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 멘 삼표·한일 모두 공장이전 이슈, 담합 의혹도 제기
SOC 필수재 시멘트價 오르면 사회 전반에 물가 충격 커
尹정부, 예의주시 필요…이기적 조치일 시 책임 물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국내 시멘트업체들이 지난 4월 15% 가격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불과 4개월 만에 또다시 시멘트값을 최대 15% 올리겠다는 방침을 이달 밝혔다. 명분은 그때와 동일하다.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쓰이는 유연탄 가격이 크게 뛰었다는 것이다. 연료, 원재료 가격이 폭등하면 제조사들이 제품값을 인상하는 건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번 가격 인상에 대해선 비상식·비합리적이라는 조치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국내 시멘트사들이 주로 쓰는 유연탄은 러시아산인데, 최근 러시아산 유연탄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어서다. 시멘트업체들은 연초 가격 인상 당시 자신들이 사용하는 유연탄 중 75%가 러시아산이며 나머지 25%는 호주산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의 KOMIS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유연탄(CFR 동북아 5750kcal/kg NAR) 가격은 지난 3월 톤당 343.73달러에서 8월 5일 기준 246.99달러로 39.17% 하락했다. 또한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를 살펴보면 국내로 수입된 러시아산 유연탄의 평균단가(수입액/수입량)는 지난 2월 205달러에서 6월 183달러로 떨어졌다. 아울러 러시아 연방에서 국내로 들어온 전체 유연탄(생산지 불문) 평균단가 역시 지난 1월 156달러에서 4월 229달러로 오른 후 6월 205달러로 하락했다. 국제 통계를 봐도, 국내 수입 실적을 봐도 시멘트업체들의 논리가 비상식·비합리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이번 인상에서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호주산 유연탄 가격을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호주 뉴캐슬 유연탄의 현물가는 지난 5월 톤당 436.07달러에서 377.44달러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7월 433.9달러로 올랐으나, 이달 들어선 지난 5일 기준 392.84달러로 다시 내려앉았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의 KOMIS한국자원정보서비스 통계에선 지난 3월 288.15달러에서 8월 209.91달러로 27.15%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멘트업체들의 가격 재인상 조치를 두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들이다.
무엇보다 의아한 건 타이밍이다. 전문가들은 변수가 없는 한 국제 유연탄값이 올해 2~3분기 정점(인도네시아산 등 평균 약 350달러 안팎)을 찍은 후 안정세를 지속해 이르면 4분기, 늦어도 오는 2023년 2분기에는 200달러 안팎 수준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럽 국가들이 탈(脫) 러시아 석탄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러시아산 유연탄을 많이 사용하는 국내 시멘트업체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국내 증권가에선 상반기 가격 인상 효과가 하반기에 반영되면서 시멘트사들이 일제히 실적 개선을 이룰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BNK투자증권 측은 "유연탄 가격은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올해 인상된 부분으로 현 수준 유연탄 가격을 커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화투자증권 측은 "(쌍용C&E, 한일시멘트 등 시멘트업체들이) 시멘트 가격 인상 효과가 하반기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면서 이익 개선을 이끌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연탄 가격 안정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시멘트사들의 실적 개선 가능성이 대두됨에도 굳이 지금 타이밍에 다른 업종에 고통 분담을 호소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관련 업계 일각에선 시멘트업체들의 시멘트값 인상 시도 배경에 유연탄이 아니라 다른 게 깔려있을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번 가격 인상 이슈에서 총대를 멘 삼표, 한일 등 과거에는 선제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기업들이다. 양사는 모두 최근 공장 이전 문제에 휩싸였다. 삼표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한일은 부산과 경기 성남에서 각각 잡음을 빚고 있는데, 공장 철거·이전이 이뤄지면 두 회사 모두 지금 당장은 경영활동에 애를 먹을 공산이 커 보인다. 뒤따라 가격 인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쌍용C&E(쌍용씨앤이)는 지난달 말 대주주인 사모펀드 한앤컴퍼니가 출자자 교체를 마친 바 있다. 수익률 제고 작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각 업체들이 제시한 인상률이 비슷한 수준(12~15%)이라는 점도 수상쩍다. 기업마다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이 다르고 원가가 다를 텐데 어쩜 이리 판박이인지, 유연탄 가격 상승으로 인한 불가피한 인상 조치가 아니라 담합을 통한 이기적인 조치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최근 윤석열 정권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영향으로 침체된 경기를 대규모 SOC를 통해 살리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새정부 도시재생 추진방안을 공개하면서 "기존 생활SOC 공급 위주 사업에서 경제거점 조성 등 규모 있는 사업을 집중 지원함으로써 도시재생의 본래 목적인 지역경제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개발사업 등에는 시멘트가 필수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시멘트사들이 가격을 올리면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상당한 물가 충격이 가해지고, 정부가 기대하는 경기 활성화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시멘트업계의 이번 가격 인상 시도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또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아니라 다른 목적 때문에 시멘트값 인상에 나선 것이라면, 전(全)국민적 고통 분담이 요구되는 시기에 비상식·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보를 보인 기업들에게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하리라. 특히 공정거래위원회 등은 이들의 담합 여부에 대해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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