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안전 시스템’ 정비 나서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꽃다운 젊은 넋들의 영전에 다시 한번 머리 숙이며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우리 모두는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사회 시스템의 허술한 운용, 넉넉하지 못한 축제장 제공, 젊음에 대한 각종 배려가 부족했던 점 등 잘못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참사 발생 때의 안이하고 게을렀던 대처에 대해서는 변명할 말을 찾을 수 없다.
애도의 말을 반복하는 게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그 부모님들의 슬픔을 덜어드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하루빨리 세부적인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가려 벌을 주고, 사회 안전 시스템을 보강하는 게 우리들의 의무이자 희생자들에 대한 빚 갚음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 작업에 앞서 거듭 애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명백히 책임 있는 윗선들
수사당국이 곧 참사 원인을 분야별로 가려낼 거다. 그러나 상식 선에서 이미 최소한의 책임 소재는 가려졌다. 핼러윈 인파를 대략 예상하고도 무대책으로 일관한 용산구청, 발 빠르게 사고 수습에 나서지 못한 용산 경찰서, 이 두 기관 長(장)의 잘못은 명백하다. 조사 결과에 따라 형사적 책임까지도 져야 할지 모른다.
일선 직원들은 잘못이 없어 보인다. 윗선에서 대책을 세우고 지시를 했는데도 따르지 않았다면 당연히 벌을 줘야겠지만, 이제까지 보도된 바로는 그런 정황은 안 나타났다. 오히려 눈물겹게 구조활동에 나선 모습만 보도됐다.
모든 사건, 사고는 그 규모와 성격에 따라 책임 범위도 가려지게 돼있다. 동네가 치안 부재 상태였다면 파출소. 아파트·대형 건물의 붕괴 등을 방치했다면 구청·시청 및 건설기관(회사). 이번 경우는 경찰청장, 행정안전부 장관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사안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책임지겠다는 말이 없다. 실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불만을 터뜨리며 사태 정리가 제자리걸음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뒤늦게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정무적 책임까지 따지겠다 하고 이상민 장관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니 다행이다.
물러날 시기는 대충이라도 수습된 이후라야 한다. 장관이 이 시점에서 그만두고, 신임 장관 청문회를 하느라 또 시간을 잡아먹고… 그건 효율적인 국가 운영방식이 아니다.
와중에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참사와 관련, 정부에 요구 조건을 내걸면서 수용하지 않으면 대통령 퇴진운동까지 벌이겠다고 나섰다.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한심한 행태다. 그런 식이라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수시로 바뀌어야 할 거다. 민주당 대통령이 돼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예를 들어 안 됐지만, 허리케인 피해나 9·11 참사 때 대통령 물러나라고 했다는 소식은 못 들었다.
국회의원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윗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당파 이익보다는 윗선답게 매사에 책임을 느끼며 사려 깊게 처신하기 바란다. 참사를 이용해 이런저런 노림수를 보이는 건 총선 전략으로도 빵점짜리, 아니 마이너스 전략이다.
참사 원인(遠因)도 생각해야
차제에 정부는 대형 행사, 대형 시설물, 철도·항공 등 대형 교통수단 등에 대한 안전 시스템 정비에 나서기 바란다. 사후 약방문이라도 내라는 얘기다.
한심한 일 하나는, 대형 시설물의 안전 문제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시설안전공단이란 공공기관을 지방 활성화를 명분으로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시킨 일이다. 역대 정부의 안전불감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 기관을 지방으로 보내기에 앞서 상당수의 대형 시설물, 대형 이벤트 장소의 지방 이전이 선행돼야 했다.
정치권의 논리에 밀려 항상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지만, 수도권 과밀 해소 문제도 다시금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
‘수도권 만원 사태’는 교육, 문화, 교통, 범죄 등 모든 분야에서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이번 참사의 경우처럼 대형 사고의 원인(遠因)이 되고 있다. 그러나 주로 정치권의 ‘표’에 밀려 이젠 거의 치유 불가능한 난제가 됐다. 오죽하면 해당 정부 부처에서 수도권 문제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문제는 ‘만질수록 커지기만 하고 해결 불가능한‘ 과제라고 외면하며 한편으로 밀어놓고 있을까.
수시로 터지는 이런저런 돌출 사고들 때문에 윤 대통령과 정부가 정신 못 차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이 해묵은 과제들은 반드시 들여다봐야 한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