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비리로 거래중단 시 일부 돌려줘야
주주들, 애널리스트 리포트 맹신하면 안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곽수연 기자]
지난 18일 신라젠 주주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한국거래소 앞에서 신라젠 주권회복 및 거래재개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날은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가 신라젠의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는 날이었다. 주주들은 신라젠의 거래가 재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라젠은 문은상 전 대표 등 전·현직 경영진의 횡령·배임으로 2020년 5월 4일부터 주식 거래가 정지되고 있다.
같은 해 11월 한국거래소 기심위는 신라젠에게 1년을 부여하며, 거래 재개 요건으로 경영투명성·재무건전성·영업지속성 등 3가지 사항을 개선하라고 요구했다. 그 기간 동안 신라젠은 엠투엔이라는 새 주인을 만났고, 추가 유상증자를 통해 총 1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도 확보했다.
주주들은 이로써 거래소가 요구한 경영투명성·재무건전성을 지난해 8월 모두 해결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글로벌 제약사 리제네론 사의 리브타요와 펙사벡의 병용 임상 2상에 대한 환자 등록이 1월 중으로 완료되고 △펙사벡이 미국 FDA에서 흑색종에 대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첫 환자 투약이 완료된 점 등을 거론하며 영업지속가능성 또한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신라젠 주주들은 "거래소가 요구한 모든 사항을 충족한 만큼 거래 재개가 당연히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피눈물 흘리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신라젠의 17만 주주는 이제 그 긴 터널을 빠져나올 시간이 됐다"고 목소리 높였다. 하지만 거래소 기심위는 신라젠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계속 기업으로 유지할 수 있는 구체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상장폐지 소식에 망연자실한 신라젠 주주 A 씨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2016년부터 지금까지 신라젠에 30억 원을 투자했다"며 "상장폐지를 결정한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상대로 다음 주 안으로 민·형사 소송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30억 원. 왜 A씨가 '신라젠 사태'를 보도해달라며 절실한 눈길을 보냈는지 절감했다. 더욱이 집회 현장에 가보니, 추운 날씨에도 전국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서울로 올라온 투자자들도 상당했다. 어떤 아주머니는 신라젠 투자손실로 남편과의 사이도 틀어지고,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암도 얻었다고 한다.
투자손실의 아픔을 당사자가 아닌 이상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신라젠 전·현직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및 이를 시정하지 않고 주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사법·입법부·금융당국에 느끼는 분노는 당사자만큼 크다.
신라젠 상장폐지(상폐)와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고 한국 자본시장이 개선될 수 있도록 3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우선 우리나라는 경제사범들에게 매우 관용적인 나라다. 이는 라임·옵티머스 같은 사모펀드 환매 중단을 포함해 여러 사건 등에서 드러났다.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 회사 임·직원이 횡령·배임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엄벌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폰지형 금융사기를 저지른 68세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150년 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신라젠의 경우 문은상 신라젠 전 대표는 징역 5년에 벌금 350억 원을 선고받았다. 문 대표와 함께 기소된 곽병학 전 감사에게는 징역 3년 및 벌금 175억 원, 이용한 전 대표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자금 돌리기 방식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납입하고 1000만 주 상당의 신라젠 신주인수권을 교부받아 행사해 1918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했다. 사법부는 신라젠 경영진이 저지른 배임·횡령의 죄질과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처벌을 선고한 셈이다.
경제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뒤따르지 않으면 금융사기는 양산될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사모펀드에 가입했다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한 금융소비자는 지난해 12월 기자와의 대화에서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이 가장 약한 대한민국은 금융사기의 천국"이라며 "전 세계 사기 범죄는 대한민국, 멕시코, 남아공, 인도, 아르헨티나 순"이라고 전했다. 금융사기 천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금융당국이 엄벌 기준을 신속히 세워야 한다.
이와 함께 경영진의 횡령·배임·미공개정보 활용 등의 혐의로 주식거래가 중지될 경우 주주들이 투자금의 일부를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법이 입법되거나 개정돼야 한다.
신라젠의 경우 명명백백히 경영진의 미공개정보 활용·배임·횡령 등으로 검찰이 압수수색·조사에 들어가면서 주식거래도 같이 중지됐다. 잘못은 경영진이 했는데 왜 혹독한 대가의 몫은 주주의 것인가. 주주는 회사를 믿고 투자한 사람이다. 그 신뢰를 저버리고 원금을 갉아먹은 원흉이 누구인가. 경영진이 잘못해놓고 어떻게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을 언급할 수 있을까.
기업이 사회 통념상 인정할 수 있는 '정상 경영'을 한다는 전제 하에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불황 또는 경영판단의 실수로 인해서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주들은 당연히 투자금의 손실을 입더라도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신라젠의 경우는 경영진이 상습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보여온 것 아닌가.
상장 전인 2015년부터 신라젠은 이미 공시위반으로 과징금 3억 4530만 원이 부과됐다. 2018년에는 최대주주인 문은상 대표와 문 대표의 친인척 4명, 회사 임원 4명 등 특별관계자 9인이 장내 매도를 통해 271만 3997주를 처분했다. 보호예수가 해제된 이후 최대주주가 대량 매도를 해서 주주들 사이에 불안감이 조성됐다. 당시 사측은 국세청 세금 납무 및 개인 채무 변제를 위해서 매도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9년 8월 <스카이데일리> 취재 결과, 문 대표가 한남동 이태원 고급주택을 구입한 시기와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한 시점이 맞물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문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해 자금 돌리기로 부당이득을 취득했고, 특허 대금을 부풀려 신라젠에 29억 손해를 가했고, 지인들에게 부풀린 수량의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등 계속해서 배임·횡령을 저질렀다.
과연 비리경영으로 주식거래가 중지됐을 때 모든 책임을 주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합리적인 일인가 의구심이 든다. 투자금의 전액은 아니더라도 비리 경영진의 자산을 동결해서 일부라도 주주에게 돌려주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울러 주주는 맹목적으로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믿으면 안 되고, 경영진의 비리 징조가 포착되면 더 큰 손실을 입기 전에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투자자 A 씨는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읽고 신라젠의 펙사벡(항암 바이러스)이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30억 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하는 것은 국내 증권사 리포트 투자의견이 '매수'로 편중된 점이다. 지난해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증권사 리포트 투자의견의 90%가 '매수의견'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35개 국내 증권사 리포트 9만 9035건 중 90%에 해당하는 8만 8929건이 '매수의견'이었다. 여기에 미국 월스트리트의 비리를 폭로한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잡>을 보면, 한 애널리스트는 어떤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라는 의견을 냈지만, 사적인 모임에서는 그 주식은 쓰레기라고 평가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국내든 해외든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A 씨는 "신라젠 거래정지 사유는 상장 전 혐의"라며 "대한민국에서 주식을 하려면 상장 전 일어난 일까지 다 확인하고 주식투자를 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2016년 상장 후 언론에서 여러 차례 신라젠 경영진 관련 논란과 그에 따른 주가 하락을 보도했다. 과거를 알지 못하고 투자했더라도, A 씨 투자기간에도 경영진의 비리 징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이미 투자한 원금이라는 매몰비용이 아까워 주식을 처분하지 않고 끝까지 보유하다가 주식거래 중지를 맞이한 것이다. 아무리 임상 결과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고, 경영진이 초일류 대학교를 나왔어도, 그 회사에 도둑이 많으면 결말은 뻔하다. 아닌 데는 가지도 말고,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금융당국·정부·거래소·국회 사법부는 신라젠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사태 수습에 나서길 바란다. 그동안 부산저축은행·라임·옵티머스·이탈리아헬스케어·디스커버리·밸류인베스트코리아·독일 헤리티지·신라젠 등 수많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 중 하나라도 정부당국이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결해서 피해자들 구제해준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은 도둑 잡는 자와 도둑이 합세해서 도둑이 들끓는 서글픈 나라가 됐다며 교수들이 지난해 고사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선정했다. 금융당국·정부·거래소·국회 사법부는 '묘서동처'라는 비판을 듣기 싫으면 일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다. 17만 신라젠 소액주주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좌우명 : 정직하자
법을 엄하게 만들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