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12년 만에 한일 정상이 정례적으로 상대국을 오가는 ‘셔틀 외교’를 복원한 데 이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 현장에 한국 시찰단을 파견하고, 반도체 공급망 공조와 한일·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등 밀착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15일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일한 의원연맹 합동총회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해 11월 합동총회와 비교하면 한일 관계를 둘러싼 상황이 크게 변화했다”며 “한일 관계 개선의 움직임은 이제 궤도에 올랐다”고 언급했다. 20일에는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에게 2030년 엑스포 부산 유치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상태다.
그러나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윤석열 정부는 ‘신(新) 친일파’라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지난 3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들에게 한국 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배상 해법을 발표한 데 이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서도 사실상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는) 사케 한 잔에 강제동원 문제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까지 내줬다”며 “일본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자처하려고 하나”라고 비판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깨어보니 후진국, 깨어보니 일제시대가 됐다”고 비꼬았고, 진보당 이상규 전 상임대표는 “윤석열 정권에 일본 냄새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윤석열은 그냥 뼛속까지 왜놈”이라고 원색적 비난까지 쏟아냈다.
여론도 좋지 않다. <에너지경제> 의뢰로 <리얼미터>가 9월 14~15일 실시해 1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국정 수행 긍정 평가 비율은 35.5%에 그쳤다. 반면 부정평가 비율은 61.8%에 달했다. 강제동원 배상,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등 일본과의 외교 문제가 전면에 등장할 때마다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도 치솟는 양상이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 참조)
‘개도국 리더’로 급부상한 중국
사실 국내 정치만 놓고 보면,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음 총선이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임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국민 감정상,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국민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오히려 반일(反日)을 외치는 쪽이 ‘표’에는 도움이 된다. 당장 지난 총선 당시 민주당은 ‘친일(親日) 대 반일’ 프레임으로 톡톡히 이득을 봤다.
지난주 <시사오늘>과 만난 국민의힘 관계자도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깊은 반일 정서가 있다”면서 “이성적으로만 따지면 하루빨리 과거사를 매듭짓고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게 옳지만, 국민들의 표가 필요한 정치인 입장에서 친일 프레임에 걸려드는 건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서둘러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건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까지 ‘신 냉전’을 경제적 위기의 돌파구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동아시아의 역학구도는 가늠할 수 없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세계질서를 거부하고 다극(多極) 체제를 만들겠다는 게 중국과 러시아의 구상이다. 우선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국제적 위상 강화에 골몰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주도로 여러 나라들을 여러 그룹으로 묶어낸 후 각 그룹을 확대하고 자금도 대주면서 중국의 리더십을 서서히 제도화’하려 한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국제적 발언권을 높여갔다. 지난해 10월 유엔 인권이사회(UNHRC)가 중국 소수민족 인권문제를 논의하자는 서방의 제안을 기각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었다는 평가다. 이 투표에서 미국과 영국 등이 찬성표를 던진 것과 달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은 중국을 소외시킬 위험이 있다며 반대표를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일이 있은 직후 서방이 주도하는 50개 국가가 신장 위구르족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자, 중국은 “쿠바는 66개국을 대표해 신장, 홍콩, 티베트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고 인권 문제의 정치화와 인권을 핑계로 한 중국 내정간섭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또 다른 30개 국가는 이미 단독으로 발언하거나 연합해 서한을 보내는 방식으로 중국을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은 “거의 100개 국가가 유엔에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 중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면서 “많은 개발도상국은 인권 문제의 정치화에 반대하고 있으며 신장 문제로 중국을 제압하려는 소수 서방 국가들의 시도는 절대 실현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과 중국을 위시한 개발도상국들이 인권 문제를 놓고 정면충돌을 벌여 중국이 ‘판정승’을 거둔 모양새다.
최근 유엔 내부에서 벌어지는 역학구도 변화가 보여주듯, 중국은 권위주의적 정치 시스템으로 인해 미국과 갈등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의 ‘리더’로 부상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권위주의 정권을 갖고 있는 개발도상국들, 특히 미국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갈등하고 있는 나라들은 중국이 추진하는 새로운 질서가 자신들의 권위주의 체제와 대외 정책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스탠포드대 중국경제제도연구소 쉬청강(許成鋼) 선임연구원도 “새로운 세계질서를 확립하려는 중국공산당의 노력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면서 “권위주의 정권을 갖고 있는 개도국들, 특히 미국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갈등하고 있는 나라들은 중국이 추진하는 새로운 질서가 자신들의 권위주의 체제와 대외 정책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중국이 권위주의 정권을 가진 개발도상국들을 끌어들이면서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초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욕 드러낸 러시아
한편 러시아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질서 재편을 꿈꾼다. 지난해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노골적으로 서방에 대한 적의(敵意)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침공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장을 막기 위한 수세적 전략이면서 동시에 유럽의 안보지형 재편을 통해 다극적 국제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공세적 성격을 함께 띤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러시아의 기본적 입장은 나토의 동진에 대한 견제라는 것이다. 노경덕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는 “한때 제3세계 반미(反美) 운동의 구심점이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2011, 2012년을 기점으로 푸틴은 자신처럼 비민주적 장기 집권 정부는 민주화 시위에 취약하며, 그 결과 발생할 수 있는 내전의 상황은 NATO의 군사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은 카다피와 같이 정권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정권 유지를 위한 방어적 성격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 러시아가 다극적 국제질서로의 이행을 노린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장세호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일극질서가 자국의 국가이익 달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왔다”며 “우크라이나를 무대로 삼아 현재의 강대국 지위를 유지·강화하고 궁극적으로 강대국 협조체제 형식의 다극적 국제질서를 만들어보려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경제력을 통해 미국의 경쟁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면, 러시아는 핵과 군사력을 무기로 세계질서 재편에 나서는 상황이다.
이처럼 ‘미국 중심의 일극 질서에서의 탈피와 다극화로의 이행’이라는 목표가 일치한 중국·러시아는 조금씩 접촉면을 넓혀나가고 있다. 양국은 중앙아시아·유라시아 안전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상하이 협력 기구,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들의 경제협력기구로 발전한 브릭스(BRICS) 등을 통해 정치·경제·군사 등 폭넓은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대한 지지 입장을 천명하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러시아는 일대일로를 높이 평가하고 적극 지지하며 이를 왜곡하고 먹칠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유라시아경제동맹과 일대일로 연결을 강화하고 지역 통합 프로세스를 추진하기를 희망한다”는 뜻도 피력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지난 1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러시아 대통령의 일대일로 포럼 참석의 일환으로 10월 베이징에서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의 세밀한 양자 협상이 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는 북한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로 불러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에 인공위성 발사 기술을 전수할 뜻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이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고, 러시아는 대가로 대량살상무기(WMD) 능력 강화에 필요한 정보와 기술을 주고받기로 하는 거래가 있었다고 의심한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인공위성 기술을 전수하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또한 북한이 자신들이 보유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할 수 있는 핵추진잠수함 또는 그 기술을 원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북한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군사적 긴장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질서의 재편을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중·러 행보에 적극 견제 나선 미국
다극화 세계질서로의 재편을 노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에 미국의 대외 전략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당초 미국은 중국을 세계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중국을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로 변화시켜 국제 사회에서 ‘더 큰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는 게 미국의 기대였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국을 WTO에 가입시키고 미국 시장을 열어주는 등 중국의 경제적·정치적 개방을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뒤 중국이 보인 모습은 미국으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대중(對中) 전략에 수정을 가하게 만들었다. 지난 2020년 5월 20일 백악관이 발표한 ‘대중국전략보고서(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는 미국이 1979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약 40년 동안 취해왔던 중국에 대한 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봤다.
보고서는 경제적으로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WTO가 제공하는 혜택을 이용해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발돋움하면서도 자국의 시장은 보호·육성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 주도로 미국의 지적재산권과 산업기밀을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세계 질서에 편입하지 않고 중국의 이데올로기에 맞도록 국제질서를 개조하려고 했으며, 개인의 존엄과 가치에도 도전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미국은 경제·산업 전반에 걸쳐 중국 압박에 나섰다. 한·미·일 3각 동맹 강화도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중국 역시 물러서지 않으면서 양국의 갈등이 격화됐다. 또한 대만을 사이에 둔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 상태도 이어지고 있어, 일각에서는 신냉전이 ‘열전(熱戰)’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는 지난 6월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 상대방이 전략적 위협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어느 쪽도 정치적 양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고, 한 번 균형이 깨지면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지금 1차 세계대전 직전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미국은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 무기 지원에 나섰다. 아울러 G7과 함께 강력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또 북한과의 군사적 협력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북·러가 무기 거래를 진전시킨다면 우리는 대응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택의 여지없는 한국…미·일과 밀착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리도 선택 압박을 받고 있다. 과거에도 명확한 입장표명에 대한 압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탈냉전 시대에 받았던 ‘경제적 압박’과는 궤가 다르다는 게 일관된 시각이다. 2020년 한 미국 고위직 인사는 “미중은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을 참아주는 것일 뿐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최근의 국제 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인내심’을 바닥나게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지난달 <시사오늘>과 만난 정치권 관계자는 “과거 미국이 중국을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2C로 봤다면 최근 미국은 협력(cooperation)을 빼고 경쟁(competition)만 남은 1C로 본다”면서 “이제 더 이상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참아줄 수 있는 여유도, 그럴 생각도 없다. 이건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비단 미국·중국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북한과 총을 겨누고 있는 우리로서는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결합이 안보 위협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군사적 긴장 상태를 낮추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든 중국·러시아가 구상하는 세계질서 재편에 동참하든 하나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실제로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달 일본과 한국을 향해 “머리를 아무리 노랗게 염색하고 코를 날카롭게 만들어도 결코 유럽인이나 미국인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고 결코 서양인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뿌리가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중국, 일본, 한국이 손을 잡고 협력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캠프데이비드로 초청해 역내 외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에 합의했다. “3국 공동의 이해를 위협하는 역내 긴급한 현안이 발생할 경우 신속히 협의하고 대응하겠다”는 내용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해외 정상을 캠프데이비드에 초청한 건 취임 이후 처음으로, 한국·일본과 함께 북·중·러의 위협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다.
주어진 보기는 두 가지지만, 사실상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를 가진 개발도상국들을 묶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전후(戰後) 복구와 산업화 과정에서 북미·유럽과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방 세력권으로 편입된 한국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결국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미국·일본과의 동행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미국·일본과 강하게 밀착하는 배경이다.
그러나 밀접한 한·미·일 공조에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중국과 북한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한 가지 주요 장애물은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우방인 한국과 일본 사이의 긴장, 때로는 노골적인 적대관계’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한국과 일본의 관계 개선을 요구해왔지만, 한일 양국 간 역사적 갈등으로 인해 결실을 맺지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 시절이던 2013년 직접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만나 관계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으나 성과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의 극한 대립으로 한·미·일 동맹 강화 필요성이 커지면서 윤석열 정부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 역시 ‘위협감이 고조되면서 더욱 긴밀한 3자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데 걸림돌이 됐던 서울과 도쿄의 안일함이 무너졌다’고 평가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중립외교, 전략적 모호성 같은 말은 탈냉전 시대에나 통했던 이야기”라며 “이미 전 세계는 신냉전 시대에 들어섰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질서를 주도할 수 없는 우리나라는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관계 개선 노력의 기저에는 다극화 세계 질서를 구축하려는 중국·러시아와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극한 갈등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