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위기…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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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위기…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9.02 18: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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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의 해체가 낳은 사회적·개인적 불안…정치권, 시대 변화에 맞는 준거기준 새로 정립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절대적 규범의 붕괴는 하나의 사안을 놓고도 극과 극의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다. ⓒ연합뉴스
절대적 규범의 붕괴는 하나의 사안을 놓고도 극과 극의 판단을 내리게 만들었다. ⓒ연합뉴스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선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운동이 일어났다. 모더니즘(Modernism)이 내포하는 이성중심주의와 객관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들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하나의 법칙’을 만들어내려던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상대성을 추구하려 했다.

다양성과 상대성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해체(Deconstruction)를 동반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법칙’을 깨부수지 않는 한, 개개인의 주관적 믿음은 존중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절대적 규범’이 도전받기 시작한 건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문제는 절대적 규범의 붕괴가 공동체의 위기를 부른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는 구성원들이 특정한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유지된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다’고 믿는 쪽과 ‘인간의 생명이라고 해서 특별히 존중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함께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옳고 그름’에 대한 보편적 합의는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절대적 법칙의 와해는 보편적 합의의 영역을 극도로 축소시켰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가 존재했던 자리에 ‘약자를 대하는 방식은 개인이 판단할 문제’라는 해체적 담론이 들어섰다. 더 이상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행동양식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갈등이 끊이지 않고,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도 무너진 모양새다.

현대 사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정치권이다. 부지런히 어젠다를 제시하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대다수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준거기준을 만들어내야 한다. 유교문화, 국가주의 등이 붕괴된 자리에 ‘현 시대에 걸맞은’ 공동체적 가치를 형성해야 국가가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진보 정치인들은 스스로가 ‘종교’가 되는 방식으로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를 악용했다. 국민 전체가 동의할 수 있는 담론을 이끌어내기보다는,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시대, 나를 믿어라’라는 지극히 정치공학적인 태도를 취했다. ‘우리 편’을 위해서는 객관적 진실마저도 부정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보수 정치인들은 과거로의 회귀를 택했다. 유교문화, 국가주의의 부활을 꿈꿨다. 이미 가치관의 변화가 이뤄졌음에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할 방법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처럼 진보도 보수도 국민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가 현재의 ‘심리적 내전 상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 있다. 전통적 도덕률은 물론, 생물학적 성별 구분 방식에서부터 남녀가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관념에 이르기까지 모든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사회가 정해준 가치’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해야 하는 일은 명확하다. 저마다의 행복을 좇는 개인들을 어떻게 묶어내서 공동체를 존속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당위의 해체가 공동체의 해체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개인적 불안을 보듬을 수 있는 준거기준을 새로 정립하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혐오 범죄’가 벌어지는 시대.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은 없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골든타임’일지도 모른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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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09-09 14:49:32
글 진짜 잘쓰시네 지켜보겠습니다 정진호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