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가 ‘친윤(親尹) 김기현’ 대 ‘비윤(非尹) 안철수’ 구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안철수 후보도 윤심(尹心)이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하며 친윤을 표방했지만, 대통령실과 친윤 그룹이 안 후보에 대한 공세를 펴면서 사실상 친윤 김기현과 비윤 안철수의 대결로 정리되는 분위기죠.
지난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단일화에 합의, 정권 교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안철수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친윤의 낙점을 받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따라줄 ‘관리형’ 대표를 원할 수밖에 없는데요. 안 후보는 당권을 발판 삼아 차기 대권으로 나아가려는 ‘차기주자형’이기 때문입니다.
차기주자형 대표는 필연적으로 현 정권과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대통령과 대립할 가능성이 있고, 당내 입지를 다지는 차원에서 공천에도 관여하려 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친윤과 이준석 전 대표가 갈등을 겪은 것도 이 전 대표의 ‘공천 혁신 선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대통령실 입장에선 ‘안철수 체제’의 탄생이 껄끄럽겠죠.
그렇다면 주류의 지원을 받는 김 후보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안 후보 중 당선 확률이 높은 쪽은 어디일까요.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과거 비슷한 구도로 치러졌던 전당대회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1년차인 2008년, ‘관리형’ 박희태 후보와 ‘차기주자형’ 정몽준 후보가 맞붙었던 한나라당 7·3 전당대회입니다.
7·3 전당대회는 박희태 후보와 정몽준 후보, 허태열 후보의 ‘3파전’으로 치러졌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박 후보와 정 후보가 ‘양강 체제’를 형성했는데요. 박 후보는 주류였던 친이(親李)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친이계는 청와대와 각을 세우지 않고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따를 수 있는 ‘관리형’ 대표를 원했고, 박 후보는 ‘친이계 관리형’이라는 조건을 완벽히 만족시켰죠.
박희태 후보의 선거조직은 친이(친이명박) 진영의 폭넓은 지지에 힘입어 마치 지난해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를 연상시킬 정도로 ‘인적 중복’ 현상을 보이고 있다.
좌장격인 최병국 의원을 중심으로 친이재오계의 핵심인 안경률 의원이 총괄본부장을 맡았고, 대선 당시 경선대책위 부위원장이었던 4선의 정의화 의원과 경기지역 선대위원장 역할을 했던 3선의 고흥길 의원이 고문을 맡았다.
또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 그룹으로 꼽히는 안국포럼 출신의 백성운·김효재 의원은 각각 조직과 메시지를 전담하고 있다. 백성운 의원은 작년 경선 당시 종합행정실장을 맡았었다.
작년 대선 경선시 이명박 후보의 ‘입’으로 활동했던 진수희 의원과 경기지역을 담당했던 차명진 의원은 박희태 캠프의 공보 일을 전담하다시피 하며 언론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각 지역을 총괄하는 인사들도 △서울 장광근 △경기 원유철 △대구 주호영 △부산 김정훈 △울산 김기현 △강원 허천 △충남 홍문표 △경북 이병석 △경남 김재경 등 작년 이명박 경선대책위 주요 인사들과 겹친다. 이들 중 일부는 해당지역 시도당 위원장이거나 주요 당직자기도 하다.
2008년 6월 29일 <연합뉴스> 박희태-허태열 캠프, 대선 경선캠프 축소판
반면 정 후보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해 당내 세력이 미약한 상태였습니다. 또 넓게 보면 친이계라고 할 수 있지만,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어 청와대와 각을 세울 가능성도 있는 후보였죠. 이러다 보니 높은 인지도와 ‘개인기’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전략) 박희태, 주류의 힘 확인할까 = 박 후보는 막판 캠프별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대표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선을 거치면서 친이계로 대거 재편된 당협위원장이 든든한 지원군이다. 최소 150명의 당협위원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게 박 후보 측 주장이다. 특히 당협위원장이 차기 지방선거 공천권을 좌지우지하는 만큼 대의원의 표심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 측은 “친이 대세론으로 2위와의 차이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대표로 당선되면 당·청 관계는 한층 더 공고한 협력관계로 발돋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로 당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비판론도 적지 않다.
정몽준, 돌풍불까 = 정 후보 측은 선거 막판 친이·친박 계파 결집으로 초반 기세가 다소 꺾인 점을 우려한다. 하지만 당내 변화를 원하는 대의원들이 1인2표 중 두 번째 표를 몰아줘 대표로 당선되는 ‘선거혁명’을 기대하고 있다. 정 후보 측은 “박 전 부의장과의 대결에서 조직표에서는 밀리지만 인지도가 높아 국민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역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 후보가 입당한 지 6개월 만에 여당 대표로 당선되면 단번에 당내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 반열에 오를 전망이다. 물론 당을 조기에 대권경쟁 구도로 몰아넣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친이계와 친박계로부터 집중견제를 받으면서 당은 갈등모드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당·청 관계 역시 차기 대권구도와 맞물려 대립각을 형성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08년 7월 2일 <국민일보> [한나라당 전당대회 3대 관전 포인트] 주류의 힘―차기의 꿈―朴의 저력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박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박 후보는 총 득표수 6129표로 5287표에 머문 정 후보를 제치고 당대표로 당선됩니다. 박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던 당원들의 결집, 그리고 주류의 ‘조직력’이 빛을 발한 결과였습니다. 박 후보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1865표에 그치며 2896표를 얻은 정 후보에게 밀렸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4264표 대 2391표로 완승하면서 대표 자리에 오릅니다.
한나라당이 관리형 대표를 선택했다.
변화를 기치로 내건 정몽준 후보 대신 안정과 화합을 외친 박희태 후보를 선택한 것은 민심이반으로 고전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우려, 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위원 5명 중 3명이 친이계로 사실상 이 대통령의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중략)
이번 전대는 한마디로 조직선거였다.
국민 여론조사에서 46%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정몽준 후보가 대의원표에서 3위로 밀린 게 단적인 예다.
친이계는 박희태 공성진 박순자 등 3명을 지도부에 포진시켜 명실상부하게 당을 장악했다.
대의원들이 당청 간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위기에 처한 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 정몽준 의원의 맹추격에 위기를 느낀 친이계가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차기 주자인 정 후보가 대표가 되면 이 대통령의 힘이 빠질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집권 초기 불협화음을 내온 당청 관계는 한층 원활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선대위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6인회’ 멤버였고 경선 당시 선대위원장을 지냈다.
누구보다 ‘이심(이 대통령의 마음)’을 정확히 읽는 인물이다.
당내 뿌리도 깊다.
박 대표가 이 대통령의 정치특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정책적으로도 쇠고기 파동으로 주춤하고 있는 공기업 선진화,규제 개혁 등 이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에 확실하게 힘을 보태는 방향으로 당 운영 기조를 바꿀 가능성이 높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조직의 힘에 밀려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1위인 박 대표와 불과 4.1%포인트 차이로 최고위원에 당선돼 일단 당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후략)
2008년 7월 3일 <한국경제> 최고위원 5명중 4명 親李…MB 친청체제 구축
2008년 한나라당 7·3 전당대회는 청와대가 원하는 ‘관리형’ 박희태 후보와 당권을 발판 삼아 당내 기반을 다지고 차기 대권으로 나아가려는 ‘차기주자형’ 정몽준 후보의 대결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정권 안정을 원하는 당심(黨心)과 주류의 조직표가 더해진 박 후보의 승리였고요.
그리고 이는 2023년 3·8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실이 원하는 ‘관리형’ 김기현 후보와 당권을 발판 삼아 당내 기반을 다지고 대권으로 나아가려는 ‘차기주자형’ 안철수 후보의 대결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1년차, 주류가 미는 관리형 후보와 차기주자형 후보의 대결. 과연 이번 승부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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