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맛이 청량하고 평온해
극심한 가뭄 농촌의 시름
고령화 사회 마을 구성원
인생 후반기 공동체 인식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연으로의 회귀 본능이랄까. 도회지 생활은 처음엔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맛나고 유혹적이다. 하지만 오래 먹다 보면 불편해지는 인스턴트 음식처럼 곧 무감각하고 식상해진다. 그러니 금세 시골의 품과 풍경, 맑은 공기가 그립다. 청량하고 신선한 맛이 고파지는 것이다.
시골로 돌아와 보니
잿빛 시멘트 빌딩 숲이 갑갑하기도 하고 오래 떠나 있어 모처럼 시골집을 찾았다. 역시나 초록빛 초원이 펼쳐진 남도의 자연은 날 포근하게 감싼다. 지친 심신을 내려놓고 쉬기에 단연 최고다. 떠나올 때 잘 다녀오라던 인사처럼 환영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누가 날 이토록 반겨줄 까 싶은 게 너무나 편안하고 고맙다.
오랜만에 시골집에 내려오면 변화가 많다. 훌쩍 자란 잡초 사이 마당의 꽃들은 각양각색 손바뀜이 빠른데, 주인 없는 빈 집에서도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대도시에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텐데 하는 안쓰런 마음이 앞선다. 아무도 봐주는 이 없어도 때가 되면 나타나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제 몫을 한다. 자연의 순수하고 아낌없이 주는 은혜다.
자연의 축복
마당 돌계단에 앉아 쉬고 있노라니 '날 보러 와요' 하는 것처럼 저 멀리 빨간 손짓이 보였다. 반가워서 달려갔다. 몇 년 전에 심은 석류나무가 매년 소식이 없더니 처음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올핸 석류가 맺히는 걸 볼 수 있으려나, 기대가 크다.
이렇게 자연은 심을 때만 잠시 신경을 썼을 뿐인데, 때가 되면 기대 이상으로 화답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듯이, 햇빛과 바람과 비와 공기가 보란 듯이 키워낸다.
그런데, 이런 장점 뒤엔 도시보다 신경쓰이는 게 많다. 자연의 사치를 누리는 만큼 감당하고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제일 걱정인 것은 마당의 잡초는 얼마나 자랐으려나 하는 것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매년 풀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갖가지 도구로 거의 매일이다시피 사투를 벌여왔기 대문이다.
농촌은 가뭄으로 고통
다행히 우려보단 잔디나 잡초가 지나치게 많이 자라 있진 않았다. 연유인즉슨 극심한 가뭄 탓이었다. 농촌의 젖줄인 저수지가 말라 갈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이럴지니 시름이 깊다 못해 만나는 이웃들의 탄성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타들어가는 농토에 농민들의 마음도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마른논에 물들어 가면 제일 좋다는 옛말이 있는데, 농부들의 마음을 하늘은 아는지 모르는지. 이럴 땐 정말 원망스럽고 야속하기 짝이 없다. 시골에선 올 흉년을 걱정하는 처지다.
그렇다고 자연의 현상 앞에 인간은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고 뾰족한 대책도 없다. 속절없이 손 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장마가 제주도에서 북상중이라니 곧 해갈되길 기원할 뿐이다.
길고양이와 조우
자연 현상 다음으로 신경쓰이는 게 있다. 바로 밥 때가 되면 마루 문 앞에 턱 괴고 앉아 야옹하며 불러대던 길고양이가, 빈 집을 얼마나 기웃거리다 다녀갔을까 였다. 처음엔 거리를 두다가, 매일 찾아오는 녀석을 내칠 수 없어 작은 집을 마련해 먹이를 주니, 거의 한 식구처럼 살가워졌다. 종종 친구들까지 대동하고 나타난다.
한적한 시골 생활에 반갑기도 하고 조석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데, 독거 어르신들이 가족처럼 나비들을 챙기니 믿고 떠나곤 한다. 마을 이 집 저 집 다니며 밥 구걸을 해왔던 터라 어딘가에서 먹거리를 해결하고 있겠지 하면서다. 짐을 푸는 사이 나의 귀가를 어찌 알았는지 어느샌가 나타나 주변을 서성거린다. 먹이를 달라는 제스처다.
열린 공간
시골 동네에선 낮에 모든 집이 대문을 열어 놓고 지낸다. 외출 시엔 이렇듯 허술하고 형식적인 문고리로 부재중을 알릴뿐이다. 처음엔 깜짝깜짝 놀랬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성큼성큼 마당 안으로 들어와 문 앞에서 부르거나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런 상태에 적응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평상시 외부 인사들의 마을 출입은 택배차나 우편배달부가 거의 전부다. 마을 거주민 외엔 외부 사람들의 방문이 별로 없다. 도시에선 자동차 소음 등이 공해로 느껴진다면, 이곳에선 차 소리가 반가울 정도다. 명절이나 제삿날 외 자녀들의 승용차가 들락거릴 때엔, 그 댁 어르신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평화롭던 마을에 응급 구호차가 종종 출몰하기도 한다.
노년의 여정
우리가 떠나 있는 사이 주로 어르신들만 거주하는 마을에 특별한 변화가 종종 생긴다. 그건 바로 부음 소식이다. 누가 세상을 떠났어 하며 마을 할머니들이 소식을 전한다. 아니면 편찮아서 요양병원으로 가거나 더 이상 혼자 기거하기 어려워 자식 집으로 거처를 옮겨가기도 한다.
돌과 흙으로 쌓은 담이 예뻐서 들러 사진도 찍고 구경하던 이웃 할머니 댁. 담장으로 걸터앉은 포도송이가 탐스러워 얼마나 자라 익었나 궁금해 자주 찾았다. 유모차에 의지하여 반찬까지 가져다주던 고마운 할머니는 전날 마을회관에서 이웃들과 어울리다 잠자리에 들곤, 아침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웃 아주머니가 아침 먹자며 들렀더니….
또한 아침마다 집 앞 텃밭에 영혼을 바칠 정도로 지극정성이던 할머니의 근황은 자녀들을 통해 암 발병 사실을 전해 들었다. 워낙 고령이라 특별히 손쓸 방도도 없고 진통제에 의지한 채 시간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요양병원으로 옮겨 갔다 조금 상태가 나아지면 텃밭이 그리워 다시 돌아오곤 하던 할머니도 끝내 저세상으로 떠났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옥봉 김혜자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아들 동석 이병헌과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다녀온 후, 노년을 보내던 누추한 방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가는 길은 대개 비슷할 것이다. 임종 시 가족이 옆에 있든지 혼자이든지. 먼 길 떠나는데 외로운 건 마찬가지다. 어차피 고독한 인생이지 않나.
마을은 비어가고
내가 사는 마을은 젊은이는 없고 전입 세대도 거의 없는, 60대인 날 서울 새댁이라 부를 정도로 초고령 주민들만 사는 곳이다. 대부분이 결혼하면서 자리 잡은 집에 아이들 키워 떠나보내고 배우자도 먼저 떠나고, 6~70년 가까이 한집에서 한평생 살다 마지막을 마무리한다.
몇 년 사이 부쩍 마을이 비었다. 버스 정류소에서 자주 만나던 할머니들이 어느 날부터 한 명씩 안 보이고, 하우스에 단체로 일 가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7~80대가 주 연령대고 90대까지, 그만큼 노쇠해지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내려온 초창기 손주 돌떡 돌릴 때만 해도 세대가 꽤 됐는데, 그 새 1/3 정도의 어르신들이 떠난 것 같다.
종종 마을 회관 앞에 세워진 커다란 영구차를 목격하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고 마을 뒷산 선산을 장지로 쓰기 위해 온 것이다. 때론 마을 입구 너른 공터에서 노제를 지내고 장지로 올라가기도 한다. 수십 년을 살던 터전에서 마을 뒷산으로 거처를 옮기며 오래 함께 지낸 이웃들과 작별하는 의식이다.
텃세의 벽을 넘어 친근한 이웃으로
한편, 초창기엔 텃세에 시달리며 곤욕을 치러 마음고생하던 시간도 있었다. 그리하여 도망치듯 도시로 달아나고 또 되돌아오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벽도 허물어지며 그들은 나를 거부감 없이 마을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나 역시 내 삶의 후반기 공동체로 받아들이게 됐다.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집들, 띄엄띄엄 켜진 희미한 마을 불빛 사이에 우리 집 불이 켜지면, 이웃 어르신들도 안심이 되고 든든하다고 한다. 오래 비우면 궁금해 하며 하루 몇 번만 다니는 버스 정류소에서 만나 마을 근황을 나누고 같이 걱정하는 사이로 굉장히 편안해졌다.
평소 왕래하던 뒷집 할머니가 편찮으신 모양이다. 수술도 항암치료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아직 본인에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간병 차 온 딸이 평소 내가 좋아하던 그집 상추를 한 가마니 뜯어 둘러메고 와 근황을 전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떠나고 비어 있던 집은 은퇴한 자녀들이 보수하여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렇게 한 세대가 떠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제 나도 신입이 아닌 터줏대감에 가까워지면서 어르신들이 떠난 허전함을 메꿀 새로운 마을에 기대가 된다.
지붕 위로 후두둑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농부의 애타는 가슴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려나. 풍성하게 대지를 적셔주길….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