 최근 대출의 준거금리가 되는 국채 3년·은행채 1년의 금리는 글로벌 긴축과 기준금리 인상의 경계감 등으로 크게 올랐습니다. 금융위는 가산금리·우대금리가 차주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측면도 있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행의 대출금리가 상승한 것은 은행의 가산·우대금리 조정보다는 준거금리 상승이 더 큰 영향을 줬다는 의미입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치솟는 예대마진에 대해 “시장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예대마진 문제는 가격과 관련된 것이어서 대출금리 결정에 대해서 정부가 직접 개입하긴 어렵다”며 시장 자율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지난 23일 기자들에게 "은행권의 여·수신상품 금리 결정에 개입은 하지는 않겠지만 벌어진 예대금리차를 예의 주시하며 그 원인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금융당국의 해명은 과연 여론의 비난을 잠재웠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논란에 불을 더 지핀 모양새입니다. 점입가경으로 금융위 해명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者)도 등장했고요.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는 예대금리차가 더 확대되는 이유는 은행이 예금이자는 소폭 인상시켜놓고 대출이자는 큰 폭으로 인상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출금리 급등은 준거금리 상승 때문이라는 해명에 대해, 금융위가 현장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단체는 규탄했습니다. 금융정의연대는 "금융위 주장대로 준거금리가 대출금리 인상에 큰 영향을 미쳤더라도, 예대금리 차가 큰 폭으로 벌어진 것은 예금 수신금리가 그에 맞게 인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은행들이 작년과 달리 올해 연말 예금 특판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연말 특판이란 매년 연말이면 은행이 내놓은 특별판매 예·적금 상품을 뜻합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규제에 나서면서 굳이 예금을 통해 대출 재원을 마련할 필요성이 적어진 은행들이 좋은 조건의 수신상품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는 은행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라는 미명 아래 예금금리를 올리고 있지 않는 작금의 상황을 비판한 것이죠.
아울러 대출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는 금융위원장 발언 관련해, 금융정의연대는 과거 금융당국이 시장에 적극 개입한 사례를 언급하며 '불합리한 논리'에 불과하다고 질타했습니다. 실제로 2017년 김용범 당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산금리 등 대출금리를 합리적으로 산정하고 과도한 대출금리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2012년에 금융감독원은 과도하게 대출금리를 올린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금리 적정성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면서 시민단체는 최근 금융당국이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를 낮추기 위해 원가까지 계산하며 카드업계에 적극 개입했는데 은행에는 왜 시장원리를 적용하느냐며 '모순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시장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금융위는 왜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단체는 "대출 규제로 자금공급이 줄어 시장원리에 따라 금리가 상승한 것이라면 금융당국은 스스로 최근 대출 금리인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금리 상승이 시장원리의 결과라면 그 원인을 결국 금융당국이 제공했다는 강력한 한방을 날린 것이죠.
시민단체의 해명이 명쾌했던 것인가요. 반론을 제기한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은행이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KB국민은행은 △국민슈퍼정기예금 등 정기예금 △시장성예금 17종 △KB 두근두근 여행적금 등 적립식 예금 26종의 금리를 오는 29일부터 최고 0.4% 포인트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서 기준금리 0.25% 포인트 추가 인상을 반영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예·적금 금리를 최고 0.4% 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에 신한, 농협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예·적금 금리 인상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사자성어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네요. 사필귀정(事必歸正)-무슨 일이든 결국 옳은 이치대로 돌아간다.
좌우명 : 정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