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적 문제의식·상인의 현실감각 원칙갖고 화해와 용서의 정치한 DJ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지난 한 주 많은 일이 있었다. 제1야당의 대표는 검찰에 기소됐고 한 나라의 대통령은 제1야당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테이블에 대통령 부인의 특검법이 올라왔고, 여당의 전직 대표는 당에 대해 네 번째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난 대선에서 불거졌던 각종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가운데, 여당과 야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쪽은 당 대표를 지키기 위해 당헌을 개정하고 한 쪽은 당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당헌 개정을 강행했다. 여야는 국민들이 기소·고발 관련 속보들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상대측 주장을 반박하는 논평을 냈다.
여당이 겪고 있는 내홍 근본에는 이준석-윤핵관 간 갈등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권성동 원내대표 텔레그램 유출로 여론은 당정에 더욱 부정적이게 됐다. 정진석 의원은 이 전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자기 정치 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해 갈등에 불을 지폈던 만큼, 많은 이들이 ‘정진석 비대위’가 현 사태를 봉합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줄지 의문을 품고 있는 상태다.
야당은 투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쌍방울 변호사비 대납 의혹·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위례신도시 개발 의혹·성남FC 의혹 등 본인의 사법리스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민생’ 메시지를 내고 있다. 대신 이 대표를 제외한 당 지도부가 일련의 수사를 ‘정치 탄압’으로 규정하고 김건희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당 내부 싸움과 여야간 싸움 모두 법정의 손을 빌리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정치가 실종됐다’고 말한다. 과거 보수 진영의 ‘산업화’, 진보 진영의 ‘민주화’ 서사를 이어 국민에게 제시할 의제 발굴에 적극적인 정치인도 찾기 어렵다. 기존 갈등에 대해선 대화와 타협을 통한 조정 대신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진영 정치가 아닌 대의를 위한 정치, 통합의 정치가 무엇보다 필요한 요즘이다.
과거에는 ‘대의’를 앞세우는 정치 지도자가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통성’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원칙으로 삼고 정치 활동을 했다. YS-DJ는 경쟁자였지만 적과 경쟁자를 구분했다. 구체적 실천 방향은 달라도 ‘민주주의’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대통령이 된 뒤엔 정치 개혁의 선례를 몸소 보여줬고 국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하나회를 해체시키고 자신의 재산을 앞장서서 공개했다. 공직자 재산 공개의 경우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을 포함한 몇몇 의원들이 ‘투기 탈세 혐의’, ‘불성실 신고’, ‘비리축재’ 등으로 비판받으며 탈당하거나 징계조치를 받는 일이 있었지만 강행했다. 비밀리에 금융실명제 준비한 뒤 실시했고, 대한민국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임시정부 성역화, 4·19을 혁명으로 승격, 5·18을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재수사, 5·18 특별법 제정에 이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민주자유당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호용·허삼수·허화평 등 인사를 5·18 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시킨다.
김대중 정부도 제주 4·3 사건 관련 특별법, 의문사 관련 특별법, 민주화운동 관련 법률 등을 제정해 과거사 청산 작업을 이어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화해와 용서’의 정치를 했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목포를 점령한 북한 인민군에게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 직전까지 간 경험이 있었으나, 후에 ‘햇볕정책’을 추진해 남북간 화해와 교류, 협력을 추구했다. 과거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돼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용서를 말하며 박정희 기념도서관 건립에 200억 원대의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도 건의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기에 진보층으로부터는 상인의 현실감각에 대해, 보수층으로부터는 서생의 이상주의적 모습을 비판받았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법보다 지더라도 원칙있게 지는 편을 택했다.
현실정치에서 진영의 목소리만 듣고 칭찬을 받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박근혜-문재인 정부는 자기 진영을 바라보고 하는 정치에 가까웠다. 박근혜 정부는 군사 정권 시절 인사 기용·국정교과서 등을 추진하다가 국정 농단 사태까지 맞으며 탄핵 정국을 겪었고, 문재인 정부의 경우 임기 말까지 40%라는 역대 최고 지지율을 얻었지만 조국 사태·부동산 실책 등으로 중도층 민심을 상당 부분 잃었다.
그 결과는 5년 만에 정권교체였다. 대표적 진보 논객인 진중권 작가는 조국 사태 등을 겪고 등을 돌렸다. ‘지금의 민주당은 과거 DJ의 민주당과 다르다’라고도 말했다. DJ 정부에서 각각 대통령실 법무비서관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맡았던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과 김한길 전 민주당 대표도 윤석열 정부 취임식 준비위원장과 통합위 인수위원장을 맡는 등 현 정부를 도왔다. 김한길 전 장관은 현재 대통령실 직속의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박 전 부의장은 최근 여당 비대위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정치권에서 이들을 계속 소환하는 이유는 통합은 물론 진영을 넘어서 ‘원칙’과 ‘대의명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간의 정치 경험을 이어받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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