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말고 계속 도전해야
'우주 개발의 꿈' 이제 시작
한국 과학기술 우주로
우주로의 도약 큰 걸음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순수 국내기술로 제작된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지난 10월 21일 한국 독자 우주기술의 새 역사를 썼다. 누리호는 이날 오후 5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내 제2발사대를 엄청난 속도로 박차고 날아올랐다.
11년 7개월간의 개발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을 극복한 것은 물론이고 1992년 우리별 1호 발사를 시작으로 따지면 30년간의 온갖 실패를 딛고 선 만큼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하지만 최종 목표였던 위성 모사체의 목표궤도 안착은 실패했다. 위성 분리 시점에서 시간차가 있었거나 3단 로켓의 추진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발사체의 비행 능력은 입증했지만 위성을 원하는 곳에 수송하는 마지막 단추를 끼우지 못한 것이다. 1단 로켓부터 더미 위성 분리까지 비행절차를 순조롭게 마쳤으나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했다. 실패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기술보완을 통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단번에 ‘우주로켓 독립국’ 도약을 염원해 온 국민들로선 아쉬움이 있겠지만 로켓 발사의 핵심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우주 강국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만하다.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가 오늘날 우주 강국의 지위를 넘보게 된 것도 1996년 우주개발중장기계획 수립 이후 정권이 바뀌어도 우주개발 국가계획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던 덕분으로 풀이된다.
일곱 번째 실용급 위성 발사국
누리호 발사가 '미완의 성공'을 거둠에 따라 우리나라도 민간이 우주 산업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의 전환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제 우리도 미국·러시아·유럽·일본·중국·인도에 이어 일곱 번째로 실용급(1톤 이상) 위성 발사가 가능한 나라가 됐다.
지난 12년간 투입된 예산이 1조9천572억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인 누리호 발사에는 국내 기업 300여 곳에서 500여명이 참여하며 기술력을 쌓았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지만 그 시간과 돈은 허비되지 않았다.
이번에 간발의 차이로 7대 우주강국 진입의 발판을 아쉽게 밟지 못했지만 발사체 기술 10개 중 9개의 퍼즐을 맞춰놓은 만큼 내년 5월 2차 발사와 2027년까지 이어지는 5차례의 실험을 통해 갈고 닦으면 우주시대를 향한 걸음이 더 빨라질 것이다.
누리호는 내년 5월 2차 발사에서 0.2t 성능 검증 위성과 1.3t 모사체 위성을 탑재할 예정이다.
우주 개발 독립국으로 도약 해야
누리호는 도전의 연속이다. 2010년 3월 ‘우리 땅에서 우리 발사체로 한국의 위성을 우주로 발사한다’는 취지 아래 국가적 사업으로 첫걸음을 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중공업, 두원중공업 등 국내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고, 이들 기업의 기술인력이 투입됐다. 2조 가까운 돈을 투입해 11년 7개월여 동안 피와 땀을 쏟아부었다. 실험으로 목표 정상의 9부 능선까지 도달했다.
앞으로 누리호는 내년 2차 발사에서 위성의 궤도 안착에 재도전하고 2027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사를 계속하게 된다. 이 과정을 거쳐 누리호가 상용화하면 우리는 차세대 통신위성을 원하는 시기에 쏘아 올리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 위성도 우주로 보내줄 수 있게 된다. 명실공히 우주 개발 독립국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발사는 우리 기술진이 어려운 여건을 이겨 내고 이룬 성과라 뜻깊다. 미사일 지침과 강대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1993년 작은 과학 로켓으로 시작한 뒤 2013년 러시아와 협력해 처음으로 ‘나로호’를 제작, 두 번의 실패와 4번의 발사 연기 끝에 성공했다. 나로호 개발에서 익힌 기술을 기반으로 독자적 우주발사체 개발에 착수했고, 결국 누리호를 통해 우주 강국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첨단과학의 진수…도전적인 국가 과제
러시아와 공동개발한 나로호(KSLV-Ⅰ)가 두 번의 발사 실패와 네 번의 발사 연기를 거쳐 2013년 발사에 성공했던 것을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가 상당한 기술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성공이 눈앞에 있다.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한다 해도 통상 우주 발사체의 첫 성공률은 30% 정도라고 한다. 이 낮은 수치를 뚫은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는 한국 우주 개발과 우주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젖히는 이정표라 할 것이다.
우주 발사체는 수백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참여하는 첨단과학의 진수로 꼽힌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 가장 도전적인 국가 과제로 불린다. 이번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는 러시아 기술의 엔진으로 발사한 나로호와 달리, 엔진과 탱크·발사체 개발 모두를 우리 손으로 성취해 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제한된 대표적 산업 분야이다. 지난 2013년 발사에 성공한 우리나라의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는 러시아가 1단 액체엔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누리호 발사는 모든 과정이 순수 국내 기술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우리 기업이 세계에서 7번째로 중대형 액체로켓 엔진을 만들어 냈다. 누리호 1단에 추력(推力)이 75t급인 액체엔진 4기를 하나로 묶는 '클러스터링'은 제작 과정 중 가장 난도가 높은 기술 중 하나였다고 한다.
우주 산업 선점을 위해 사활 걸어
우주는 이제 거대한 시장이자 산업이 됐다. 서구는 정부가 선도하는 ‘올드 스페이스’ 패러다임을 넘어 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등 민간 기업이 우주산업을 이끌며 경쟁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나사) 같은 정부기관이 민간에 기술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이런 기업이 등장했다.
12년간 진행된 한국의 누리호 개발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민간 우주센터’를 건설하고, 한화그룹이 ‘스페이스 허브’란 기구를 꾸려 우주 사업에 뛰어드는 동력이 됐다.
세계 강대국들은 지금 군사적·경제적 목적으로 강화된 로켓 기술 확보와 우주 산업 선점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무수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우주 산업은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국방과 안보적 측면에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우주는 미국과 중국의 ‘전쟁터’로 바뀌고 있다. 우주에서 보고 발사하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 우리는 선진국에 크게 뒤떨어졌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도전 의식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우주산업에 뛰어들어 스페이스X·블루오리진 같은 업체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우주 지각생’, 독자적 위성 체계 개발을
지난해 우주개발에 미국은 480억달러, 유럽은 132억달러, 중국은 88억달러를 투자했다. 한국은 7억달러로, 미국의 1.5%, 중국의 8.1%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주사업을 통해 창출할 수 있는 파생 효과를 고려하면 손놓고 있을 수 없다. 세계 항공우주 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1% 미만이다.
주변국에 비해 우주 개발이 뒤늦어 ‘우주 지각생’이란 평가를 들어온 이상 마냥 자축만 할 때는 아니다.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해 며칠 전 선저우 13호를 쏘아올린 중국은 물론 일본도 지구에서 3억㎞ 떨어진 소행성인 ‘류구’의 토양 시료를 지구로 가져올 정도로 까마득히 앞서 달린다.
미래 먹거리 기술로 거론되는 완전자율주행차와 6세대(6G) 이동통신사업은 인공위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안보 차원에서도 독자적인 위성 체계 개발이 이뤄져야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 중인 위성 감시 주권을 세울 수 있다. 미국 나사(NASA)가 수십년간 쌓은 기술을 개방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낳았듯이 정부의 중장기적 투자와 기업의 창의성이 접목되는 우주개발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미사일 지침 걸림돌 제거
한국은 우주개발에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다. 한반도 주변의 복잡한 안보환경으로 인한 제약 요인들 때문이었다.
특히 한미 미사일지침은 오랫동안 한국의 군사용 미사일 개발은 물론이고 민간 로켓 개발까지 가로막는 족쇄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미사일지침이 올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면 해제되면서 걸림돌은 제거됐다.
내년 10월까지 12년에 걸쳐 누리호 개발에 총 1조9572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지만, 한국의 우주산업 역량과 예산·인력은 우주 강국들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수준이다. 그런 만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국가적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우주개발 예산 규모는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누리호 발사를 계기로 정부가 마중물을 놓고 민간 기업이 열정과 기술, 창의력으로 화답해 우리나라도 독자적이고 본격적인 우주 개발의 길로 들어서기를 기대한다.
2030년 한국형 달착륙선 목표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유인 달 탐사계획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2022년에는 달 궤도선을 발사하고 2030년에는 한국형 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보낸다는 목표도 세웠다. 한국이 우주로 가는 대항해에서 누리호는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국내 300여 기업의 참여로 10여 년간 첨단 기술이 총집결된 누리호가 향후 한국 우주 산업이 일어서는 발판이 되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내 우주 분야 투자는 발사체·위성 개발에 75% 이상 쏠려 있으며, 우주개발진흥법 등 관련 법률도 기본법 수준에 머물러 상업적 활동을 뒷받침하기엔 미흡하다. 투자 다변화와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다음 달 총리급 기구로 격상되는 국가우주위원회가 컨트롤타워로서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우주 파생·후방산업 분야에 많은 스타트업이 뛰어들 수 있도록 모태펀드 조성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미래 성장동력 키워 우주강국 나서야
‘우주의 꿈’은 미래산업의 총체적 역량을 좌우하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우주산업 자체가 호흡이 긴 분야이고, 리스크도 크다. 수없는 고난과 실패 앞에 오히려 차분하게 박수 보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누리호는 한국이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아직 한국이 갈 길은 멀다. 누리호의 완전한 성공을 바탕으로 고체엔진 발사체 기술 확보는 물론이고 민군 인공위성과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 사업, 우주소재·부품·장비 개발 등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영토가 적고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우주 영토 확보 경쟁에 적극 나서고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을 키워가야 한다. 우리가 우주 전쟁에서 활로를 개척하려면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토대로 ‘우주 4강국’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국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힘차게 비상해야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