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호성 알앤비리서치 연구소장]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국내 여론이 뜨거웠다. 노벨상 수상이 우리 국민에겐 염원이거니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던 까닭에 한 작가의 수상 작품에서의 표현과 시각과 관점에 관한 논쟁은 묻히고 있다.
국내에서 한강 작가가 이슈의 중심에 있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이 대한민국을 더 큰 세계적인 이슈 국가로 주목받게 했다. ‘노벨경제학상의 주인공은 사실상 한국’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무슨 까닭일까?
어떻게 하여 어떤 나라는 잘살고 또 어떤 나라는 못살까? 해묵은 논쟁에 결정적인 획을 그을 논점을 제시한 석학들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이들이 가장 대표적인 비교 사례로 든 것이 한국과 북한이었기 때문이다. 자연과학과 달리 비교 실험을 할 수 없는 사회과학이라는 조건에서 남한과 북한은 이들의 이론을 검증하는 최적의 사례가 됐던 것이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제임스 A. 로빈슨과 사이먼 존슨, 대런 애쓰모글루이다. 이들은 공동의 논문으로 노벨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는데 이들의 주장을 세계사적인 수많은 사례와 치밀한 논리로 대중적으로 풀어 쓴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가 지난해 10월 국내에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국가의 성공과 실패라는 사회과학의 영원한 숙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정치학자나 경제학자가 씨름을 해왔다. 지금까지는 지리환경의 차이가 나라마다 빈부를 갈랐다는 가설이 있었고 또 인종별로 선천적인 능력과 국민교육의 차이, 그리고 문명 발달의 수준이 부국과 빈국을 갈랐다는 가설이 중심에 있었다.
전자는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이다. 후자는 우리 한민족, 유대민족, 독일 게르만족이 우수한 민족성 덕분에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는 설로 이미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고등학교 교육 이수율이 높을수록 선진국에 진입하는 나라가 많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막스 베버와 같이 이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번영을 이끈다고 주장했다.
이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크게 평가받는 이유는 기존의 학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화두를 던졌다는 데에 기인한다.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인 이들 3인은 나라의 문명과 빈부의 격차를 ‘정치 및 경제 제도’라는 틀로 설명하고 있다.
국가 간의 불평등은 어떻게 생기는가? 이들은 왜 어떤 나라는 높은 경제력을, 어떤 나라는 낮은 경제력 갖는지에 대해 지리적 위치의 가설, 문화적 요인의 가설, 무지 가설 등을 비판하면서 국가 간 불평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 및 경제 제도라고 역설하고 있다.
2001년 역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에커로프는 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견해가 230년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비견되는 통찰력이라면서 다시 200여년 후에는 우리의 손자들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고 있을 것이라는 말로 이들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들 수상자들은 지구상 나라들이 부국과 빈국으로 나뉘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반이론으로 ‘제도적 차이’를 제시하는데,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를 가르는 것은 두 가지 조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지구상의 나라들을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나라로 분류하고 모든 부국은 포용적 제도라는 경로를 따르는 나라라고 설명한다.
부국으로 가는 길에서 우선 ‘중앙집권화된 정치 및 경제 제도’는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국에 진입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중앙집권화가 거의 안 된 나라, 정부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정부가 제 기능을 아예 못하는 나라는 성장이나 선순환 구조를 위한 결정적인 모멘텀 조차 끌어내기 어렵다. 네이션 빌딩조차 안된 나라는 부국으로 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앙집권화된 제도라는 바탕 위에 ‘포용적인 정치 및 경제 제도’가 충분조건으로 제시된다.
물론 중앙집권 정부의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나 혁명이나 독립 이후 중앙집권화에 성공하여 착취적 제도 아래 급속한 경제성장을 경험한 나라들도 많다. 하지만 중앙집권화 돼 있거나 여기에 더해 자원 부국인 경우, 일정 정도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지만, 착취적 제도하에서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로 이행하지 않고 권위주의적이고 착취적인 환경에서는 더이상 경제적 번영이 지속되지 못하고 선진국 문턱에서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회의 다양한 요소가 정치에 참여하는 다원주의, 개인의 소유권과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시장경제체제와 여기로부터 비롯되는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포용적 정치 및 경제 제도를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경제적 번영을 구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50년~60년대 소련은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지만, 착취적인 정치제도 하에서는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의 급속성장도 한때나마 포용적 제도를 도입한 덕분이지만 본질에서 착취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들은 동일한 지리, 역사, 문화, 언어를 가졌음에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으로 나뉘어진 노갈레스라는 도시,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의 남북한과 동서로 나뉜 과거 서독과 동독을 매우 비슷한 문화, 기후,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치 및 경제 제도의 차이로 경제 수준과 삶의 질의 격차가 발생하는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극명한 예는 남한과 북한이다. 자연과학에서는 변수들을 통제해 가설을 증명하고 법칙을 밝히는데, 남한과 북한은 이런 인위적인 변수들의 통제가 필요 없는 사회과학적 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48년 정치 및 경제 제도가 갈라지기 전까지 남한과 북한은 지리, 역사, 문화, 언어, 민족 등 다른 모든 조건이 거의 동일했다. (남북한 비교분석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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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성은…
프로야구단 히어로즈 대외협력본부장과 이준열사순국백주년사업회에서 사무총장을 거쳐 국회의원 수석보좌관, 서울시부시장 정무특보를 역임하고 서울메트로환경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재는 <알앤비리서치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