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부터 단단한 일본車…토요타, 세계 1위 이유 있었다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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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부터 단단한 일본車…토요타, 세계 1위 이유 있었다 [르포]
  • 장대한 기자
  • 승인 2023.10.30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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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 가보니…일본차 태동기 한 눈에
토요타車 창업자 키이치로 업적 기려…인본주의 철학 체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일본 아이치현/장대한 기자]

지난 24일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을 방문한 가운데, 미야코 요리야스 부관장이 전시물 설명을 해주는 모습.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2023 일본 모빌리티쇼' 프레스데이 행사가 열리기 직전 날인 10월 24일, 한국자동차전문기자협회는 일본 자동차 시장의 뿌리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치현 토요타시에 조성된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 방문을 통해서다.

사족을 달면, 기념관이 있는 토요타시의 원래 행정구역 명칭은 코로모시였다고 한다. 토요타라는 기업이 지역 및 국가 경제를 먹여살리다시피 하니 그 이름을 아예 토요타시로 바꿔준 것이다. 우리로 치면, 현대자동차시가 있는 셈이다. 일본의 토요타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토요타시 안에는 토요타자동차 창업자인 토요타 키이치로의 업적과 발자취를 되새길 수 있는 쿠라가이케 기념관이 자리한다. 지난 1974년 토요타 누적생산 1000만 대 달성을 기념해 준공됐는데, 단순 전시관만 있는게 아니라 키이치로 창업자가 생전에 살았던 저택도 있다. 나고야시 교외에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와 지은 것으로, 그 정성이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방직기가 자동차로…인본주의 기치에 둔 국산화 열망


미야코 요리야스 부관장이 디오라마 장면에 대해 설명해주는 모습. 키이치로 토요타자동차 창업자는 밤마다 기술자들과 함께 미국 쉐보레 자동차를 분해·조사하며 차량 기술을 익혔다.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기념관에선 미야코 요리야스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 부관장의 안내를 받았다. 그의 눈은 이국땅에서 건너온 기자들에게 토요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었는지 시종일관 반짝였다.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가던 그의 이마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손수건으로 땀을 연신 훔쳐야 할 정도였다.

특히 미야코 부관장은 전시관 초입에 놓인 방직기 2대를 무척이나 중요시했다. 토요타자동차의 시작점일 뿐만 경영철학이 녹아있다는 이유에서다. 창업자의 아버지인 토요타 사키치는 직기를 국산화해 일본의 기계산업 근대화를 이끌었고, 그의 정신은 아들인 키이치로로 계승돼 자동차의 국산화로 이어졌다.

발명을 통해 단순히 생산 효율을 높일 뿐 아니라,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고 낭비를 없애 부가가치까지 높이려 한 토요타 가문의 노력은 현재 토요타의 고객 중심 및 저스트 인 타임(적기 생산) 경영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장인 정신에 기반한 물건 만들기) 또한 생생히 엿볼 수 있다.

전시관 내부에는 수많은 사료와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토요타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을 축소 모형으로 제작한 디오라마는 창업 초기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해당 디오라마는 토요타 키이치로가 방직회사 업무를 끝마친 밤이면 항시 기술자들을 불러모아 쉐보레 자동차를 직접 분해해 그 구조와 구동 원리를 익혔던 모습으로 시작한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던 실린더 블록 주조 과정에서의 힘겨웠던 장면, 첫 모델 탄생 후 시내 테스트 장면, 고장난 고객 차량 수리를 위해 직접 발로 뛰는 장면 등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실물 차량도 전시했다. 1936년 출시된 토요타 최초의 양산 승용차 AA형 모델부터 1955년 국산 승용차 붐을 일으킨 토요펫 크라운 등의 실물 차량 등은 지금 내놔도 디자인적으로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구풍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이다.

토요타 본사 공장인 코로모 공장도 축소 모형으로 전시돼 있다. 옛날 시대였음에도 효율적으로 연결된 공장 시설들과 함께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복지를 위한 학교와 백화점, 기숙사, 사택, 병원 등 모든 것을 구비한 점은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1936년 출시된 토요타 최초의 양산 승용차 AA형 세단의 모습.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불가능을 현실로 이끄는 ‘창업가 정신’…후대에 큰 울림


토요타 키이치로 창업자의 도전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전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도전에 나서 결국엔 당당히 성공의 결실을 거두기 때문이다. 

일본 자국산 자동차를 만들어 낸 키이치로는 1937년 이같이 말했다. "일본에서 과연 대중적인 차가 생길까? 3년 전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했고, 자동차 부문에선 더욱 심했다. 하지만 나는 외부 환경에 휘둘릴 수 없었다. 자동차 공업이 일어설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미야코 요리야스 기념관 부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키이치로는 자동차 개발 초기에 자금줄이었던 아버지의 토요타 방직회사 직원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고 한다. 방직회사 수익을 적자 사업인 자동차 부문에 쏟는 것이 못마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국산화를 위한 노력과 집념은 결국 토요타자동차의 설립을, 나아가 세계 굴지의 회사로 거듭날 수 있는 터전과 자양분을 제공했다이제는 전세계에 연간 1000만 대를 파는 회사로 거듭났다. 지난해 판매량은 1048만 대로, 단연 글로벌 1위다. 

토요타의 태동기와 비약적인 성장에 주춧돌을 놓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 현대자동차를 만든 '왕회장' 정주영 선대회장이 오버랩됐다. 국내에선 '포니의 시간'이란 전시회를 통해 작게나마 정주영의 업적을 기린 바 있다. 물론 이번에 방문한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처럼 한국에도 자동차 태동기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사료적 가치를 모두 지닌 공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게 됐다.

토요타 쿠라가이케 기념관 전경. ⓒ 시사오늘 장대한 기자

 

담당업무 : 산업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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