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 금융사 배불리기 될 수도…경쟁 심화 우려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준우 기자]
지난 7월 12일부터 원리금 보장상품 자동재예치 제도 폐지와 동시에 DC 또는 IRP 가입자를 대상으로 디폴트옵션이라는 사전지정 운용제도가 의무화 됐다. 가입자의 무관심으로 방치되고 있는 돈을 활성화 시키고, 더 나아가 수익률을 제고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직접 구성자산을 꾸려 지정해놓는 것이 아닌, 각 금융사들이 사전에 구성해놓은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각 금융사들은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별로 포트폴리오를 보기 좋게 구성해놓고 가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A증권사의 경우 초저위험 포트폴리오 1개, 저위험 포트폴리오 2개, 중위험 포트폴리오 3개, 고위험 포트폴리오 2개 등 총 8개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현 디폴트옵션은 금융사들이 만들어 둔 보기 좋고, 먹기 좋은 음식들 중 하나를 골라 먹게 될 뿐이다. 투자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가입자들이야 디폴트옵션이 적용될 일 자체가 없겠지만, 우리는 디폴트옵션 발동 가능성이 높은 ‘투자 무관심자’들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퇴직연금을 굴리는 것조차 남에게 맡기는 모양새라면 오히려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을 위한 가속페달을 자물쇠로 묶어놓는 셈이다.
가입자들에게 건전한 투자지식을 전하고, 그들이 스스로 디폴트옵션 구성자산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 편히 골라 먹을 수 있게만 한다는 것은 결국 단순히 퇴직연금 시장 내 자금 활성화를 위해 쉬운 길을 택한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특히 단순 자금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가 아닌 노후를 위한 초장기투자인 퇴직연금에서는 수수료, 즉 운용보수의 중요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가 내놓은 고위험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의 구성 상품들의 운용보수를 모두 합하면 1%를 훌쩍 넘는다. 이처럼 가입자들은 의도치 않게 많은 보수를 매년 지불해야 할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각 금융사들의 경쟁 심화도 우려된다. 금융사들이 짜놓은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곧 이들의 운용 능력이기에 무리하게 수익률을 추구하려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펀드는 반대로 손실률 역시 크기 마련인데, 손실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투자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금융사들의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에는 ‘디폴트옵션형 상품’이 편입돼 있기도 하다. 포트폴리오 내 구성 상품에 본인들이 만든 디폴트옵션 전용 상품을 끼워넣은 것이다.
디폴트옵션 그 자체로는 대기성 자산으로의 전환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제도임이 분명하지만 나아가 투자자들 스스로가 퇴직연금 시장 내 자생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투자 관련 지식 함양을 위한 조치도 함께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본인의 미래 수익성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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