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우리는 뿌리를 잃고 있다. 고유의 숭고한 정신을 유실하고 있다. 오히려 짓밟는 경우까지 많다. 널리 인간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은 일상생활에서, 국가 정치 등 집단생활에서 소홀이되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주체(主體)는 이미 상실됐다. 비운(悲運)이다.
생활의 판단기준은 ‘인간사랑’ 보다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몰두하고 있으며, 국가 정치 등 집단생활에서도 민족정기인 ‘홍익인간’과 ‘충의(忠義)’ 보다는 배타적 ‘이기주의’가 횡행하는 경향이 짙다.
한민족 출발 당시의 민족혼, 그 위대하고 아름다웠던 인간애의 ‘정(情)’이 갈수록 메말라 간다.
자기자신 보다는 그늘지고 궁핍하고 소외된 국가사회 ‘어둠의 구석 구석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땨뜻한 ‘손’과 온정의 ‘나눔’을 기탄없이 쏟아 부어야하는 것이 원래의 ‘홍익인간 정신’임에도, 모두들 ‘자기살기’만 바쁘다. 조금 도와준다고 생색만 낼 뿐, 본격적이고도 진실된 행동력은 어디에서도 잘 보이질 않는다. 교회에서, 성당에서, 사찰에서 기도만 올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랑’과 ‘홍익인간’을 진심으로 접목 승화, 생활에서 현실에서 구체적 실천으로 증거돼야 한다.
국가 사회를 지도햔다는 ‘정치’의 행태는 더욱 목불인견이다. ‘홍익인간’은 커녕 걸핏하면 인격무시, 인간경시, 배척과 대립 충돌의 오도된 문화와 분열의 분위기를 국민속에 거꾸로 계속 확산시켜 나갈 뿐이다. 위기 상태가 분명하다.
한민족 전체적으로 보면, 북한은 더 말할것도 없다. 절대 다수 주민이 기아에 허덕이는 것은 물론, 수많은 어린이들이 풀잎이라도 뜯어 먹기위해 앙상한 몰골로 벌거벗은 산을 헤메고, ‘젖’마저 말라버린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밀처내는 ‘비정(悲情)의 모정(母情)’까지 벌어지고 있음에도, 신격화된 통치자는 혁명가극만 끝없이 노래케 할 뿐 눈 질끈 감고 있다. ‘홍익인간’의 전면적 배신이다.
인간이 하찮은 각 집단별 독선의 도그마와 문명의 수단에 발이 묶여 인간 자체를 서로 경원하는 이런 사태는 창조질서, 즉 자연섭리의 거부로 직결될 수 밖에 없다.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 한민족은 이제 그 아름답고 웅대하며 찬란했던 옛 얼 ‘홍익인간’과 ‘충의(忠義)’를 여지없이 유린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냉정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옛 ‘홍익인간’ 원래의 모습은 무엇이었던가.
우리 민족은 출발 당시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을 갖고 도덕생활을 시작했다. 민족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은 고대 한민족 윤리생활의 바탕을 이루었다. ‘홍익인간’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순수한 인간애의 표현이며, 나보다는 남을,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나 사회의 이익을 중시했던 사상이다.
이때문에 우리 민족은 창립 초기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전투에는 ‘혼’을 다바쳐 충(忠)에는 더없이 장대하면서도, 마을마다 저녁마다 ‘평화의 대화’를 나누었으며, 무용을 좋아하고 충의(忠義)를 숭상하는 기풍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공의(公義)에 충실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 그리고 세상을 우주의 이치에 맞게 다스린다는 재세이화(在世理化)는 '홍익인간'에 직결된다.
인간 중심의 단군신화가 오늘, 더욱 절실한 모습으로 다시 다가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와 오로지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우리가 매일 접하는 소식들 중에는 돈과 관련되지 않은 소식이 별로 없다. 그 액수가 너무 커서 일반인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규모인 것도 볼 수 있다. 이것은 돈이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물질 만능주의’ 풍조가 만연되었음을 알린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면, 그렇게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없던 죄도 만들 수 있고, 안 되는 일도 되게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돈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모든 것을 생각하던 홍익인간 개념을 저버린 결과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부정과 부패가 언제나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풍조가 이처럼 만연한 때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모두 힘을 합쳐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사회를 고쳐나가려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교육체계부터 새롭게 짜서 긴 시간을 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교육의 효과는 50년 혹은 100년 뒤에야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그 효과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제안 한다. 많은 시간과 막대한 돈이 들지라도 우리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와 정신 유산들을 새롭게 재조명,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장점들을 모두 추출한 다음, 그것을 차세대 교육의 중심으로 삼는다면, 오래지 않아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될 것이다.
현재의 ‘물질 만능주의’ ‘개인주의’ 풍조는 우리것의 소중함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를 알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외래문화를 받아들인 탓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중심으로 모든 교육을 해왔다. 그러한 교육을 받는 세대들은 우리 신화는 잘 몰라도 그리스·로마신화는 훤하게 꿰뚫고 있게 된다. 문제는 그것을 알고 모르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고와 행동이 그 쪽에 맞추어 이루어진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수십년에 걸쳐서 서양의 신화만을 배웠고 서양의 행동양식만을 배운 셈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생명경시풍조로 나타난 것이다.
물질만능주의와 함께 우리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인 이기주의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정만을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현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집단이기주의로 까지 발전했다.
이십여년 전만 해도 길가에서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어른들이 아이들을 꾸짖었고, 그 말은 들은 아이들은 그 꾸중을 달게 받아들이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야단을 치는 어른들을 볼 수 없다. 야단을 치다가는 오히려 봉변을 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불편을 줄 정도로 행동하는 어린아이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할 경우 옆에 있는 부모나 보호자에게 곤욕을 치르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한테 누가 함부로 하느냐는 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불편할 뿐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최고이고 내 아이가 최고라는 인식도 좋지만 사람이 공동체를 형성하여 사회생활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나 자식들이 과연 올바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되고만다.
개인과 가정의 이러한 이기주의가 쌓여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집단이기주의인데, 이는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꽤 오래 전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 최고 명문고교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어느 학교 동문들이 자신들이 다녔지만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고 있던 옛 학교 자리에 장애자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해 결국 무산된 적이 있었다. 우리 나라를 이끌어 가는 최고의 지식인들 중에는 이 학교 출신들이 가장 많다고 하는데, 바로 이 사람들이 그런 집단이기주의를 사회에 전파해버린 것이다.
작은 사건이라면 작은 것이고 법적으로는 사건이 될 수도 없는 일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회에 알려졌을 때의 반향을 생각한다면 실로 심각한 일이었다.
오늘 우리 국가 사회의 지나친 갈등과 분열상도 한마디로 인간을 중심에 놓지 않고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 이기주의 등을 향한 삶을 살고있기 때문이다. 단군조선에 깃들어 있었던 생명사상과 인본사상(人本思想)을 저버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현상들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최소한 ‘시대문화’에서 멀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홍익인간’은 우리의 ‘생명’이요, ‘빛’이며, 진정한 ‘주체사상’이다. 우선, 어둡고 힘든 곳, 그늘진 곳을 찾아 정성껏 도와주도록 해야만 한다. ‘인간’의 ‘정(情)’을 곳곳에서 심어야 한다. 현재의 생활구조 문화를 바꿔야만 한다. 인류의 ‘빛’으로까지 타오를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래야 한민족은 다시 일어선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홍익인간’ 방책의 조속한 실현을 촉구한다. 그 길은 필자가 언론생활 이후 줄기차게 요구해온 ‘민족개조론’과 맞닿아 있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YS 대권전쟁>,<최후의 승자>,<영원한 승부사>,<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민족주의와 역사주의를 기준으로한 집필경향을 보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