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개 재건축사업에 國運 걸려…둔촌주공의 촌극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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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재건축사업에 國運 걸려…둔촌주공의 촌극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10.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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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 28일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차환(기존 채권을 새 채권 발행을 통해 상환) 발행 주관사인 KB증권은 총 5423억 원 규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와 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ABSTB)를 만기 83일물(오는 2023년 1월19일)로 차환 발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차환 발행 금리는 기존 금리(최대 4.47%)보다 높은 최대 12%로 알려졌다.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인 현대건설(2005억 원), 롯데건설(1710억 원), 대우건설(1708억 원) 등이 대출채권 연대보증을 섰다. 당초 해당 사업 조합은 대주단(PF 대출 금융사)에 7000억 원 규모 사업비 대출의 만기 연장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해 곤욕을 치렀다. 이에 따라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들은 '돈맥경화' 환경 속에서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 PF 대출을 갚아야 하는 어려운 지경에 처한 바 있다. 이번 차환 발행 성공으로 조합도, 건설사도 한시름 놓은 셈이다.

KB증권 측은 "차환발행에 실패할 경우 시공사업단이 PF 조달자금 전액을 상환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둔촌주공의 경우 워낙 우량한 사업장인 만큼, 최근 시장 내 급격한 자금 경색에도 차환 발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둔촌주공의 차환 발행 성공은 우량한 사업장이어서가 아니라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실제로 앞서 조합은 PF 대출 만기 연장이 이뤄지지 않자 BNK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을 통해 최근 8250억 원 규모 차환 발행을 시도했으나 투자자를 찾지 못한 바 있다. KB증권의 말대로 자금 경색 가운데에도 통하는 우량한 사업장이라면 차환 발행 주도자가 누구든 진작에 리스크가 해소됐어야 했다. 차이점은 단 하나, 이번엔 윤석열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수십조 원을 투입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나섰다는 것이다. 채안펀드는 약 900억 원 가량의 둔촌주공 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전체 차환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채안펀드가 뛰어들지 않았다면 금융사들이 과연 둔촌주공 채권을 매입했을까. 정부가 눈여겨보고 있는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정부를 믿고 자금을 투입한 것이다.

현 시장 분위기 속에서 둔촌주공 정도 규모의 사업이 흔들린다면 국내 부동산·금융산업의 혼란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금융당국의 개입은 적절했으며,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도움을 받고도 둔촌주공 사업이 정상 궤도 진입하지 못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거대한 후폭풍을 생각하면 우려가 앞선다.

지금 정부는 자금을 무한정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채안펀드는 시장에 '신뢰'라는 신호를 주기 위해 정부가 꺼낸 한시적 카드다. 미국발(發) 금리 인상 여파, 고물가 현상 등으로 인해 강도 높은 유동성 관리에 들어간 상태여서다. 지난 27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유동성 규제 완화 조치에도 3개월, 6개월 등 단서가 달렸다. 만약 정부가 주도한 이 같은 정책들이 정해진 기간 내 시장 신뢰 회복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시장 구성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시장에서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의 상징성은 말로 형언할 수조차 없다. 일련의 사태들을 겪으면서 부동산에 대해 관심이 없는 국민들도 둔촌주공은 안다. 오는 2023년 1분기로 예정돼 있는 둔촌주공 일반분양이 고금리·고분양가로 흥행 실패해 미분양·미계약 물량이 쏟아진다면, 또는 공사비 증액 문제로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이 재차 불거져 사업이 지연된다면 시장은 큰 충격을 받을 게 자명하고, 국민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이는 나아가 정부 정책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금융당국에서 마땅히 손을 쓸 도리도 없다. 유동성 관리라는 국정 기조를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어서다. 때문에 시장 일각에선 정부가 최근 중도금 대출 보증 제한 기준 완화, 15억 원 초과 주택담보대출 허용 등을 단행한 것도 둔촌주공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아무리 국내 최대 규모 재건축 단지라지만, 일개 재건축사업에 우리나라 경제 흥망이, 국운이 걸린 모양새다. 희대의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이 우스꽝스러운 촌극의 연출은 정부와 국회가 맡았다. 금융권, 특히 채권시장의 혼란은 일찍이 예견된 일이었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 외국인 등 투자자들은 당연히 원화투자상품을 매도할 것이고, 강달러 기조가 길어질수록 자금 이탈은 가속화되기 마련이다. 강원 레고랜드 사태, 한국전력공사 채권 블랙홀 등은 돈맥경화 현상을 좀 더 빠르게 불러일으킨 일종의 촉매에 불과했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외국인 자금 이탈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계속돼 왔고, 이에 따른 퍼펙트 스톰 우려는 지난 대선 토론 과정에서도 화두가 된 바 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정권을 잡은 직후 경제 위기 골든타임에서 내부총질에만 몰두했다. 야당도 민생경제를 외면한 채 김건희, 한동훈 등을 지속 거론하며 정쟁에만 집중했다. 급기야 최근 정치권에서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색깔론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는데 빨갱이나 운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이미 촌극은 상영돼 버렸다. 중간에 멈출 수 없다. 연출자인 정부와 국회는 이제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상황들을 예측해 여러 시나리오들을 마련해야 한다.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이 흔들릴 시 시장에 어떤 파급 효과를 줄 지, 시장 구성원들의 심리적 충격을 완화할 방법은 뭐가 있을 지 선제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후폭풍을 찻잔 속 태풍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들을 미리 모색해야 한다. 또 한번의 골든타임이다. 주어진 시간은 약 3개월 정도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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