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결실의 계절
정령 수확의 계절이런가. 자연의 순환은 빛과 같이 빠르다. 모처럼 내려간 시골 마을엔 온통 가을이 내려앉아 벼 타작이 한창이다. 일 년 동안 일군 농사가 결실을 이루니 농부들은 일손이 바쁘다. 거기다 들깨, 콩타작까지 쉴 틈이 없다.
다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산야 풍경은 단풍이 들고 아름다우나 시골 동네엔 사람의 흔적이 사라져간다. 한번식 내려갈 때마다 농촌의 풍경 못지않게 변화가 있는 게 나이 든 어르신들의 생사가 바뀐 것이다. 한 달 새 또 두 어르신이 유명을 달리했다.
인생무상
맨 뒤 집에는 수십 년 동안 팔순의 부부가 기거를 하면서 농사를 짓고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우리랑 왕래를 하면서 텃밭에서 가꾼 야채를 나눠준 인심 좋은 어르신 부부였다. 갑자기 말기 대장암으로 할머니 먼저 편찮다더니 이내 곧 생을 마감했단 소식을 들었다.
자연히 혼자 남은 할아버지 일상이 걱정이었다. 노인 유치원이라는 곳으로 출퇴근을 하며 식사를 제공받고 하루를 보내고 한다더니 언제부턴가 요양원으로 아예 거처를 옮기셨다. 삼시 세끼 해결이 문제였다.
시골 마을은 버스 정유소가 사랑방 같다. 인적이 드문 동네의 소식을 시골 버스 기다리다 듣게 된다. 마을 입구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버스 정류소에서 날 만나자 반갑다며 인사를 나누곤 이내 곧 마을 소식을 전한다. 혼자 살다 요양원 들어간 할아버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고 말이다. 아쉬움 한가득이다. 할아버지들은 할머니가 먼저 떠나면 곧 따라 떠나는 게 일반적인 과정인 것 같다.
농사일로 텃밭을 가꾸며 하루를 채우던 그들의 일상이 엊그제 같은데, 산천은 의구한데... 하는 옛말이 떠오른다.
세월 앞에 장사 없어
또 다른 어르신네. 100수를 바라볼 정도로 건강관리에 철저하고 굽은 등을 유모차에 의지하여 열심히 동네를 거닐던 할머니였다. 치매로 요양원으로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돌아가셨단다. 정원을 정성스레 가꾸고 꽃을 유난히 아끼던 분인데 다 내려놓고 떠났다.
언제부턴가 점차 집주인은 떠나고 덩그러니 집만 남아 비어가더니 그 두 집마저 문이 잠긴 채 빈집이다. 자녀들은 한 번씩 집을 관리하러 들릴 뿐이라 시골에는 멀쩡한 빈집이 즐비하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이렇게 시골 마을의 공동화는 가속화되어 간다.
젊은이들은 아예 전입하지 않으니 아기 울음소리가 안 들린 지는 오래됐다. 고양이와 강아지 가족들만 마을의 구성원으로 점차 큰 몫을 차지한다.
이렇듯 우리나라 농촌은 고령화와 공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는 곳이다. 농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우리나라 농촌의 당면한 현실을 대변한다. 그들은 곧 사라질 대상들이다. 몇 년 후 농촌의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다시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이 살았던 삶의 현장을 볼 수 없게 된다.
이젠 그저 저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만이 농촌의 정적을 깬다. 안타까운 시골의 현실이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