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내려도 제품 가격 상승…마진만 챙겨
생활물가 OECD 1.6배…“유통구조 때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먹고사는 게 힘든 요즘입니다. 물가가 아무리 올랐다지만, 사과 하나도 살까 말까 고민하며 ‘먹는 것까지 이렇게 아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현실에 ‘나만 이렇게 먹고살기 힘든가’ 싶다면, 아마 맞을지도 모릅니다. 정확히는 ‘우리’가 그렇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우리나라 의식주 관련 필수 생활물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60%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특히, 사과·돼지고기·소고기 등 음식과 티셔츠·원피스 등 옷 가격은 OECD 중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비쌌습니다.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식료품가격은 OECD 평균과 비교했을 때 1990년 1.2배에서 지난해 1.6배로 확대됐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물가 현실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 심각한 수준인 겁니다.
대한민국 의식주 물가, 왜 이렇게 비쌀까요. 기업들은 대부분 ‘원가 상승’을 이유로 꼽습니다. 이상 기후와 전쟁으로 인한 원재료 가격 인상, 환율 변동에 인건비 상승 등. 원가를 끌어올릴 변수는 너무도 많고, 손해 보는 장사는 할 수 없으니 기업들도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기업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이윤 추구’니까요. 그런데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원가가 상승하면 제품 가격이 오른다’라는 명제가 참이 되려면, 원가가 하락했을 땐 제품 가격도 내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원가가 내려도 가격은 안 내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2022년 9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주요 식품 29개 원재료 가격 등락률을 비교, 8개 품목이 원재료 가격이 내렸는데도 소비자 가격은 올랐다는 결과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마요네즈와 식용유는 1년 새 원재룟값이 각각 22%, 2.5% 하락했는데도 소비자물가지수는 26%, 10.3% 올랐고, 밀가루도 원재료가 19.8% 떨어졌지만 소비자물가지수는 되레 6.9% 올랐습니다. 식용유와 밀가루의 경우 출고가가 11% 올라 소비자 가격을 견인했습니다. 우유는 원재료가 3.1% 오를 때 소비자물가지수가 8.5% 올랐고, 출고가 상승률은 13.5%에 달했습니다. 이는 우윳값 상승 주요 원인인 원유 가격이 오르기 이전 수치입니다. 결국 원가에 비해 기업들이 마진을 많이 챙긴단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한국은행도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비싼 국내 생활물가의 한 원인으로 유통 문제를 끄집어낸 겁니다. 한은 측은 ‘유통구조’ 등 구조적인 문제 탓에 통화정책으로는 물가를 낮추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과로 예를 들어봅시다. 올 초 국내 사과 한 개 값이 비싸면 2만 원대까지 오르면서 ‘금사과’ 논란을 빚었죠. 당시 농가에선 이상기후로 인해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실 유통마진이 과도하게 높았습니다. 유통구조도 복잡했습니다. 소비자로 넘어오기까지 여러 중간마진들이 발생하면서 사과 한 개 가격의 60%가 ‘유통마진’으로 이뤄진 게 드러난 겁니다.
과일 도매가는 도매시장에서 경매로 결정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사과 10kg 도매가는 9만5000원이었습니다. 전년(4만3620원)과 비교하면 116% ‘폭등’했습니다. 사과 생산량이 전년보다 30% 가량 줄자 도매상들이 경매가를 확 올린 겁니다. 여기에 여러 중간 도매인의 손을 거치면서 소비자 식탁에 가기까지 가격은 계속 붙습니다. 정부는 그 마진의 규모가 62.6%(2022년 기준)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사과 한 개가 만 원이었다면, 6000원이 유통마진이었던 겁니다. 이를 조금 다르게 보면 생산자인 농가보다 중간 유통자들이 더 높은 이익을 챙기는 구조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올 초부터 긴급 가격안정 대책을 이어오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어 보입니다. 지난달 체감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는 전년보다 2.8% 상승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7% 뛰어올랐고요. 특히 배와 사과 가격은 각각 139.6%, 63.1% 올라 높은 상승세가 지속됐습니다. 이미 비싼 가격에 그 상승률까지 높은 상황입니다.
구조 개선이 최우선입니다. 유통 관계자들 눈치보느라 구조 개선은 차일피일 미루고 단순 가격 통제만으로 ‘대국민 가스라이팅’하는 방법은 오래 못 갑니다. 유통 공급 채널을 늘리든 농가 생산성을 높이든, 비정상적으로 높은 유통마진을 어떻게든 잡아야 합니다. 좀 더 먹고살 만한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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