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수 감축, 성공한 적 있을까? [옛날신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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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정수 감축, 성공한 적 있을까? [옛날신문보기]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3.02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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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직후 총선인 2000년 제16대 총선, 299명에서 273명으로 감축 사례 있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IMF 외환위기 속에서 치러진 2000년 제16대 총선 당시, 국회는 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273명으로 감축했다. ⓒ연합뉴스
IMF 외환위기 속에서 치러진 2000년 제16대 총선 당시, 국회는 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273명으로 감축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 정수 문제가 정치권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증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하자, 홍준표 대구시장이 “참 어처구니없는 제안”이라고 비판하면서입니다.

심지어 홍 시장은 “국회의원 수는 지금의 절반인 150인으로 줄여야 한다. 미국 하원의 수와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80여 명만 해도 충분하다”며 “국회의원 수가 많다고 해서 정쟁이 줄어들겠나? 국회의원 수가 적어서 나라가 이 모양인가?”라고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국민들은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신동아>와 <리서치앤리서치>가 공동 기획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1월 17일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64.9%에 달했습니다.

늘려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10.4%에 그쳤습니다. 현행 유지를 선택한 사람도 27.3%에 불과했습니다. 국민 3명 중 2명이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국회의원 수 감축이 가능할까요? 쉽지 않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입니다. 선거법 개정의 당사자인 국회의원 자신들의 ‘밥그릇’이 달린 일인 만큼, 스스로 감원을 결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딱 한 차례,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의석수를 줄이는 데 동의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16대 총선을 앞두고 299석이었던 국회의원 의석수가 273석으로 26석 줄어든 건데요. 과연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요?

답은 ‘시대 상황’에 있습니다. 제16대 총선은 2000년 4월 13일 치러졌습니다. 2000년. 그렇습니다. 아직 우리나라가 IMF 외환위기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했던 시기입니다.

대한민국이 IMF 관리 체제로 들어가자, 정치권에서도 국민적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 구체적 방안으로 국회 몸집을 줄여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막자는 논리가 고개를 들었죠.

시작은 이인제 당시 국민신당 대선 후보였습니다. 1997년 9월 13일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결과 불복을 선언하며 탈당을 단행한 이인제는, 같은 해 11월 25일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국민신당 지구당 합동창당대회에서 국회의원 수를 200명까지 줄이고 공무원 수도 5년 안에 3분의 1가량 감축하겠다고 공약합니다.

정부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요구를 계기로 각 대선 후보와 정당이 경제파탄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민신당 이인제 전 지사는 24일 경제난 극복을 위해 국회의원과 공무원 수의 3분의 1 삭감을 주장했다.
이 전 지사는 이날 경기 안산에서 열린 지구당 합동창당대회에서 정치권과 정부가 솔선수범하기 위해 국회의원 수를 현재 299석에서 200석으로 줄이고, 공무원 수도 재경원 등을 통폐합해 앞으로 5년 안에 3분의 1정도를 대폭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후략)

1997년 11월 25일 <한겨레> 정치권 ‘파탄책임’ 공방

이 같은 이인제의 주장은 꽤 파괴력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IMF 외환위기의 책임을 정치권에 묻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국회는 비판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국회의원 감축론은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셈이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김대중(DJ) 대통령 당선자도 국회의원 감원 요구를 무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DJ와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정치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국회의원·지방의원 정원 축소를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국민적 요구가 높은 국회의원 감축론을 여당이 먼저 들고 나오자, 제1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었죠.

모든 경제 주체가 고통을 감내하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속에서 정치권이 고통 분담을 위한 갖가지 방안을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권의 ‘거품 제거’ 방안은 주로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정원 축소 △소선거구제인 국회의원 선거구제 변경 △지구당 제도 등 정당구조 대폭 개편 등을 골간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도 상임위 축소 조정과 예산 및 조직 감축을 검토하고 있으나 실현 여부는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현재 金 당선자 측은 고비용-저효율로 상징되는 정치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는 인식을 토대로 대통령 취임과 함께 적극적으로 정치 개혁 방안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도 기본적으로 공감의 뜻을 밝히고 있어 일부 개혁안은 향후 입법화 가능성이 높아가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김중위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IMF 시대에 정치권이 예외가 될 수 없다”면서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지구당 제도를 폐지하고, 소의회제를 근간으로 하는 선거구제를 도입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도 정치권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정부 부처가 축소되면 국회 상임위의 통폐합도 불가피한 상황이 될 것”이라며 “이에 따른 국회 직원의 감축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해 국회 조직 및 인원 감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략)

1998년 1월 12일 <연합뉴스> 정치권 고통분담방안과 과제

실제로 한나라당은 선도적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205명으로 감축하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하고 국회에 제출하기로 합니다.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 역시 299명에서 250명 선으로 줄이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국회의원 수를 축소 조정한다는 방향 자체에는 동의가 된 것으로 보였죠.

한나라당은 2일 국회의원 정수를 현재의 299명에서 205명으로 축소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당사에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정치 구조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새로운 선거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고 판단, 이 같은 개정안을 마련해 조만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고 맹형규 대변인이 발표했다. (후략)

1998년 3월 2일 <연합뉴스> 한나라당 선거법 개정안 확정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10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정치구조개혁위(정개위) 전체회의를 열어 선거, 정당, 국회 제도 등 3개 소위 검토안을 토대로 정치권 전반의 구조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중략)
양당은 특히 국회의원 선출 방식과 관련, 현행 소선거구제를 골간으로 하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방식을 도입, △소선거구제에 의한 지역구 의원은 166명선 △현행 전국구 의원과 유사한 비례대표제 방식의 의원은 83명 내외에서 결정, 2대 1의 비율을 유지하고, 인구 30만 명을 기준으로 1개 선거구를 책정해 나가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후략)

1998년 3월 10일 <연합뉴스> 與, 정치구조개혁안 집중 논의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야의 입장은 조금씩 변했습니다. 제16대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오자, 여야는 국회의원 정수를 270명 선으로 줄이는 수준에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여당이 250명, 야당이 205명까지 줄이겠다고 공언했던 것과 비교하면 한참 후퇴한 수치였죠.

여권은 앞으로 추진할 여야 간 정치 개혁 협상에서 현재 299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최소한 10% 감축해 270명 선까지 줄이는 방안을 마지노선으로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31일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국민회의는 의원 정수를 250명까지 줄인다는 게 당론이지만 여야 협상이 시작되면 270명으로 줄이는 데 쉽게 합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길 청와대 정무수석도 이날 “여야를 두루 만나 보니 270명 선에 의견이 일치하더라”라고 말해 270명으로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자민련은 이미 국회의원 정수를 270명으로 당론을 정해놓고 있는 데다, 한나라당도 당론은 250~270명이지만 여야 협상 결과에 따라 270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신축적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1999년 4월 1일 <조선일보> 국회의원 정수 與, 270명 선 추진

급기야 제16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는 여야 모두 국회의원 수 줄이기를 ‘없던 일’로 하려 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한나라당은 11월 29일 국회의원 정수 299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는 당론을 확정했고,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도 동조했죠.

한때 ‘94명 감축’ 계획까지 나왔던 국회의원 정수는 결국 ‘현행 유지’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28일 국민회의 박상천 원내총무는 선거법 협상 분위기를 전하며 “한나라당은 의원 정수 감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 총무는 “야당 내부 사정으로는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를 줄일 수가 없다”면서 “자민련도 비슷한 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 자신도 의원 정수 감축에 동의하지 않으며, 차라리 의원 수를 늘려 제대로 일하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현재 비판 여론이 두려워 공개는 않고 있지만 이미 협상 테이블에서는 ‘의원 정수 감축은 없었던 일’로 합의가 끝난 분위기다. (후략)

1999년 12월 29일 ‘의원 수 줄이기’ 결국 없던 일 되나

2000년 1월 15일. 여야는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으로 유지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합니다. 2년 전 국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정당 내부 사정’을 이유로 백지화한 겁니다. 이러자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습니다. 시민단체들도 ‘나눠먹기식 밀실 담합으로 선거구를 획정하고 오히려 기득권만 강화했다’며 들고 일어났죠.

결국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DJ는 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선거법 개정이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과 욕구에 따라 시작됐는데 결과를 보면 전혀 변한 것이 없다”며 선거법 전면 재협상을 지시했습니다. 여야 간 재협상이 되지 않을 경우 정치개혁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도 시사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7일 여야 간 선거법 합의안이 당리당략적으로 마무리되는 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문제가 되고 있는 선거법 내용의 전면 재협상을 여권 지도부에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또 시민단체 등의 선거개입을 금지한 선거법 87조를 폐지하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만섭 총재권한대행 등 국민회의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선거법 개정이 정치 개혁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과 욕구에 따라 시작됐는데 결과를 보면 전혀 변한 것이 없다”며 이 같이 지시했다고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박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언론이 지적한 (선거법 개악) 내용에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면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치 개혁과 지역구조 해소, 공명선거라는 3대 목표가 협상 과정에서 실종됐다는 것이 김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정치개혁법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행사 여부와 관련, “여야 간 재협상이 안 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최악의 경우 (거부권 행사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후략)

2000년 1월 17일 <한국경제> 김 대통령, 선거법 내용 전면 재협상 지시

국민적 반발과 청와대의 압박에 직면한 여야는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구성해 국회의원 정수 결정을 맡기기로 합니다. 그리고 선거구획정위원회는 253개인 선거구 수를 227개로 26개 줄인 선거구획정안을 확정했죠. 이에 국회는 2월 8일 밤 본회의를 열어 의원 국회정수를 299명에서 273명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개정안을 통과시킵니다.

4·13 총선으로 구성되는 16대 국회의원 정수는 273명으로 현행보다 26명 감축되고, 종전의 1인 1표 방식은 그대로 유지되게 됐다.
국회는 8일 밤 본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선거법) 개정안 등 정치개혁법안을 표결로 확정했다.
이는 민간위원들이 참여한 국회 선거구획정위의 의원 정수 감축안이 그대로 채택된 것이며, 정치 개혁 및 정치권 구조조정에 관한 국민여론의 승리로 평가된다.
반면 민주당 측이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추진해온 1인 2표제, 후보이중등록, 석패율 제도 등의 도입이 무산됨으로써 정치 개혁과 관련한 여권의 기본 구상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국회는 이날 밤 본회의에서 한나라당이 제출한 의원정수 16석 감축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수정안을 전자투표로 표결, 재석 282명중 찬성 128, 반대 154명으로 부결시켜 지역구 26석 감축을 내용으로 한 선거법 원안을 자동 통과시켰다.
이로써 제16대 국회의원 정수는 지역구 227석, 비례대표 46석 등 총 273석으로 확정됐다. (후략)

2000년 2월 9일 <한국경제> 국회, 의원 26명 감축·1인 1표제 확정

역사상 딱 한 번 있었던 국회의원 정수 감축은 IMF 외환위기 속에서 국민적 열망을 등에 업고 추진됐습니다. 여야 지도부도 정원 축소를 공언했고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국회는 약속을 뒤집었고, 여론의 악화와 대통령의 압박이 더해지고 나서야 겨우 26석을 줄였습니다. 그리고 4년 후, 국회의원 정수는 다시 299석으로 환원됐죠. 과연 국회의원 정수 감축은 이뤄질 수 있는 목표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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