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호성 알앤비리서치 연구소장]
왜 북한은 남한보다 60배는 못 사는가?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2023년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6조 2000억 원으로 남한(2162조억 원)의 1.7% 수준이고 기대수명의 차이는 여자는 7.3년, 남자는 8년이나 짧다. 동일한 조건에서 출발한 나라가 이렇듯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많이 통용되는 인식들을 살펴보자. 우선, 정치인들의 정치적 표현이나 말하기 좋은 ‘방송용 표현’으로 우리나라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국민의 노력과 헌신, 피와 땀으로 이룬 것”이라는 모범답안이 있다. 앙꼬 없는 찐빵처럼 애매하고 두루뭉술하다. 여기에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식들은 교육시키고야 말겠다는 높은 교육열과 교육수준, 여기에 근면ㆍ성실한 국민정신과 풍부하고 값싼 양질의 노동력이 경제번영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주장이 1965년 이뤄진 대일청구권에 따른 유무상 차관과 70년대의 베트남전쟁, 중동 건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벌어들인 외화가 경제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다. 초기 자본형성 없이 성장 모멘텀을 잡을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이 또한 맞는 말이다.
물론 남한 사회는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민중의 희생과 착취 위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빨치산 출신 박현채의 ‘민족경제론’과 같은 과격한 주장도 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유행하였던 종속이론에 근거, 남한을 미국에 예속된 ‘신식민지 종속 국가’라고 규정하고 여기에서 해방된 민족자립경제를 목표로 내세웠다. 반면 북한은 민족자립경제라는 방향을 추구했지만, 미국의 방해와 봉쇄정책으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변호한다.
70~80년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대학가를 풍미한 박현채류의 종속이론과 민족자립경제론을 제외하면,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논리들은 모두 일리 있는 주장들로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보편타당성을 지녔다거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하물며 남북한의 심대한 격차를 설명할 수가 없다.
북한도 국민 보편교육과 근면ㆍ성실한 국민성과 양질의 노동력을 갖추었으며 남한보다 더 많은 시간 죽어라 일을 하였음에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또 ‘민주기지 강화’란 명목의 막대한 공산권 원조를 받았다. 북한이 밝히고 있지 않지만, 1950년대 소련으로부터 무상원조 13억 루블,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등 공산권으로부터 전문 인력 파견 등 각종 지원과 1차분 9억 루블을 받았다. 중국도 소련과 비슷한 금액의 원조를 했으며 전후복구를 위해 공장을 지어주고 대규모 조선족 노동력도 파견했다. 남한에 비해 월등히 큰 규모의 자본형성 종잣돈을 확보한 셈이다.
도대체 천오백 년 이상 하나의 언어, 역사, 지리, 문화를 가진 단일 민족에 높은 교육열과 근면한 국민성이라는 동일한 조건에서, 그리고 방식은 다르지만 초기 자본축적에서 남한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한 북한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가난한 나라가 되고 다른 한 나라는 세계적인 경제부국을 이루었다는 말인가?
이제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3인들의 주장을 들어볼 차례다.
이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지리환경, 민족의 문화, 국민 보편교육, 국민의 근면성 등이 국가 간 불평등과 경제적 성공 여부를 가른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한국이 확실한 증거라고 주장하면서 “남북한의 운명을 가른 것은 1945년 두 사회가 수립한 경위가 달라서”라고 단언한다.
남과 북에서 다른 게 있다면 이들 수상자들의 주장처럼 소수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한 ‘착취적 정치경제 체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포용적 정치체계’라는 제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이들은 “남한은 1963년 박정희가 집권했을 때만 해도 착취적 성향의 정치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런 속에서도 꽤 포용적이었으며 북한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졌다. 한국에서 경제성장이 지속된 것은 1980년대 포용적 정치제도로 이행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들 수상자들의 이론에 따르면,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30여 년간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제도가 정착되면서 한국은 발전의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아울러 사유재산과 광범위한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포용적 제도를 그 안에 품고 있었고, 그런 게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부유한 나라로의 이행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출주도형 산업 형성이 포용적 제도 도입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지적한다. 세계 시장과 경쟁을 하여야 하므로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표준을 받아들여야 했고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포용적 제도가 형성된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석유 등 자원 부국이나 내수형 자립경제를 채택한 나라는 소수 지배 권력이 이익을 독점하려는 착취형으로 흘러갔다고 보고 있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선 중앙집권적 제도이고, 후 포용적 제도로의 이행이다. 이들이 말하는 중앙집권적 제도는 네이션 빌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6‧25 전쟁으로 사실상 국가체계가 붕괴되었기 때문에 네이션 빌딩이 선결 과제였으며, 토지개혁과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박정희가 이를 이루어 냈다는 해석으로 연결된다. 정리하자면, 박정희식 중앙집권적 제도가 착취적 성격이 있었지만, 그 속에 포용적 제도의 맹아를 품은 네이션 빌딩을 이룬 토대 위에 다원주의라는 포용적 정치경제체제가 꽃을 피웠다는 주장인 것이다.
반면, 북한은 사유재산권 확립, 개혁ㆍ개방과 같은 창조적 파괴나 혁신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아예 봉쇄, 박멸해 왔다. 개혁ㆍ개방이 경제 발전을 가져오고 인민들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음에도 자신들의 기득권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착취적 제도의 나라들에서 단순히 구조적으로 경제성장에 뒤처지는 차원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개혁ㆍ개방과 혁신은 물론 기술 발전까지 방해하는 사례를 많이 들고 있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서 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역사에 가정은 소용없는 일이지만, 60년~70년대에 박정희가 집권하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토대로 중화학공업, 수출주도형 경제정책을 펼치지 않고 민주당의 장면이나 김대중이 정권을 잡아 남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처럼 민족경제론 등에 입각한 대중경제론 같은 정책이 펼쳐졌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온데간데없었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주장이라고 해서 무오류일 수는 없다. 각 정치세력 간의 투쟁 결과가 포용적 제도와 착취적 제도로의 이행을 가른다는 주장만 있을 뿐, 이들의 이론에는 지도자의 역할은 없다. 정치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그 제도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어 헤맬 수 있다는 점은, 이론과 법칙의 영역이 아니어서인지 언급이 없다. 또 하나. 포용적 제도를 도입한 나라 중에서도, 선진국의 문턱을 넘지 섰다가 다시 거꾸러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사회 전체가 완숙 단계에 들어서면서 활력을 잃고 늙어가는 나라는 얼마든지 있다는 점도 설명이 없다.
세계 질서의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는 정치세력 간의 팽팽한 세력 균형으로, 그리고 거대한 관료집단과 공공부분, 부자노조들, 의사들과 같은 이익집단의 기득권 카르텔 형성으로 창조적 파괴나 혁신을 살릴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혁신을 바탕으로 한 성장은 필연적으로 기득권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한국에서 재현될지 말라는 법이 없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호성은…
프로야구단 히어로즈 대외협력본부장과 이준열사순국백주년사업회에서 사무총장을 거쳐 국회의원 수석보좌관, 서울시부시장 정무특보를 역임하고 서울메트로환경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알앤비리서치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