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여자들이 일어난 시각은 11시 50분이었다. 여자들은 일제히 커피를 한 잔씩 타서 마시고는 “갑시다” 하면서, 구 여사가 ‘낑’ 하고 일어나니 모두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독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무척 궁금했지만 누구한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원래 나와 같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 구 여사도 얼마나 거만하게 구는지 그 여자와 같이 일한 지 10일째 되지만 한 번도 사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지 못했다.
구 여사는 여자 화장실을, 나는 남자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맨 처음 가르쳐 줄 때도 얼마나 땍땍거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내가 한 2년만 젊었어도 “구 여사, 좀 친절하게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싫은 소리를 할 뻔했지만 나이가 많은 탓에 꿀꺽 참았다.
구 여사는 돈도 잘 썼다. 어느 날은 아들 준다며, 세일 가격으로 각각 10만 원짜리 운동복 한 벌과 운동화를 사와서는 직원이라서 30%로 싸게 샀다며 여자 미화원들 앞에 앉아 으스대고는 했다. 그것도 아예 순옥과 몇 여자들 하고만 상대할 뿐 나와 재순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재순의 말로는 순옥이 오기 전까지는 구 여사와 재순이 제일 가까운 사이였다고 했다. 또한 며칠 전 구 여사와 순옥과의 대화 가운데, 우연히 들은 얘긴데 구 여사는 이곳에 오기 전 어떤 산부인과 병원에서 17년 동안 청소 일을 했다고 한다.
퇴직금도 한 푼 못 받고, 4대 보험 처리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쫓겨났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곳 백화점에서 일한 지도 10년이 넘는다니 꽃다운 30대 나이부터 청소 일로 한평생을 보내고 있는 셈이 된다.
한편으로 오늘따라 구 여사의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려와 속으로 욕하고 있는 것에 그만 웃음도 났다. 옛 속담에 ‘한 잔 술에 눈물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고사떡 한 쪼가리조차 못 얻어먹은 분풀이를 구 여사에게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내 청소 일을 하면서 혼자 웃고 혼자 화냈다. 그것도 혼자 마음속으로….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