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패턴, 희망은 개헌특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병묵 기자)
개헌론이 돌아왔다. 봄이 오면 돌아오는 제비처럼, 여의도 정가를 중심으로 다시 개헌 논의에 불이 지펴졌다.
그러나 개헌이 실제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제비가 가을이 오면 남쪽으로 떠나듯, 개헌은 늘 다른 이슈에 밀려났다. 국민들도 개헌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다른 이슈에 비하면 관심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지난 2015년, 흔치않게 ‘선거없는 해’를 맞으며 개헌의 ‘골든 타임’이란 이야기도 나왔지만 결국 아무 일 없이 지나보냈다.
그럼에도 개헌론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을 비롯해 ‘개헌전도사’ 이재오 전 의원과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 등 개헌 선봉에 섰던 이들이 원외로 나가는 전력누수가 있었음에도 개헌론은 다시 활활 타올랐다. <중앙일보>와 한국정치학회가 23일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개헌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은 203명으로, 의결정족수 200명을 넘어선 상황이다.
30살이 넘은 헌법은 긴 시간 자신의 책임을 다해왔다. 이제 그 짐을 넘겨주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까. 열릴 듯 열리지 않는 제7공화국의 문턱에서, 지금 정치권의 다양한 개헌논의와 그 현주소를 <시사오늘>이 살펴봤다.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 9차례의 개헌
1948년 7월 17일 건국헌법이 제정되며 한국의 헌정사(憲政史)가 시작됐다. 이후 헌법은 총 9차례의 개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대한민국은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첫 개헌은 1952년에 이뤄졌다. 일명 ‘발췌개헌’이라고도 불리는 제1차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가 골자였다. 1950년 5월 3일, 이승만 대통령은 총선이 야당의 승리로 돌아가며 재선이 어려워지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정부가 낸 개헌안과 국회가 낸 개헌안 에서 일부만 각각 발췌해 개헌을 단행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1954년 제2차 개헌은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이라고 불리며 결국 4·19 혁명을 불러왔다. 2차 개헌의 핵심이 대통령의 중임제한을 폐지, 종신집권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렸다.
1960년의 제3차 개헌은 내각책임제라는 한국 초유의 권력구조를 채택했으며, 헌법재판소를 설치키로 했다. 같은 해 반민주행위자의 처벌할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를 관장할 특별재판소, 특별검찰부 설치근거를 마련할 제4차 개헌이 이어졌다.
제 5차 개헌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며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헌법안을 확정하며 이뤄졌다. 헌법전문의 연도표기를 단기에서 서기로 변경했고 이 때 국민투표제가 헌법 개정 절차에 들어갔다. 1967년 제6차 개헌은 이른바 ‘3선 개헌’으로 박 대통령의 3선을 가능케 했으며, 1972년 제7차 개헌은 박 대통령의 사실상 종신집권을 보장했다. 이 개헌이 바로 군부독재의 상징과도 같은 ‘유신헌법’의 선포로, 결국 박정희 정권의 종말을 가져온 단초가 됐다.
다음 개정은 전두환 정권서 이뤄진다. 1980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전 전 대통령은 제8차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7년으로 연장했다. 이후 제9차 개헌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벌어지며 최초로 여야 합의로 행해졌다. 현행 헌법 체제를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번 개헌 논의는 다를까?
개헌은 수 십 년간 논의만 됐을 뿐 결국엔 실패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사가 반복되리라는 법은 없다. 과거의개헌논의와 이번 20대국회 출범과 함께 대두된 개헌논의는 무엇이 같고 다를까. 여전히 권력구조 재편 중심의 논의라는 점, 국회의장이 화두를 던졌다는 점은 같다. 다만 여야는 물론 지자체장들까지, 정계 전반의 화답이 좀 더 뜨겁다는 것과 권력구조에만 한정되지 않고 지방자치제 강화 등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민주화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현행 헌법은 1987년 9차 개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지난 개헌 대부분이 권력구조를 바꿔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목적 하에 이뤄진 경우였음을 거울삼아,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에 초점이 맞춰진 헌법이다. 그러다 보니 이후의 개헌 논의도 기본적으로 권력구조와 관련돼 이뤄졌다.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이 ‘개헌’ 하면 떠오르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문민정부 출범을 앞두고 벌어졌던 내각제 각서 파동, DJP 연합의 내각제 개헌 약속, 참여정부에서 이어진 ‘대통령 중임제 원 포인트 개헌’시도 모두 권력구조와 관계된 사안이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3년차에 개헌’ 제안과 가장 최근 사례로 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졌던 지난 2014년 ‘개헌 봇물 사건’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헌 논의의 중심은 권력구조다. 소위 ‘대권 주자급’으로 불리는 정치권 안팎의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저마다 어떤 형식의 개헌을 주장하는지가 관심사다.
최근 수 년 간은 개헌 논의의 물꼬를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트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지난 19대 국회 전반기 강창희 전 국회의장과, 후반기 정의화 전 국회의장 역시 임기 초부터 강한 개헌 드라이브를 건 바 있다. 얼마 전 취임한 20대 국회 정세균 의장은 지난 13일 국회 개원사에서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니다”라면서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개헌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벌써 몇 수 째냐…개헌 성사 가능성은
박성원 전 동아일보 논설실장은 지난 2014년 국민대학교 강연에서 개헌이 이뤄지지 않는 요소로 정치세력 간 서로 다른 권력구조 선호, 현직 대통령의 반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시각, 차기 유력주자들의 미온적 태도 등을 꼽았다. 이들 중 차기 유력주자들의 태도는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변모했지만, 개헌 방향에 대한 충돌은 여전하다. 대통령도 여전히 개헌에는 반대 입장이며,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은 쉽사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비롯한 움직임에 성공할 경우, 최소 ‘원 포인트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신을 개헌 찬성론자라 밝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23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여소야대로 정국이 바뀌었기 때문에 2년 전과는 개헌 세력의 힘이 확실히 다르다”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개헌특위 설치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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