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일본 닮아가는 한국…정치권만 외면하는 대한민국 위기 [정호성의 시시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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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30년’ 일본 닮아가는 한국…정치권만 외면하는 대한민국 위기 [정호성의 시시각각]
  • 정호성 알앤비리서치 연구소장
  • 승인 2024.11.2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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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국가이익과 국제정세 나 몰라라 한 채 이전투구와 사색 당쟁만 매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호성 알앤비리서치 연구소장]

2023년은 한국 경제사에서 기억될 해가 될 것이다. 우리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앞섰기 때문인데, 한국 국민의 소득 수준이 일본을 추월한 것은 수백 년 만에 처음 있는 역사로 과거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 했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역사상 대역전극에 일제 강점기 때의 선조들과 독립운동가들이 지하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선진국 진입한 한국, 2년 연속 1인당 GDP 일본 추월

2024년에도 흐름은 이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1인당 국내소득(GDP)은 3만6,132달러로, 3만2,859달러의 일본을 앞섰다. 일본과 함께 G7 국가인 이탈리아도 넘어선 수준이다. 우리의 국민소득은 193개 유엔회원국 가운데 24위에 해당하지만, 모나코 같은 소규모 도시국가와 카타르 같은 원유 생산국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전 세계 10위 언저리이고 GDP도 전 세계에서 10위권 내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4국가경쟁력평가에서 20위를, 좁혀서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인구 5천만 이상 국가)을 대상으로 하면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지난해보다 8단계 상승한 수치로 IMF외환위기 이후 최고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가입국 중 개발원조위원회(DAC) 멤버 15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통상적으로는 38개국을 선진국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2010년에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으로 인정되었는데, 2차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개발도상국 중에서는 유일한 케이스다. 한국은 1973년 오일쇼크 때 미국, 서독, 영국, 프랑스 4개국으로 출범하여 이후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까지 합류한 G7정상회의가 G9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논의에서 호주와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8번째 나라가 되었다. G7 가입국은 선진국 중의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수치상으로 보면 한국은 선진국이 분명하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아예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번 선진국으로 진입하였다고 해서 영원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이 만능열쇠도 아니다. 더구나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던 여러 경제선진국 중에는 만성적으로 시름시름 앓거나 급격한 위기를 겪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선진국 진입했다 추락하는 나라들에서 배우는 교훈

유럽에서는 경제적 쇠퇴기를 맞는 나라를 향해 ’유럽의 병자’라고 지칭하곤 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부강했던 영국도 마거릿 대처 총리의 대수술 전까지 1960~70년대에 과잉 복지와 강성 노조로 상징되는 소위 ‘영국병’이라고 불리는 정치, 사회적 만성위기에 빠져 있었다. 영국은 2007년 5만 달러를 돌파한 후 글로벌 금융위기와 브렉시트의 여파로 오랫동안 4만 달러 박스권에 갇혀 있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독일도 통일 이후 높은 실업률과 경직된 노동시장으로 ’유럽의 병자’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최근 또다시 ‘에너지는 러시아, 수출은 중국’이라는 경도된 경제정책과 러-우 전쟁 등의 여파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과 10년간 최고 수준의 기업 파산율로 ‘유럽의 병자’라는 말이 소환되고 있다.

2000년대 전후로는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칼 남유럽 3국이 유럽의 병자 타이틀을 이어받았다. 관광과 해운산업 등을 기축으로 돌아가던 그리스 경제는 방만한 공공부문 확대와 복지 지출로 2010년부터 IMF와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2008년 3만 1,151달러로 한국보다 9년 먼저 3만 달러에 도달했지만 2017년 1만 8,813달러로 반 토막이 나고 말았다. 다행히 미초타키스 총리가 집권하면서 EU의 권고에 따라 1980년~1990년대 시행한 무상 의료·교육, 연금 인상, 공무원 증원 등 선심성 포퓰리즘을 걷어내고 시장친화적 정책을 성공적으로 펼쳐 ‘2023년 OECD 올해의 국가’로 선정됐다.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스페인도 2011년도부터 노동, 연금, 재정 등 전방위적인 긴축개혁으로 지금은 활황을 경험하고 있다. 포르투갈도 노동, 조세, 공공 부분에 대한 고강도 구조개혁으로 2012년 –4.1%였던 경제성장률이 2015년부터 플러스(+) 상장으로 올라섰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1910년~1920년대 풍부한 자원과 농축산업을 바탕으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던 아르헨티나. 남미의 꽃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아르헨티나는 페론주의와 같은 포퓰리즘 정치로 1인당 국민소득이 1999년 8,185달러에서 2002년에는 2,715달러로 3분의 1토막이 날 정도로 추락했다. 30회의 IMF 구제금융 신청과 국가 부도 선언만 8차례, 살인적인 물가 상승 등 만성적인 경제 위기의 탈출구가 지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잘 나가다 자빠진 나라로 일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일본은 한때 도쿄만 팔아도 미국 땅 4분의 3을 살 수 있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2000년에는 일본의 1인당 GDP가 3만 9,172달러로 미국(3만 6,137달러)보다 많았다. 24년이 흐른 2024년도 미국의 1인당 소득은 8만 6,601달러로 일본(3만 2,859달러)의 2배를 훌쩍 넘는 격차로 역전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닐 수 없다. 일본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2024디지털경쟁력순위에서 67개국 중 30위에 그쳤다. 한국 6위, 대만 9위와 비교되면서 일본 내에서 한탄이 쏟아졌다. 

이들 ‘선진국들’이 나락으로 미끄러지거나 극심한 침체기를 겪는 공통적인 원인은 첫째, 잘 나가는 전통적 산업 등에 기대어 변화와 혁신에 둔감해지면서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급격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경우다. 한때는 칭송의 대상이었던 대를 이어가며 한 우물만 파던 일본의 장인정신이 오히려 발목을 잡아 4차산업에서 뒤처진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둘째, 과도한 복지 등 방만한 재정지출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이다. 복지 정책이라는 것은 한번 도입하면 후퇴가 안 되는 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과도한 복지라는 악순환 늪에 빠지기 쉽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기본적으로 포퓰리즘 속성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으므로 에스컬레이터 하려는 복지 과잉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셋째, 기득권층들의 저항으로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기풍을 진작시키지 못하는 경우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왕족과 귀족계급이, 산업혁명 이후에는 부르주아 자본가나 지주 등이 기득권 세력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관료조직을 필두로 산업별로 전통산업집단, 의사와 같은 각종 직능‧이익집단, 노조 등이 변화에 저항하는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 위기설, 1%대 성장률, 내수침체, 미‧중 패권전쟁…곳곳에 빨간불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가 없다. 한국도 위기의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다. 남의 나라의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세등등 성장을 거듭하면서 부자나라로 진입한 선진국들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실업률로 그 나라에 속한 국민은 극도의 고통 속으로 던져질 수 있다. 한국은 명색이 선진국이라고는 하지만 국민행복지수가 146개국 중 늘 중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는 매년 놓치지 않고 있다. 출산율 또한 0.7명으로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등 고령화와 인구절벽의 위기가 예정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는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삼성 위기설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으며, 삼성의 위기는 곧 한국의 위기일 수 있기 때문에 심각하다. 당장 IMF가 2025년도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불확실성이 높다. 하방리스크가 더 높은 편"이라고 진단하면서 인구구조 변화 등 지속적인 성장률 저하 대응을 위해 ‘강력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대 성장'까지도 감안한다는 의미라는 전문가들의 해석이 뒤따랐다. 지난 11월 20일 아난드 IMF한국미션 단장은 "한국은 급속한 고령화, 기후변화 같은 사안으로 재정적 수요가 급증할 수 있어 미래 대비 차원에서 재정 여력 확보가 필요하다"라면서 “이를 위해 연금개혁, 재정준칙 도입, 지출 우선순위 조정 등 재정구조개혁이 진행돼야 한다.”라고 했다. 부가가치세 면세 부분 재검토, 개인소득에 대한 추가 과세 등을 통해 세수의 추가 확충방안을 찾아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놨다.

한국이 구조적으로 꼬여 가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 한국을 성장시킨 기회 요인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때 한국의 앞선 기술력과 한류열풍을 앞세워 거대한 시장의 앞마당 같은 역할을 했던 중국은 어느덧 우리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어 있다. 조선업 가치사슬 종합경쟁력 1위를 내주었으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도 앞자리를 내어 주었다. 공산당 일당이 지배하는 중국은 원가(原價)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기술 패권, 시장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저가로 제품들을 밀어내면서 시장을 교란하는데, 한국의 산업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중 무역기술전쟁으로 그나마 틈새로 남아 있던 반도체, 중간재, 기계류 수출도 어려워지고 있다.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이제는 한국의 라이벌이 된 중국을 향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엄청난 관세와 디커플링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시간을 벌 기회가 생기지만 지금 당장 수출 규모가 축소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얼어붙은 내수시장도 큰 문제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수출산업에서 파생된 온기가 내수시장에 전달되지 않는 등 국민 체감경기는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자영업도 어느 때보다 상황이 안 좋고 1,913조8천억 원으로 2002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를 기록한 가계부채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크다. 물론 GDP 대비 가계대출 비율은 2022년 들어 18년 만에 하락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90%를 넘기고 있어 소비 여력이 악화할 수 있는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실종된 정치리더십, 개혁 방해의 정치권과 관료조직, 의사‧노조 등 이익집단

제대로 된 정치 리더십과 창조적 파괴와 혁신만 있으면 내외 환경이 어렵더라도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정치 리더십은 실종되고 비대면 원격진료를 가로막는 의사집단, 온갖 특권 위에 군림하는 국회, 각종 규제를 생산해내는 관료집단과 정치권, 정부 부처 간 밥그릇 싸움과 마피아 집단화한 특정 직군별 장벽, 그리고 사회적 약자였다가 이제는 기득권 집단화한 공공 및 대기업 노조들과 같은 기득권 집단들이 개혁과 혁신에 저항하면서 한국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1990년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20여 년 넘게 지구촌 전체가 개방된 자유무역체제로 움직이던 국제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더욱 노골적으로 자국 중심주의로 흐르고 ‘중국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경제 성장의 상징이라 할 삼성에 위기가 닥친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음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변화와 혁신을 하지 않으면 경제적 번영은 고사하고 생존마저 위협받는 게 동서고금에 통용되는 국제정세의 냉엄한 현실이다. 국제정세가 이렇듯 엄중함에도 우리 정치권은 국가이익과 국제정세에는 나 몰라라 한 채 오직 이전투구와 사색 당쟁으로 날을 새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진제공 = 정호성
ⓒ사진제공 = 정호성

 

 

정호성은…

프로야구단 히어로즈 대외협력본부장과 이준열사순국백주년사업회에서 사무총장을 거쳐 국회의원 수석보좌관, 서울시부시장 정무특보를 역임하고 서울메트로환경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알앤비리서치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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