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함몰, 여야 큰 반성 있어야
비전 제시 부족 인수위 한 달
보신주의(保身主義) 집권여당 구태(舊態)
전면 국가개혁, 눈치 보지 마라
세계경제 위험수위...장기 복안을
노동개혁·눈덩이 자영업 부채 숙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윤석열 정권은 경제·안보 등 핵심적 국가 정책에서 현 文 정부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정치 집단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는데도 아직 정책에 대한 본격적 논쟁이 없어 이상할 정도다. 정권 대전환기, 건강하고도 치열한 정책 논쟁과 대립이 있어야 정상이다.
과거 정권 전환기에 비해 전례가 없을 정도로 온통 정쟁속에 휘말리고 묻혔다. 국가체력 향상을 외면한채 사사건건 극단의 보신주의(保身主義)에 매달린 집권여당 민주당의 잘못이 가장 크고, 온전하고도 과감한 개혁을 강하게 내걸었던 국민의힘 인수위 실무진의 비적극성도 책임이 적지 않다. 한국정치의 후진적 속성이며 체질이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여야 모두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크게 반성하고, 심기일전 해야만 한다. 나라는 이제 거듭나야 한다.
지난 5년동안 文정권 치하 거대한 부패가 있었다면, 어떠한 유혈(流血)이 있더라도 완벽히 도려내 새살을 돋게 해야 하고, 극심한 재정난 속에서도 북한에 무차별 퍼준 국가 비자금이 있다면, 한 점 오차없이 국민앞에 있는 그대로 밝혀져야 한다. 이미 윤 당선자가 제시한, 나라의 장래를 위한 '실용주의' 새 시대 새 정치의 이정표는 그렇게 굳건히 구축돼야 한다. 국가적으로 낭비와 오도, 비효율은 스스로 차단하고, 가차없이 혁파돼야 한다. 이 운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 각계로 확산 파급되도록 해야만 한다. 완전한 구조개혁으로 연결돼야 한다.
참된 정책이슈를 뛰어넘어 정상적 여론흐름을 뒤집고, 정국 파열을 주도하기 위한 습관적 인신공격성 정쟁은 이제 금기시 되어야 한다. 나라 장래에 전혀 보탬이 안 된다. 흔들림 없는 국가관과 실행력(實行力)이 관건이다. 新정권은 단단한 각오로 용기를 내라. 집권 후를 다시 지켜보자.
'실용주의' 현안 경제
당면한 가장 큰 '실용주의' 현안은 역시 경제다. 국내외의 인플레이션은 우려를 넘어 차기 정부 최대의 부담이 되고 있다. 공급망 대란 와중에 글로벌 산업대전(大戰)으로 기업들 위기감도 한층 커지고 있다. 정부가 돈 쓸 곳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재정은 비어가고, 좀비기업과 빚더미 가계도 예사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 부문의 정책 쟁점이 아직 살아날 기미가 없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비전, 인플레이션 대처, 북핵, 우크라이나 사태 발 신냉전의 파고를 넘기 위한 인수위의 복안에도 관심이 집중됐지만, 중간평가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인수위는 지난달 18일 공정과 법치 민주주의 복원, 미래 먹거리, 국민통합 등 5대 과제를 제시하며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야심찬 선언을 했지만, 아직까지 손에 잡히는 성과는 없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된 지 4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지 어느덧 한 달이다. 지금쯤이면 단기, 중·장기 국정 개혁과제가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우선순위에 따른 각각의 청사진과 실행 로드맵까지 하나씩 가시화돼 나가야 한다. 격한 논쟁은 불가피하다.
성장엔진 다시 돌려야
대대적인 규제 혁파로 성장엔진을 다시 돌리지 못한 채 관제(官製) 일자리나 또 만든다면 정권교체의 국가관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정상화할 과제는 산업·금융·행정·공공·지자체 등에 산적해 있다. 신뢰성 있는 정책 로드맵이 지금쯤은 경쟁하듯 제시돼야 한다.
인수위 본연의 책무는 향후 5년간의 국정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차기 정부에서 추진할 의제를 설정해 국정의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국정 현안을 찾아내 논의 테이블에 올리고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과 정책들을 다시 한번 검증해 확정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인수위가 다음 달 초에 전체 국정과제를 발표한다니 일단 다행이다.
안철수 위원장은 "여소야대 국회와의 협치가 가능하고, 국민의 지지를 통한 국정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살얼음판을 걸어왔다"고 그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정부조직 개편을 새 정부 출범 뒤로 미룬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그러나 거야와 치열한 정책논쟁을 무릅쓰고라도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제시해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게 정도다.
구조개혁의 전범으로
이번 인수위는 10년 만에 부활했다. 근소한 차이로 5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데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구도인 만큼 새 정부가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갖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건지 관심이 컸다. 무엇보다 새 정부 앞에 놓인 글로벌 안보위기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등 외부 환경도 녹록지 않다.
172석의 더불어민주당 동의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현 인수위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집무실 이전과 인사권 문제로 인한 신구 권력간 갈등이 검수완박 논란으로 번지면서 정국 대치가 고조되고 있어 인수위의 운신 폭이 작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아니다.
인수위는 이번 주부터 분과별로 주요 국정과제들을 하나씩 발표한다고 한다. 지난 정부들도 출범에 앞서 100대 약속이니 하며 보여주기식 과제를 내놨었다. 하지만 대부분 5년 안에 헛공약이 됐다. 역설적으로 당장 인기는 없더라도 꼭 필요한 과제를 골라 무리 없이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맥락에서 사회적 대통합기구를 통한 연금개혁 방식이 앞으로 노동·금융·교육 분야 구조개혁의 전범이 되기를 기대한다.
여야 사회적 대타협 힘 모아야
인수위 출범 한 달이 지났는데도 국민들은 향후 이 정부의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지금껏 인수위의 정책 활동으로 꼽힐만한 것은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고, 과다한 지자체장들의 관사 폐지를 제안한 것 정도다.
나름대로 생활밀착형 정책이긴 하나 새 정부가 단기적, 중장기적으로 어떤 국정 과제에 집중할 것인지의 차원은 아니었다는 평가다.
중대 국정 현안인 교육·노동·연금·복지 관련 논의는 대선 공약 수준에서 거의 나아가지 못했고, 코로나 긴급 구조 및 포스트 코로나 플랜 역시 소상공인 손실보상 확대 방안과 재난지원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논의만 거듭하고 있다.
이번 주 내놓겠다는 부동산 해법은 ‘상당 기간’ 늦춰질 전망이다. 재정건전성과 연금개혁 등의 방향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논란이 큰 현안일수록 좌고우면 눈치를 보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다.
잘 한일도 있다. 지금까지 인수위 실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정부조직 개편을 유보한 일이다. 정권교체기마다 잡음이 적지 않았고 윤 당선인의 공약인 여가부 해체 문제까지 얽혀 인화성이 큰 이슈였지만 차분하게 풀어가는 수순을 택한 것이다.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고 국민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안 위원장의 자세가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안 위원장이 새 정부의 핵심 공약인 연금개혁 이행 방안을 밝힌 것도 반길 일이다. 그는 이날 이를 위한 사회적 대통합기구를 만들겠다며 구체적 복안을 제시했다. 윤 당선인이 약속한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 설치와는 다소 다른 로드맵이었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을 감안하면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연금개혁은 현 여권이 임기 내내 손 놓고 있었던 사안이라 사회적 대타협이 불가피한 까닭이다.
여소야대 구도가 활동 위축시켜
인수위 활동이 각종 정무 이슈에 묻혀 존재감을 키우지 못한 측면도 있다. 윤 당선인이 인수위를 꾸려 놓고는 “청와대엔 단 하루도 안 들어간다”며 청와대 개방 날짜를 못 박고 ‘용산 이전’을 선언하면서 한동안 대통령 집무실 이슈가 블랙홀처럼 다른 이슈를 빨아들인 것이다. 물러가는 정권과의 잦은 충돌, 장관 인선 등을 둘러싼 공동정부 위기론도 인수위 활동을 위축시켰다.
인수위 스스로 지지부진하고 미지근한 이미지를 주게 된 이유를 냉철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문제로 초반기에 힘을 너무 뺀 데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에 휘말려 주도권을 놓친 측면이 있다. 정부 조직에 대한 골격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부실 검증 논란까지 자초해 전력을 계속 낭비하고 있다.
특히 172석 의석인 더불어민주당을 의식해 시행령 등으로 실천할 수 있는 단기과제 발굴에 집중한 측면도 있을 법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구도가 인수위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이긴 하다. 인수위가 정부 조직 개편을 미루고 입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추진 가능한 과제부터 챙기겠다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다뤄야 할 현안은 즐비하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 등 경제 대응과 부동산 정책 전환, 적절한 소상공인 손실보상 방안 마련, 노동개혁과 연금개혁, 대입 정시 비율 확대 등 윤 당선인의 공약이 어떻게 될 것인지 국민은 궁금해하고 있다.
긴 호흡으로 5년 국정 로드맵을
인수위는 이번 주부터 7개 분과별로 주요 과제 발표를 시작한다는 방침이어서 인수위발 국정 과제가 뒤늦게 부각될 여지는 남아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강행과 인사 청문회 등 대형 이슈들에 묻히지 않기 위해선 보다 과감하면서도 구체적인 의제 선정이 필요하다. 보다 치열한 국정 청사진을 제시하길 기대한다.
조급해해선 안 되지만 더욱 긴장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하거나 6월 지방선거 등을 의식한 선심 정책을 앞세워선 안 된다. 민주당과의 협치를 감안해 긴 호흡으로 5년 국정 로드맵을 내놓는 게 국민 지지를 얻는 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광폭 경제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윤 당선인은 정재계와 학계, 시민단체 인사를 만나 “우리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기틀을 닦고 경제안보시대를 철저히 대비해 나가겠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경제 6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서는 “저성장을 극복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들을 빼내겠다”고도 했다. 대통령 당선인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의 주역인 경영계를 만나 애로사항을 듣고 격려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윤 당선인의 행보를 바라보는 경영계의 시선은 불안하다. 경제·안보 복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시급한데 문재인정부의 노조편향정책이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가실 줄 모른다. 윤 당선인이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정식 전 한국노총 사무처장을 내정한 데 이어 한국노총을 방문해 “한국노총의 친구로 남겠다”고 한 것도 경영계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노동시장 정상화 앞장서야
현 정부는 그동안 최저임금 과속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친노조정책으로 노사관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강성귀족노조의 입김은 더 세지고 청년과 취약계층의 고용난은 더욱 심화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시급 8720원)조차 받지 못한 근로자가 전체의 15.3%인 321만5000명에 달했다.
대한상의와 경총도 인수위에 “노사 간의 균형을 바로잡아 달라”고 호소했다. 윤 당선인은 경영계의 조언을 새겨들어 노동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 새 정부는 성장동력과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는 노동개혁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곧 출범할 윤석열 정부가 특히 자영업자 빚에 깊은 관심을 둘 것을 당부한다. 한은이 정의당 장혜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작년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909조원에 이른다. 1년 전(803조 원)에 비하면 13%, 2019년 말(685조 원)과 비교하면 32% 넘게 불어난 액수다. 작년 말 기준 1862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도 문제이지만, 눈덩이 자영업자 부채야말로 요주의 대상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소상공인·자영업자 공약을 통해 대출금 만기를 충분하게 연장하고, 외환위기 당시의 긴급구제식 채무재조정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엔 소액채무 원금 감면, 부실채무 매입 등이 포함된다. 인수위 단계에서 구체적인 공약 이행방안을 충실하게 마련하기 바란다.
정치·시대 교체 역사적 소명 의식을
윤 당선인은 “경제가 안보고, 안보가 곧 경제라는 경제안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경제 복합위기’라는 진단도 했다. 전적으로 타당하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느릿느릿 인수위’ ‘여유만만 인수위’는 안 된다.
변화와 쇄신, 숱한 정책의 정상화 바람에 부응하려면 인수위가 위기의식과 절박함을 더 갖고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인수위가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작금의 정국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이 부각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다. 인수위는 지난 한 달 동안 존재감이 없었지만 그래도 남은 2주를 잘 마무리해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선진국으로 이끄는 국가 청사진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신성장 동력의 제시, 취약계층의 소득 복원에도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약속한 정치·시대 교체에 대한 역사적 소명 의식을 인수위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윤 당선자가 제시했던 국가관과 실행력을 인수위는 더욱 확실히 다져주기 바란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