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방송에서 손 떼야 vs 민주당의 방송 장악 전략…평행선 달리는 방송 4법 [거부법안 돌아보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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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방송에서 손 떼야 vs 민주당의 방송 장악 전략…평행선 달리는 방송 4법 [거부법안 돌아보기②]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8.15 0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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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 영향력 축소하자는 의도…문재인 정부서 공약 파기했던 과거가 발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노조법 2·3조, 방송법 쟁취 노동시민사회단체 도심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들이 노조법 2·3조, 방송법 쟁취 노동시민사회단체 도심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상대로입니다. 제22대 총선 결과를 본 모든 사람이 예견했던 것처럼, 비토크라시(vetocracy)가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비토크라시란 미국 스탠퍼드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미국 양당 정치를 비판하며 만든 용어로, 상대 정파의 주장이라면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 파당 정치를 의미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비토크라시가 ‘야당의 입법독주-대통령의 거부권’ 형태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주요 법안을 밀어붙이고,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활용해 법안을 무효화하는 행태가 반복됩니다. 국회 내에서도, 국회와 행정부 사이에서도 조정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늘 강조하듯, 이 같은 극단적 갈등의 피해자는 국민입니다. ‘밀어붙이기’와 ‘거부권’이 오가는 무의미한 시간 속에, 정작 민생에 필요한 법안들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방 소멸을 넘어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의 위기가 닥쳐오는데도, 눈앞의 권력을 향한 탐욕에 우리 정치권은 파멸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정신 나간 질주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국민뿐입니다.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 시절에도 손대지 않았던 법안들을 충분한 검토 없이 ‘일단 내밀고 보는’ 야당이나, 야당의 말이라면 비난부터 하고 보는 정부여당 모두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가 바뀌고, 대한민국이 바뀝니다.

이에 <시사오늘>은 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시키고,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야당 지지자는 무조건 윤 대통령을 욕하고, 여당 지지자는 무조건 야당을 욕하는 이 공멸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선 먼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본 기획이 정치 복원의 작은 단초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일명 ‘방송 4법’


야당 입장
“현행법으론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영향력 못 막아”
“정치권 영향력 줄이고 언론계 이사선임권 늘려야”

방송 4법은 이른바 ‘방송 3법’으로 불리는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칭합니다. 무슨 법안이 이렇게 많나 싶으실 테지만, 사실 방송 4법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정치권은 공영방송 운영에서 손 떼라’는 거죠.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은 각각 KBS(한국방송)와 MBC(문화방송), EBS(교육방송)의 지배구조를 결정합니다. 쉽게 말해서 방송 3법은 KBS·MBC·EBS를 누가 경영할지를 정하고 있는 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현행 방송 3법으로는 정부여당이 KBS·MBC·EBS 경영에 개입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게 야당의 주장입니다.

현행법상 KBS 이사는 방통위가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고,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와 EBS 이사는 방통위가 직접 임명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실상 방통위가 KBS와 MBC, EBS 이사 선임권을 갖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KBS와 MBC, EBS에는 방통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합니다.

그런데 또 방통위에는 정부여당의 영향력이 강하게 미칩니다. 방통위는 총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요. 5명 중 2명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다른 1명은 여당이 추천합니다. 야당은 2명에 대한 추천권을 갖습니다. 정리하면, 방통위 위원 5명 중 3명에 대한 임명·추천권을 정부여당이 갖는다는 뜻입니다.

정부여당이 추천하는 위원들이 방통위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이들이 KBS·MBC·EBS 이사의 임명권을 갖는다는 건 결국 정부여당이 간접적으로나마 KBS·MBC·EBS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가 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경영진이 물갈이되고, 어김없이 ‘낙하산’ 논란에 휩싸이는 건 이런 이유죠.

야당은 바로 이런 구조를 바꿔야 공영방송이 정치적 중립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야당은 이사 추천권을 국회(5명), 시청자위원회(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6명), 방송기자연합회(2명), 한국PD연합회(2명),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2명) 등으로 분산시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게 바로 방송 3법 개정안입니다.

아울러 야당은 방통위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지금은 5명의 위원 중 2명만 있어도 주요 사안을 의결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2명만으로도 방통위가 굴러가는 거죠. 방송 4법 중 하나인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은 이 부분을 고쳐서 5명의 위원 중 4명 이상이 있어야 의결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내용입니다. 방송 3법이든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이든 ‘정부여당 맘대로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는 건 좌시하지 않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정부여당 입장
“문재인 전 대통령, 방송법 처리 반대…그야말로 내로남불”
“민주노총, 방송 4법 통과 촉구 집회…정말 공정한 법인가”

이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대 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니, 그렇게 좋은 거면 문재인 정부 때 하지 그랬어요?’라는 겁니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내걸었습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서 정권이 언론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방안을 입법을 통해서 강구하겠다”고 약속했죠.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얼마 안 가 입장을 바꿨습니다. “만약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어느 쪽에서도 비토를 받지 않은 사람이 선임되지 않겠는가.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이건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약속과 배치되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소신 있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앉히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이후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내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방송법 개정 이야기를 꺼낸 건 2002년 3월 대선에서 패배한 뒤였죠. 때문에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방송법 개정 요구가 정말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위한 건지, 아니면 민주당의 이익을 위한 건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이 방송법 개정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사 추천권이 언론계에 너무 쏠려있다는 겁니다. 몇몇 보수 언론을 제외하면 언론계는 기본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하고, 또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크다는 게 정부여당의 시각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언론계에 다수의 이사 추천권을 주자는 건 민주당이 영구적으로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8월 10일 민주노총은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8·15 범국민대회’를 열고 방송 4법의 즉각 공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그것 봐라. 민주노총이 즉각 공포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 정도로 방송 4법은 민주노총, 나아가 민주당에게 유리한 법안 아니냐’라고 말할 명분이 생긴 거죠.

공영방송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방송이니만큼 정치권이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는 바꾸는 게 옳을 겁니다. 다만 개정의 방향이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특정 정파를 위한 쪽이라는 의심이 있을 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려야 ‘진정한 방송 개혁’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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