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맛기행-냉면과 비빔밥 [일상스케치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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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맛기행-냉면과 비빔밥 [일상스케치㊻]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7.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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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냉면, 육전 고명에 진한 육수까지
육회비빔밥과 선짓국의 조합도 환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청록빛 산야에 짙은 매미 소리 가득 찬 여름, 따가운 햇살을 피할 시원한 바다나 계곡이 그립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로 피서를 대신하지만 편리함 빼면 계절의 풍광을 만끽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지리산 밑 쌍계사 계곡. ⓒ정명화 자유기고가
지리산 밑 쌍계사 계곡. ⓒ정명화 자유기고가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고향 하동 쌍계사 계곡은 피서지 루틴 코스였다. 또한 섬진강변 송림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아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게다가 밤이면 할머니와 엄마는 얼음 동동 띄운 찬 미숫가루와 커다란 우물 속에 담가 둔 수박을 꺼내 숭덕 숭덕 잘라 평상 위에 한 상 차렸다. 따갑게 쏘아대는 모기떼들을 쫒느라 피워둔 매캐한 못갯불을 맡으며, 반짝반짝 빛나던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부채로 더위를 식히며 먹던 찬 설탕 수박은 맛이 기가 막혔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 그 맛도 안 나고, 무엇보다 물리적으로 힘에 부치니 서글프게도 고작 시원한 먹거리 찾는 게 유일한 여름 나는 비결이다.

냉면의 계절

요즘 복날이다 하며 갖가지 취향 따라 보양식을 먹거나 더위를 이겨낼 음식 찾는 게 일이다. 한낮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이때 시원한 냉면 한 사발 들이키면 어떨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여름 별미 냉면, 그 기원은 고려 시대부터 평양 지역에서 메밀면을 찬 국물에 말아먹는 겨울 향토 음식으로 전래되어 왔다. 숙종(1674~1720)과 고종 임금(1864~1910)이 냉면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냉면'이라는 이름의 음식이 이미 조선 중기에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계절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널리 먹은 음식이었다.

특히 고종이 즐기던 냉면은 그릇에 면을 담아 열십자(十) 모양으로 편육을 얹고 빈 곳은 숟가락으로 배를 저민 것을 채운 다음 잣을 뿌린 후, 동치미 국물을 부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고종이 먹기 위한 냉면을 위해 동치미를 따로 담갔는데, 배를 많이 넣어 무척 달고 시원했다 한다.

해물 육수에 화려한 육전 고명의 진주냉면. ⓒ정명화 자유기고가
해물 육수에 화려한 육전 고명의 진주냉면. ⓒ정명화 자유기고가

평양냉면 쌍두마차 진주냉면

냉면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흔히 최고의 냉면이라면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떠올리기 쉬우나 조선 후기에는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을 으뜸으로 꼽았다. 두 곳 모두 교방문화(敎坊文化)가 발달한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평양 지역의 냉면이 제일 번성했고,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들어 인구가 급증한 평양에는 냉면집이 수십 군데나 있었다. 서울에도 진출해서 큰 인기를 끌었고 곧 평양냉면의 제법과 명성은 남한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평양냉면에 비해 진주냉면은 대중적으로 상품화 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조선 시대 때도 평양냉면은 요정에서부터 주막으로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대중 음식이었다. 이에 반해 진주냉면은 진주 지역에 소재한 소수의 요정에서 아주 엄격한 조리법에 의해 조리되던 고급 음식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 이후 서울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요정들이 영업을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진주냉면은 사실상 거의 잊혔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발달한 냉면은 각기 개성이 뚜렷하다. 평양식은 생김새가 밋밋하고 맛이 소박한데 비해 진주식은 화려하고 다채롭다. 호사스러움의 정점은 고명으로 육전이 올라간다. 쇠고기를 도톰하게 잘라 달걀물을 입혀 부친 다음 길게 썰어 얹는다. 여기에 지단 한 움큼, 삶은 달걀 반쪽, 절인 무, 채 썬 오이·배를 듬뿍 넣고 마지막으로 깨소금까지 넉넉히 친다.

이렇듯 화려한 데는 유래가 있다. 진주 기생들의 조합인 권번가에서 야참으로 즐겨먹던 음식, 본래는 기방에서 먹던 별식이었기 때문이다. 술 마시고 쓰린 속을 달래줘야 했으니 해장에 좋은 해물을 썼고 고관대작을 대접해야 했으니 좋다는 것은 다 넣어 조리했던 것이다.

진주냉면의 재탄생

원래 진주냉면은 지리산 주위 산간지역에서 메밀이 수확되었으므로 이 지역에서 메밀국수를 즐겨 먹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거기다 바다를 접한 고장이라 그런지 진주냉면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밝혀낸 쇠고기 육수에 멸치와 바지락, 마른 홍합, 마른 명태, 문어, 표고버섯 등으로 만든 해물 육수를 섞어 국물 맛을 낸다. 덕분에 육향이 진하고 생선이 주는 짭짤한 감칠맛도 깊다.

그런데 점점 쇠퇴하던 진주냉면은 1960년대 이후로 거의 명맥이 끊겨 80~90년대까지 진주시내에는 현재와 같은 형태의 진주냉면집이 단 한 곳도 없었으며 그 당시에 진주는 냉면을 잘 먹지 않았던 지방이었다.

이렇듯 잊혔던 진주냉면의 복원은 북한에서 발행된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됐다. '조선의 민속전통'이란 서적의 식생활 풍습 부분에 "냉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라는 기록이 계기가 되어 진주 음식 연구가들이 진주냉면을 찾아 나섰다.

1999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한 바로는 1800년 말에 진주목의 숙수(熟手) 한 분이 관영(官營)에서 나와 옥봉동 개울가에서 진주냉면을 뽑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진주 시내에는 관아 소속 진주 기생이 적잖았다. 그들과 맞물려 돌아갔던 숙수(요리사)들은 조선이 망하면서 권번과 요정으로 나와 그들만의 기생문화를 발달시켰다.

이들은 돈 많은 왜인이나 지주 등 한량들과 함께 기생 놀이를 하고 야심한 밤에 냉면집을 찾아 냉면을 밤참으로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기생문화와 냉면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당시 기생뿐만 아니라 일반 부유한 가정집에서도 냉면을 배달시켜 먹어 냉면집에는 배달을 주로 하는 남자 하인들이 서너 명씩 두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유지되던 진주냉면이 소멸되었다가 당시 요정에서 진주냉면 조리를 돕던 사람의 기억에 의존한 레시피를 따라 음식 연구가들의 노력으로 2000년대 현재의 진주냉면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향토음식을 만들어내려 한 진주시 공무원들의 공이 크다 하겠다. 이후 진주성 유등 축제 등 지역 관광산업 육성과 맞아떨어져 함께 성장한 측면이 있다.

여러 전문가들을 통해 진주냉면의 맛을 찾던 중 공통된 특징을 알게 되었다. 첫째, 순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물에 개어 이 전분 물로 메밀 반죽을 하여 면발을 뽑는다는 것, 둘째 쇠고기 육수에 멸치장국으로 육수의 빛깔과 맛을 낸다는 것, 진주지방의 제사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쇠고기 육전이 꾸미로 올라간다는 것, 마지막으로 전복·해삼·석이버섯을 데쳐 채를 썰어 냉면 꾸미로 올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담백한 평양냉면에 비해 해물 때문에 비릴 수도 있어 육수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히 갈린다. 기존 물냉면의 맛을 생각한다면 진주냉면의 크게 다른 육수 맛에 당황할 것이다. 평양냉면을 주로 먹던 나 역시 처음엔 이게 뭐지? 했는데 자꾸 먹다 보니 중독성에 끌린다.

진주비빔밥

진주 육회비빔밥과 선짓국.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주 육회비빔밥과 선짓국. ⓒ정명화 자유기고가

한편, 진주 지역은 고대부터 영남권의 중심지였으면서 물자가 풍부해서 음식 문화가 매우 발달했었다. 진주의 대표 음식으로 진주냉면과 함께 진주비빔밥 또한 유명하다. 진주는 이렇게 냉면과 비빔밥 앞에 자기 이름을 갖다 붙여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낸, 흔하지 않은 도시이다.

비빔밥의 유래와 전파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누가 최초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다만 제사 후 음식을 한데 섞어 먹은 데서 시작했다는 '음복설', 바쁜 농번기에 이것저것 섞어 비벼 먹었다는 데서 기원했다는 '농번기설', 동학혁명 시기 부족한 음식을 한데 비벼 먹었다는 '동학혁명설' 등 비빔밥의 유래에 대한 설들은 많다.

이와 함께 '진주비빔밥'의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먹었던 음식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진주 음식이니 진주성 전투와 연결시켜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진주의 육회비빔밥은 거란을 물리친 귀주대첩의 숨은 공신 은열공 강민첨 장군의 제사에서 유래되었다는 구전도 있다.

이처럼 비빔밥은 오랜 세월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음식으로 지방마다 특색이 있으며, 특히 전주와 진주의 비빔밥이 대표적이다. 전주비빔밥은 콩나물을 주 재료로 하여 비빔밥에도 콩나물이 들어가고, 먹을 때에도 콩나물국과 곁들여 먹는다.

대신 진주비빔밥은 콩나물 대신 숙주를 쓰고 육회를 얹어 먹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선짓국을 곁들인다. 또한 나물을 손가락 사이에 뽀얀 물이 나오도록 까부라지게 무치는 것과 보탕 국을 얹는 것에 있다. 보탕 국은 바지락을 곱게 다져서 참기름으로 볶다가 물을 붓고 자작하게 끓인 것이다. 그리고 물기를 뺀 나물을 잘게 다져서 고명으로 올리기 때문에 씹을 때의 식감이 부드럽다.

전통적으로 사족의 세력이 강성했던 도시 진주, 관아와 교류가 잦아 진주비빔밥은 자연스럽게 관아의 별식이 됐다. 육회비빔밥은 본래 진주 반가의 음식이었다. 반드시 18가지 재료가 들어가야 진주비빔밥이라고 했다. 일곱 가지 보석을 받은 듯 화려해 칠보화반이라고도 한다.

수복 빵집 꿀빵은 추억의 맛

최애 수복 빵집 팥빙수.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애 수복 빵집 팥빙수. ⓒ정명화 자유기고가

진주엔 주식 못지않게 후식이 각광을 받는 노포가 있다. 냉면과 비빔밥은 꼭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유일하게 팥빙수만은 꼭 이곳에서만 먹는 곳이 있다. 바로 수복빵집의 것이다.
 
경남 진주의 중앙시장, 100년이 넘도록 인근의 농수산물이 집산하는 진주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역사가 긴 만큼 시장 안에는 오래된 노포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간식집인 수복빵집을 빼놓을 수 없다.

수복 빵집의 메뉴는 찐빵, 꿀빵, 단팥죽, 팥빙수 등 모두 팥이 주재료가 되는 간식들이다. 수복 빵집의 찐빵은 달콤한 향의 팥이 빵속에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빵 위에 팥물을 부은 채로 나오는 게 특색이다. 그래서 진주뿐 아니라 외지에서도 유명하다.

게다가 팥물이 다른 곳에 비해 당도는 낮으면서도 맛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여름 맛집으로 화룡점정이다. 안팎으로 흥건한 팥에 너무 달 것 같지만 또 그렇지가 않다. 빵도 퍽퍽하지 않고 쫄깃쫄깃하다.

이 집 맛의 비결은 바로 국내산 팥만 사용한다는 점이다. 테이블 5개가 놓인 작은 빵집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손님이 줄을 서는 일도 태반이지만 낮 12시 정각에 문을 열고 그날 만든 빵이 다 팔리면 그대로 문을 닫는다. 그래서 팥빙수를 먹고자 하는 날은 특별히 시간을 챙겨가면서 찾아간다. 아차하면 헛걸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복빵집 팥빙수는 간 얼음위에 삶은 팥만 올려져 나온다. 그런데 계피향 은은한 팥과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설탕 섭취를 최대한 멀리하는 내 입장에서도 수복빵집 팥빙수는 단맛이 적당해 먹지 않을 수 없다.

찐빵 외에 꿀빵도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다. 찐빵과 다른 점은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고 튀긴 다음 물엿을 바른 후 깨를 뿌렸다는 점이다. 얼핏 보면 무척 달 것 같지만, 막상 먹어보면 지나치지 않은 단맛에 고소한 맛이 깃들어 자꾸 손이 간다.

내가 꿀빵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쯤 이었던 것 같다. 하동에도 꿀빵을 파는 곳이 생기면서다. 그 후 진주로 나와 수복빵집의 꿀빵을 영접한 것이다. 그러니 팥빙수와 함께 꿀빵 찐빵 모두 추억의 음식이다. 중학교 3년을 진주에서 보낸 나로서는 결코 잊지 못할 진주 대표 맛일지도 모른다.

이런 추억의 맛을 찾아 여름이면 꼭 연례 행사처럼 중앙시장의 노포를 찾는다. 하교 길에 책가방 든채 친구들과 이곳저곳 누비던 곳. 언제 찾아도 노포의 특징인 낡은 식탁과 의자, 내부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맛도 60년 전 그대로다. 시간이 과거에 그대로 멈춘 듯,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곳곳에서 켜켜이 추억이 묻어난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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