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소란과 정무 감각 [이병도의 時代架橋]
스크롤 이동 상태바
십자가 소란과 정무 감각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2.17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설선물 십자가에 종교편향 논란
작은 소란 아니다....깊은 반성 있어야
'명품백' 해명도 미흡...정확한 정신무장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윤석열 대통령은 갑진년 새해를 맞아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한 각계 인사들에게 전통주 명절선물과 대통령의 손글씨 메시지 카드를 전달한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은 갑진년 새해를 맞아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한 각계 인사들에게 전통주 명절선물과 대통령의 손글씨 메시지 카드를 전달한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설 선물을 둘러싸고 불교계가 반발하는 소란이 있었다. 대통령실의 정신상태, 즉 허술한 정무감각에 비춰 본다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 선물 포장지와 카드에 십자가가 인쇄돼 있었다는 점은 불교계의 반발이 당연하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자연스럽지 않다. 초보적 상식만 갖춰도 금방 문제점을 알 수 있는데, 대통령실이 걸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준비한 설 선물이 담긴 상자에는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 환자들이 그린 그림들이 담겨있었다. 성당과 십자가, 묵주 등이 그려져 있었다. 거기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로 시작되는 한센인 환자의 기도문도 동봉돼있었다.

불교계 일각에서 종교 편향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논란이 일자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섰다. 이 실장은 황상무 시민사회수석과 함께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을 직접 방문해 사과했다.

이 비서실장은 “저희들이 좀 많이 부주의하고 또 생각이 짧아서 큰스님들께 보내는 선물에 다른 종교의 표식이 들어갔다”며 “결례를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진우 총무원장은 “직접 말씀해 주시니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다음부터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조처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 일은 소동으로 그친 ‘비본질적 문제’이지만, 대통령실 내부 시스템과 정무 감각에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본질적 우려’를 낳게 한다. 명품 백 문제 등을 놓고 유사한 우려가 제기된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종교색이 없는 그림도 많았을 텐데, 도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선별을 했는지 궁금치 않을 수 없다. 작은 소란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성격이 아니다. 정무감각이 얼마나 철저하고 정확하느냐에 따라 나라 운영은 큰 영향을 받는다. 작은 것이 큰 것이다. 이번 일은 하나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다. 깊은 반성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아도, 명품백 논란이 불거진 지 70여 일 만에 처음 나온 윤 대통령 언급이 어정쩡한 해명에 그치면서 여당조차 동요와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명품백 논란은 북한을 찬양하고 현 정부를 ‘괴뢰 역도’라 부른 목사가 김 여사 선친과의 인연을 앞세워 몰래카메라를 들고 접근한 악의적 공작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김 여사는 그런 사람이 주는 선물을 물리치지 않고 받았고, ‘남북통일’ 등 국정에 관여하려는 듯한 발언도 했다고 한다. 국민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정치공작’만을 강조했을 뿐 김 여사의 처신에 대해선 명시적인 사과를 피했다. 대신 “(내미는 선물을)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된다” “(목사와의) 만남을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높이와 대통령의 인식 간에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국가적 논란을 필부가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모양새”란 지적이 지나치지 않다. 이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대통령실은 보다 정확히 정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