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국회 시정연설문에서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영국 보수·노동당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법률안, 예산안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히 논의하겠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등 협치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부 출범 2년 차를 지난 현재, 여야 간 대립 양상은 심화됐으면 심화됐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역대 최소 득표율 차이로 대선 승패가 갈린 데다 윤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도부로 선출돼, 여야 싸움은 대선 연장전 성격을 띠게 됐다.
민주당은 우선 정부 출범 초기부터 선거에 불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한 의원은 윤석열 정부 5개월차에 ‘윤석열 퇴진 촛불집회’ 단상에 올라 “윤석열 정부가 끝까지 5년을 채우지 못하게 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빨리 퇴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외쳤다. 민주당은 지난 2월 6년 만에 ‘민생파탄 검사독재 윤석열 정권 규탄대회’라는 이름의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이 대표를 향해 제기됐던 각종 사법 리스크 관련 수사가 대선 이후 급물살을 탔는데, 그가 검찰에 출석할 때마다 민주당 의원과 지지자들이 몰려가 당 대표 엄호에 나섰다. 정부·여당과 제1야당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기만 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 원내대표와는 만날 수 있어도 당 대표와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당 대표와 먼저 만나는 것이 순리”라는 말로 사실상 제안을 거절했다. 이렇게 정부와 제1야당 지도부는 대화 한 번 안한 채로 1년 3개월을 보냈다.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의 설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백지화 선언, 양곡관리법·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윤 대통령의 ‘반국가 세력’ 발언까지. 진영 간 적대감과 불신도 심화한 모습이다.
갈등의 원인을 현 정치권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여 년간 보수 진영과 민주당 진영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전 정부에 대한 무리한 수사, 적폐 청산,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구속이 이어지며 양측에 여러 감정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있게 됐다. 현재는 ‘카르텔’이라는 이름으로 노조, 사교육 시장, 시민사회단체 등에 대한 압박 강도가 거세졌다.
비판이 제기될 때 정당한 설명 대신 ‘전 정부에선 더 심했다’는 정부 여당의 반박이 계속되고, 정권이 바뀌면 과거의 일은 다 잊은 채 ‘반정부’ 투쟁만 하는 야당의 모습이 이어진다면 국민의 정치 불신·정치 혐오도 심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선 민주주의 수호에 가장 핵심 역할을 하는 두 가지 규범으로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들었다.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는 시각을 거두고 ‘경쟁자’로서 초점을 민생 위한 정치 경쟁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아쉽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