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량급 무역대국으로 성장
악성적인 ‘더블딥' 경계해야
'공동선(共同善) 정신' 긴요
최고 과학국 민족저력 발휘를
기업의욕 자기혁신 살려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제20대 대선으로 대한민국이 또 다시 새로운 시대적 전환점을 맞았다. 윤석열 시대의 도약이냐, 후퇴냐, 다시한번 큰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해방 이후 어느 시대, 어느 해 치고 '선진조국 창조'를 소리 높여 외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빈발하고 있는 사회현상들과 일련의 뉴스들을 보면 이제야말로 대한민국도 선진조국 건설을 위해 진정, 무엇을 고치고, 무엇을 버리며, 무엇을 키워야 할지, 또 하나의 큰 과도기를 맞고 있음을 인식케 된다.
한편에선 우리나라의 무역규모가 선진국 수준을 경신,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네델란드 캐나다 등 선진 강국들과 명실상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좋아라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쨍쨍한 햇빛 뒤에도 그림자는 있기 마련이다. 명암(明暗)은 선명하다. 교역규모가 세계 상위권에 진입하고, 그에 따라 1인당 국내 총생산(GDP)도 급증한 만큼, 국가의 진로나 국민의 생활 패러다임, 그리고 사회 일반의 의식구조가 전반적으로 모두 선진화 해야만 한다는 전환기적 과제가 대두했다.
이른바 '개발도상국 형질'로는 이 격변을 소화해 낼 수 없다. 자국이기주의나 협애한 민족주의를 탈피하고, 대신 완전한 개방 통상체제를 구비해야 한다. 한마디로 더욱 창조적인 국제화, 세계화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국제화 세계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국내의 각종 불균형을 슬기롭게 치유해 나가는 것은 역시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특히 다른 나라보다 경쟁력이 뒤진다고 평가받는 정부 서비스는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개척하는 선봉이 돼야 한다.
경제에 짐만 되는 정치의 혼란이나, 미래보다 과거를 주목하는 개혁의 오류는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한다. '방향타 잃은 한국호' '좌 편향 정치' '건달 정부' 등은 하나같이 폐기돼야 할 용어들이다. 튼실해야 할 맹방과의 '역사적 망각상태' 또한 그럴 것이다.
세계 유수 통상국으로
한국 경제의 오늘과 지난날을 조감해 본다. 무역액이 매년 1000억 달러씩 증가하는 급증추세가 한동안 이어진 적이 있었다.
드디어 올 상반기 수출은 사상 처음으로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올 들어 줄곧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며 경기회복의 지렛대 역할을 해온 수출이지만 6월로 마감된 상반기 실적은 눈부실 정도다.
이로써 상반기 수출은 3032억 달러로, 지난 2018년 2967억 달러를 훌쩍 넘는 사상 최대의 호기록를 달성했다.
실제로 상반기 수출증가율 26.1%는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기저 효과를 훨씬 상회한다. 이런 추세면 연간 수출입 무역액은 1조2000억 달러를 넘어 중량급 무역대국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1988년 1천억 달러 돌파이후 1995년 2000억 달러 돌파까지 7년이 걸렸음을 감한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할 수 없다. 내용도 좋다. 반도체(111.6억 달러)와 일반기계(47.1억 달러) 석유화학(46.4억 달러) 등 우리 수출품목 1, 2, 3위가 모두 6월 역대 최고 실적이다. 자동차와 차부품은 코로나19 이전의 수요회복으로 각각 50%, 100%이상 수출이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이렇듯 급속도로 세계 유수의 통상국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어둠과 빛
이런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어둠과 빛은 여전히 분명하다.
경제에 훈풍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년 3분기 이후 네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세다.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던 민간소비가 12년 만에 최고 수준인 3.5%나 늘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반짝 회복에 취해 자만할 때가 아니다. 곳곳에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그 엄청난 수출 호황에도 같은 기간 국내 산업생산을 보면 공공행정 부분을 제외하곤 감소세였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소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냉골’이라는 의미다. 그림자는 그곳이다. 햇볕정책이 정작 필요한 곳은 이런 데다.
물가도 들썩인다. 6월 소비자물가는 2.4% 올라 석 달째 물가목표치인 2%를 웃돌았다. 체감물가는 더 심각하다. 앞서 한은은 시중에 풀린 유동성과 국제 원자재 가격 등 대내외 여건을 언급하며 물가상승 압력이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경고했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덮치지 말란 법이 없다.
긴축과 경기 부양 동시에
가계·기업·정부 등 3대 주체의 부채가 5000조 원에 달하는데 어느 곳에서도 금리 인상에 대비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국가 채무가 1000조 원에 육박하고 금리 인상이 눈앞인데도 정치권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자영업자 손실 보상 확대를 위해 2조 원의 국채 상환 계획도 없던 일로 할 기세다.
경제 시스템이 유리그릇처럼 허약한데도 체질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다.
빈사 상태에 처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피해·취약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발등의 불이다. 하지만 코로나 불길을 방치해선 약 35조 원의 2차 추가경정예산도 별다른 실효 없이 세금만 축낼 게 뻔하다. 근본적인 것은 지난 4년여 동안 경제를 침체의 수렁에 몰아넣은 반기업·반시장 정책을 청산하는 일이다. 이제라도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노동시장의 유연성도 높여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긴축과 경기 부양 정책을 동시에 펼쳐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기다. 이런데도 구조 개혁 없이 재정만 쏟아붓는다면 악성적인 ‘더블딥(경기 일시 상승 후 재침체)’에 빠질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재도약의 깃발을
'어둠'은 버리고 '빛'을 향해 다시 재도약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갈수록 심해지는 부(富)의 불균형과 양극화, 서민 경기의 악화와 부동산 투기의 횡행, 나라의 장래를 짊어져야 할 차세대의 취업난 심화, 분식회계로 얼룩져온 기업경영 문화, 수단과 방법이 무엇이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식의 아직도 비뚤어진 후진적 사고의 팽배 등은 이 과도기에서 선진조국 창조를 위해 우리가 여전히 계속 수술대위에 올리고, 과감히 버려야 할 '어둠의 유산'들일 것이다.
이런 '어둠'들은 결국 국민총화를 저해하고, 국력의 결집을 약화시켜,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자유 대국(大國)으로 과도기적 한계선을 돌파, 웅비해 나가는 데 계속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너도 살고 나도 살겠다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윈윈 게임'의 기풍, 조국 공동체 전체의 평화와 단결, 전진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생각하는 '공동선(共同善)의 정신'이 긴요할 때다. 불퇴전의 자기혁신은 그래서 오늘 대한민국이 당면한 필수의 과제가 되고 있다.
새로운 성장의 동력(動力)
그 희망의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근면 자조 협동의 기운은 여전히 우리의 '빛'으로 남아 있다. 불철주야 밤낮을 가리지 않는 자주적 창의력과 끈질긴 집념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이제 21세기 세계 강국의 양대 화두가 되고 있는 IT(정보화공학) BT(생명공학) 분야에서 초일류 기반을 쟁취, 확보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없던 일이다. 선진국 진입을 향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일단은 거머쥔 셈이다.
이 위업은 누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세계 각국들과의 협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해냈다. 우리 민족이 한때 세계 최고의 과학국가 엿듯, 이것은 우리 한민족의 저력이며, 남다른 긍지의 발로이다.
뿐만 아니다. 그 '빛'은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아직 작동한다. '황우석 사태'에서 보았듯 국제적 기준의 합리적 반성 노력과 동시에 자발적으로 비등하고 있는 국민 각계각층 요로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애국심의 '결집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함께 지난 날 탁월했던 민족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을 중요시 하려는 역사의식과 이를 현실에 적용해 나가려는 움직임의 확산도 그 배경에서 작동한다. 뿐만 아니라, 직업의 귀천과 학업 수준의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자활과 자립을 위해 한없는 근로의욕을 보여주는 젊은 층들의 건전한 생활자세,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한 관심고조와 함께 불우한 이웃들에 보내는 각계의 온정과 헌신적 지원 노력 등도 바로 그 '빛'에 해당한다.
이 가능성을 우리는 이제 국가적, 민족적인 저력으로 곳곳에서 본격적인 지평을 확대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각종 정책과 지표도 이를 활성화하고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함이 당연하다.
'황우석 사태'가 남긴 교훈
지난 날 '황우석 사태'는 강한 교훈을 남긴다. 온 나라와 세계 과학계 전체를 미증유의 혼란속에 빠뜨렸던 사태의 진상은 드러나고야 말았다.
사람 난자로 부터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추출했다는 내용으로 2005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당시)의 논문 조작 파문을 말한다.
한 마디로 거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으며, 모두가 속았다는 애기다. 또한 모두가 자기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만은 그 수렁에서 빠져나가기위해, 아니면 그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최소한의 상대적 이득이라도 챙겨보기 위해 경쟁적으로 안간힘을 펼친, 흐름을 이 사건은 보여 주었다.
그 갈등의 흐름은 당시 생명공학의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경쟁국들 간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는 당시 노무현 정권과 황 교수, 정치권과 황 교수, 정부와 서울대학, 서울대학과 황 교수, 정부 대 언론, 학계 대 언론, 언론 대 언론, 학계 대 학계 등 국가사회 지도층 전반을 거의 모두 관통한 형국이었다.
한 과학자의 과도한 성취욕과 명예욕, 물욕(物慾)이 이 사태의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목적만 이루면 수단이 어떻든 정당화될 수 있는',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조급하게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빗나간 체질과 병리적 풍토를 부각시켰다. 진정한 사회개혁을 향한 수술과 경계의 도마위에 오르도록 해야할 사안이었다. 크게는 민족의 장래를 위한 국가 지도력 시스템 전반의 맹성과 자기성찰, 유신(維新)이 요구됐다. 지금도 모두들 크게 깨우쳐야 한다.
한계 뛰어넘는 자기혁신을
그런 현대사적 관점에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최근 7만5000여 기업 연구소 의견을 수렴, 국회와 관련 정부부처, 정책입안자 등에 전달키로 한 '기업이 바라는 산업기술혁신정책 건의안'은 매우 주목된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기존 제도의 한계를 뛰어넘는 파격적 혁신에 앞장서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산기협은 건의안 마련을 위해 기업 연구소 의견을 수렴하고, 14명의 산・학・연 전문가 정책자문단과 연구진이 16개 산업기술혁신 정책과제를 도출했다.
건의안의 주요 내용은 정체된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인재 확보 시스템 △글로벌 수준으로의 제도 정비 △민간 중심의 국가기술혁신 파트너십 △활력 넘치는 산업기술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기업이 제안하는 구체적 대안, 이른바 실행방안도 담았다.
기업이 이처럼 한목소리를 낸 건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이다. 코로나19 지속으로 생산, 소비, 수출 모두 주춤하고 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기업의 의욕부터 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의 성장 정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 정부든 차기 정부든, 국회 또는 관계부처가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합리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역사와 과거는 우리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뒤따라 가는 자가 앞서가는 자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역사의 발전인 것이며, 이를 위해 국가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꾀해 나갈 때 비로소 역사의 '진보(進步)'도 이뤄진다. 여기에 자유민주 대한민국의 희망, 21세기 한국 재도약의 단서가 있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