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보고 싶지 않았던 단어가 또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참사(慘事). 이태원 참사는 어렵사리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던 국민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슬픔을 안겼다.
정치권에서는 156명이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의 책임 소재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서부터,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장관을 경질하라는 요구까지 나온다.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용산경찰서장과 용산소방서장, 용산구청장 등을 입건했지만 이 정도로 여론이 수습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렇다면 과거 있었던 대형 참사 당시 정부는 어떻게 민심을 달랬을까. <시사오늘>은 서해 훼리호 사고,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화재, 천안함 피격, 세월호 침몰 등 민주화 이후 일어났던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처 방식을 되돌아봤다.
사과에 문책 경질까지…단호했던 YS
25년 넘게 지속된 군사독재정권을 뒤로 하고 문민정부를 수립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장 많은 사건사고를 경험한 대통령이었다.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에서 292명이 숨진 서해 훼리호 사고가 일어났다. 악천후에도 정원 초과 상태로 무리하게 출항했다가 배가 전복되며 일어난 서해 훼리호 사고는, 해상 교통 체제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사고 8일 후인 10월 18일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을 해임하고,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 이해 대형사고가 수차례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과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8일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와 관련,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을 문책경질하고 “앞으로 인명과 관련한 대형안전사고에 대해서는 반드시 행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또 공직사회의 만성적 적당주의와 나태, 무사안일주의 무책임이 대형사고를 불렀다며 “부처별로 행정체계의 구석구석에 대해 전면적인 관리태세 및 안전점검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서해 훼리호 사건 책임을 물어 이계시 교통부장관, 염태섭 해운항만청장을 해임하고 김좌훈 군산지방해항청장을 해임조치토록 지시한 후 임시국무회의를 주재, 이 같이 말했다.
김 대통령은 신임 교통부장관에 정재석 전 상공부장관, 해운항만청장에 김철용 전 교통부항공국장을 각각 임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 이래 대형사고가 수차례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해 국민 앞에 거듭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후략)
1993년 10월 19일 <동아일보> “대형사고 반드시 문책”
이듬해 32명이 사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나자, 김 전 대통령은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을 사고 당일 바로 경질했다. 3일 후에는 특별담화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이 사건으로 많은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기 위해 이영덕 국무총리가 낸 사표는 반려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책임을 물어 이원종 서울시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우명규 경북지사를 발령했다. 경북지사에는 심우영 총무처 차관을 임명했다.
김 대통령은 우명규 신임 서울시장에게 조속한 사고수습과 아울러 특별안전점검반을 구성, 서울시내 모든 교량에 대해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1994년 10월 22일 <매일경제> 서울시장 경질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한편 각종 공공시설에 대한 안전점검 등 안전확보 종합대책을 세워 시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저녁 8시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중계된 특별담화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 이 사건으로 많은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참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김 대통령은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충분한 안전점검을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면서 “이번 사건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에서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어 “부실공사를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함과 동시에 그 책임자와 관리 태만으로 이런 결과를 초래케 한 공무원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토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이영덕 국무총리와 아침을 함께하면서 이 총리가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지난 21일 낸 사표를 되돌려줬다.
1994년 10월 25일 <한겨레> 김 대통령 ‘성수대교 참사’ 사과
1995년 6월에는 사망자만 500여 명이 발생했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그동안 그토록 시설안전 점검을 거듭 강조했음에도 다시 이런 대형 인명사고가 일어난 데 대해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라며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7월 1일에는 직접 사고 현장을 찾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생존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조순 서울시장 당선자를 접견하고 앞으로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하는 시정을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통령은 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관련,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이홍구 국무총리로부터 삼풍백화점 사고 대책을 보고 받고 “그동안 그토록 시설안전점검을 거듭 강조했음에도 또 다시 이런 대형인명사고가 일어난 데 대해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라며 “불의의 사고를 당한 분들과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인명을 구조하는 일”이라면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하여 마지막 한 사람까지 생존자를 구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부상자의 치료에도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1995년 7월 1일 <경향신문> “안전 최우선 시정을”…김 대통령, 조순 당선자 접견 당부
즉시 사과한 김대중·노무현…대처 늦었던 박근혜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6월 30일에는 경기 화성 씨랜드 화재 사건으로 유치원생 19명 등 23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다음 날인 7월 1일 곧바로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에게 사과한 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다.
경기도 화성 청소년수련원 화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강동교육청은 1일 충격과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유족들의 오열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의 위로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3시20분께 김대중 대통령은 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하고 10여 분 만에 돌아갔다.
김 대통령은 유족들과 악수하며 “미안하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후 2시50분께 김기재 행정자치부장관과 김덕중 교육부장관이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고, 1시45분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맹형규, 김중위 의원 등 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분향했다.
1999년 7월 2일 <매일경제> 유족들 조속한 신원확인 요구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는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고 발생 사흘 만인 2월 21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고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사과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21일 대구 지하철 참사와 관련, “죄인된 심정”이라며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다짐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오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정치하는 사람들과 스스로 지도자로 칭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죄인 느낌을 가지고 일을 대해왔는데 내 심정도 그렇다”며 “하늘을 우러러 보고 국민에게 죄인 된 심정으로 사후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설비안전시스템과 안전대처 책임자들의 업무처리를 보면서 이렇게 허술한 시스템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국민소득 1만달러 목표의 외형 뒤에 숨어있는 우리의 진정한 수준이 아닌가 생각돼 부끄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우리의 시스템과 사회문화가 이 수준에 있다는 것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또 방화 용의자와 관련,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건강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노 당선자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과 배려를 하고,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물질적 설비를 고치고, 제도개선과 더불어 우리 사회문화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도록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03년 2월 21일 <연합뉴스> 盧 대구참사 “죄인 심정”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3월 26일에는 백령도 근방에서 초계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이 북한 해군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침몰, 46명이 전사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4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희생 장병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우리 젊은이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당했는지, 가슴이 터지는 듯 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천안함 침몰사태와 관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강한 정신력이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라디오·인터넷과 TV 생중계를 통해 방송된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나는 우리 군대를 더욱 강하게 만들겠다. 강한 군대는 강한 무기뿐만 아니라 강한 정신력에서 오는 것이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철저히 찾아내 바로 잡아야 할 때이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젊은이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당했는지, 가슴이 터지는 듯 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서 무한한 책임과 아픔을 통감하면서, 살아있을 때 불러보지 못했던 사랑하는 우리 장병들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본다”며 천안함 희생장병의 이름을 호명했다.
“이창기 원사, 최한권 상사, 남기훈 상사, 김태석 상사…정태준 이병, 장철희 이병”이라고 희생장병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른 이 대통령은 “대통령의 호명에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관등성명을 대면서 우렁차게 복창하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리는 듯 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이제 여러분은 우리를 믿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히 쉬기를 바란다. 명령한다”며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명령으로 고인들을 애도했다. (중략)
이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무슨 말씀을 드린들 위로가 되겠느냐”면서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희생된 장병들에 대한 추모와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뜻을 함께 하고 있다. 국민의 따뜻한 마음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위로했다. (후략)
2010년 4월 19일 <아시아경제> 이명박 대통령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정신력”…희생장병 일일이 호명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고 발생 13일 후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이번 사고로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게 돼 국민 여러분께 죄송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했다. 사고 한 달여가 지난 5월 22일에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과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까지 경질했다. 그러나 대처가 너무 늦었던 탓에 비판 여론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 사과, 세월호, 국가안전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전처 설립의지를 보이며 공식 사과를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조화는 유가족들 품에 안기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뭐라 사죄를 드려야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 받을지 가슴이 아프다”고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를 통해 “잘못된 적폐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너무도 한스럽다”면서 “과거의 잘못된 행태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아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통합 재난 대응체계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위해 총리실이 관장하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면서 “신속히 국회와 논의를 시작하도록 준비하라”고 강하게 말했다.
국가안전처는 각종 사고를 유형화해 상시 훈련하고 재난 안전전문성을 갖춘 전문가 조직이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에 앞서 오전 9시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조화와 함께 조의록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넋을 기리며 삼가 고개 숙여 명복을 빈다”는 글을 적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은 “정부에서 보낸 화환은 보기 싫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조화를 치워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강병규 안정행정부 장관, 서남수 교육부장관 등의 조화가 장외로 내보내졌다.
2014년 4월 29일 <동아일보> 박근혜 대통령 사과, 국가안전처 설립의지…‘세월호 조화는 장외로…’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