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을 하라고 했더니 외교를 하고 있네 [황선용의 In &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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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을 하라고 했더니 외교를 하고 있네 [황선용의 In & Out]
  • 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 승인 2023.06.15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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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수사와 행정적 수사에 대한 단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

ⓒ픽사베이
직장 내에서나 밖에서나 온갖 수사와 언변으로 비켜가기 보다는 문제를 풀어보려는 행동이 습관화 돼야 하지 않을까.ⓒ픽사베이

프랑스 혁명기부터 나폴레옹 전쟁을 거쳐 왕정복고 시기까지 활약한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는 외교적 수사(diplomatic rhetoric)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외교관이 ‘그렇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고려해 보죠’라는 의미이고, ‘고려해 보죠’라고 말하는 건 ‘안 됩니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자는 외교관이 아니다”

즉 외교에 있어서 즉답과 수용은 없다는 의미인과 동시에 상대국가와의 협상의 여지를 없애버리는 부정적인 용어도 써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국익을 지키고 상대국가와의 우호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외교는 정치의 끝판 왕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통상협상이나 국교협상 등 국가 대 국가의 굵직한 협상에 있어서 장시간 지루한 협상을 이어가는 것도 이와 같은 여지에 여지를 두고 하나하나씩 풀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외교적 수사(修辭)는 관용적으로 상대국가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관용적, 일반적 언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당연하게 알아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외교뉴스를 접하는 일반 국민들은 그 속내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내막을 알고 놀라곤 한다.

이건 외교의 문제이고, 이제부터 행정의 얘기를 해보겠다. 정부나 공공기관도 정책 담당자 또는 인사, 노무, 복지 담당자 등은 그 대상이 되는 직원 개개인 또는 직원단체와의 협상 내지는 간담회를 통해 근로환경 개선, 전향적인 쇄신을 이끌어내곤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또는 직원 개개인의 요구사항에 대해서 사용자 측 또는 업무 담당자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통해 직장 내에서의 소통의 단절을 초래하기도 하며 또한 탁상행정, 보이기식 행정의 오해를 받기도 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곤 한다. 

예를 들어 직장 내에 편의시설 설치를 두고 노사 간의 대화를 한다고 했을 때, 가부에 대한 정확성을 담보로 신속하게 추진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기관운영에 득이 될 텐데 이를 두고도 ‘고려해본다’ ‘적극 검토해 본다’ ‘조심스럽게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등등으로 어떤 사안 하나가 결정되는 과정이 매우 지루하게 이뤄지는 것이 다반사다.

이러한 수사(修辭)는 비단 직장 내에서 만의 일은 아니다. 외부 민원인들에 대한 민원상담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는 부처 간, 기관 간의 업무 협의에서도 이어지곤 한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부처 간 이기주의, 조직 간 불신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나의 경험을 통해 보더라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 어떻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지 본적도 없으며 실제 그것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외교적 수사와 다를 바가 없다. 처리시한이 못 박힌 공적문서 발급업무와는 다르게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은 솔직히 똑 떨어지는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그 순간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속아주는 수사(修辭), 속이는 수사(修辭)에 서로가 암묵적 합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어떤 사안을 처리하기 위한 절차나 관련 규정의 문제가 앞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풀고 물꼬를 트는 것 또한 사람이 할 일이기 때문에 단 한 가지를 처리하더라도 주어진 환경과 제도 속에서 주저앉기 보다는 뭐라고 같이 해보려는 애틋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다산 정약용은 “결과를 두려워하기 전에 먼저 시작하라. 모든 시작은 위대하다”라며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도 직장 내에서나 밖에서나 어디서든 지 맞닥뜨린 그 것(일)을 온갖 수사와 언변으로 비켜가기 보다는 상대방이 있는 일이라면 조건부터 대지 말고 일단 시작해서 문제를 풀어보려는 행동이 습관화 돼야 하지 않을까.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울과기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방대학원 안보정책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이북오도청 (이북오도위원회) 동화연구소 연구원과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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