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오후 7시 30분까지 일터로 나갔다.
미화원 방은 남자 방과 여자 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자 방은 꽤나 넓었고 방바닥도 알맞게 온도가 맞춰져 있었다. 낮 근무 조 여자들이 퇴근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보다는 젊은 여자들이다. 옷을 갈아입느라 후다닥-퉁탕 하면서 소리를 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목소리가 큰 여자가 있었다.
“어머. 저 언니 오늘 처음 왔나 봐, 그렀지 언니?”
붙임이 좋았다. 얼굴도 복성스럽고 잘생긴 생김새다. 서울 말씨다. 방안이 좁은 편은 아니지만 한꺼번에 10여 명의 여자들이 우글거리니 나는 대답도 할 상황이 아니어서 한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낮 근무 조 여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니, 이제 진짜 야간조 여자들만 남게 되었다.
“언니는 이 칸을 쓰면 돼요.”
약간 언청이인 한 여자가 내 몫의 라커 문을 열어줬다. 그 칸에는 작업복이 걸려있었다. 나도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다른 여자들도 그랬다. 내 또래의 여자가 4명, 나머지 3명의 여자들은 50대인 것 같다.
8시가 되자 여자들은 모두 9층서부터 지하 2층까지 화장실 쓰레기를 수거했다, 선임자가 가르쳐 주는 대로 화장실의 쓰레기를 걷었다. 지하 6층 분리수거장에 놓고 방으로 오니 8시 반이다. 여자들은 모두 방바닥에 누워 버렸다.
나도 따라 누웠다. 워낙에 추위를 타는 나는 따뜻한 바닥을 찾았다. 그때 옆방 남자 방에서 “구 여사 나 커피 한잔 줘”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그 목소리가 감독의 목소리란 것을 알았다.
“네”라는 목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난 여자는 방금까지 코를 골면서 깊은 잠을 자는 듯이 보였던 약간 언청이인 듯한 구 여사다. 그녀는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는 봉지로 살살 저으면서 감독 방으로 갖다 주고는 왔다. 그런 뒤 이번에는 “반장님도 타 다 드려야지 히히” 하면서 또다시 커피 한 잔을 탔다.
“언니 감독님 뭐 하셔?”
하고 묻는 이는 구 여사 옆에서 곤하게 자는듯했던 순옥이란 여자다. “언니들 커피 한 잔씩 하세요”라는 구 여사의 말과 동시에 자는 듯하던 모든 여자들이 일시에 일어나더니 커피를 한 잔씩 들고 훌쩍 거리며 마셔댔다.
나도 따라서 일어나기는 했으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커피를 끊은 지 14년은 된 듯하다. 스물두 살 때부터 하루에 블랙커피를 다섯 여섯 잔씩 마셨지만 쉰두 살이 되던 가을부터는 ‘위’에서 커피를 거부했다. 소화가 안 될 때 병원을 찾으면 의사의 당부가 커피를 삼가라는 거였다. 그 후로는 커피를 결단코 끊었다.
커피를 안 마신다고 말하자 “얼레. 요즘 커피 안 먹는 사람도 다 있네”라면서 구 여사는 ‘히히’ 거렸다. 나는 그러한 언사가 몹시 귀에 거슬렸지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커피를 모두 마신 여자들이 다시 방바닥에 누워 제자리를 찾아 누웠다.
그때 내 옆에 바싹 붙은 ‘재순’이란 여자가 다가왔다. 내 귀에 대고는 “언니 못 들은 척해”라면서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꾹 찔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이 모두 코까지 골아가며 깊이 잠든 듯하자, 옆의 재순이 다시금 내 귀에 바싹 입을 대고는 속삭이는데 그 말은 대강 이랬다.
이곳에서 제일 오래 근무하고 있는 여자는 구 여사다. 다음이 ‘경숙’ 이라는 여자, 그 뒤가 ‘길자’, ‘영심’이고, 또 그다음이 자신인 ‘재순’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이 이제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순옥’ 이란 여잔데, 요즘 감독한테 심히 꼬리를 친다는 얘기였다.
‘재순’ 의 그 같은 말속에는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는 듯이 들렸다. 되돌려 말하자면 ‘순옥’ 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재순’이 감독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다 ‘순옥’ 이 들어오면서 ‘재순’과 감독 사이를 훼방 놓고 있다는 얘기였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순옥’이 오기 전까지 ‘재순’ 과 감독과의 관계는 지극히 비밀스럽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순옥’ 의 발칙한 행동이 그 모든 관계를 일시에 무너트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결과 ‘재순’은 몸 둘 바를 모르게 됐고, 오직 ‘순옥’ 에 대한 원망으로 복장이 터지게 생겼다는 고백인 셈이었다. 나야 이미 먼저 일터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봐온 터라 놀라울 얘기도 아니었다.
‘재순’ 은 어떻게든지 ‘순옥’을 내쫓을 궁리에만 몰두할 뿐 감독에 대한 증오심은 없는 듯했다. (계속)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