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국내 ESS 생태계…역행 멈출 ‘묘수’ 있을까? [권현정의 이런E저런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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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국내 ESS 생태계…역행 멈출 ‘묘수’ 있을까? [권현정의 이런E저런E]
  • 권현정 기자
  • 승인 2023.06.01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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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잦아진 화재 리스크로 정부 지원 제동…생태계 황폐화
실효성 갖춘 안전진단 마련돼야…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에너지(Energy) 업계 내 ‘이 사람 저 사람’(이런 이 저런 이)의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들을 그러모아 한 데 꿰어보려 합니다. 손에 안 잡히는 수치나 전문용어로 가득한 설명문보다는, 사람의 목소리로 전했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이는 현장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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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ESS 생태계 재구축에 나선 가운데, 실효성을 갖춘 안전진단 시스템과 수익성을 갖춘 사업 모델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시사오늘 김유종

정부가 최근 분산에너지특별법, 제10차 전력수급계획 등을 마련하며, 다시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시스템) 활성화에 팔걷고 나선 모습입니다. 5~6년 만의 행보라 반갑게 다가옵니다.

다만, 업계에선 환영 대신에 조심스러운, 관망하겠다는 분위기가 감돕니다. 2010년대 후반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활성화 행보에 제동을 걸었던 ESS 화재사고 리스크가 그간의 안전대책으로 충분히 해소됐는지 의문이 남아 있어서입니다. 밸류체인을 다시 업계로 유인할 방책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생태계 황폐화로 이어진 화재사고…중소기업 문 닫고 대기업 이탈


2017~2018년, 정부는 REC(신재생에너지 인증서) 가중치 등을 제공하면서 ESS 산업 성장에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업계, 현대중공업 등 EPC 업계가 모여들었고, PCS(전력변환장치) 업계나 EMS(에너지 종합관리 시스템) 등 소프트웨어 업계도 뛰어들었습니다.

‘잘 나가던’ 산업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화재사고였습니다. 민관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 위원회(이하 조사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2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리튬이온배터리 기반 ESS 화재사고는 총 34건입니다. 이 중 27건이 2018년과 2019년에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화재사고 이후 정부는 지원 행보를 멈췄습니다. 2021년 REC 가중치는 일몰됐고, 조사위가 세 차례 발표한 안전대책 시행 부담은 업계에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 A씨의 설명입니다.

“발전 자체를 예전에는 100% 할 수 있었다면 80~90%만 하도록 한다든지, 안전규제가 생겼잖아요. 설비 투자 시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투지비용을 회수할 수 있겠다, 이런 계산이 서고 그래야 ‘사업성’이 생기는 건데, 이게 안 나오는 거예요.”

배터리사 등 중견·대기업은 ESS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중국에 뺏기는 등 일부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해외 시장, 전기차 등 견조한 먹거리로 눈을 돌릴 여력은 있었습니다. EPC 사업을 운영하는 효성중공업 관계자의 말입니다.

국내 시장은 수익성이 낮아진 반면, 미국과 영국, 호주 등 해외시장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증가 및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ESS 활용도 및 수요가 높아졌고, ESS 시장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에 당사 ESS 해외사업 비중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중소 EPC 업계 관계자 B씨의 말입니다.

배터리는 해외로 다 나가버렸지, 화재 이후에 PCS 업체는 영세업체라 거의 다 망했지, PMS(등 소프트웨어)는 계속 업데이트가 필요한데 이전보다 저조해졌지, 우리만 해도 화재가 안 났을 때 계획했던 설치 물량 대비 5분의 2만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실제로 지난해 설치된 ESS 물량은 0.2GWh 수준으로, 지난 2018년 3.8GWh 대비 20분의 1 수준에 그칩니다.

 

안전대책, 부담만 늘리고 실효성 낮아…배터리 업계 정보 공유가 ‘열쇠’


정부대책이 화재 리스크를 줄이는 데 유효했냐는 질문에도 업계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정부가 지난 2019년, 2020년, 2022년 세 차례 화재원인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강화된 안전대책을 내놨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 격이었다는 지적입니다. 중소 EPC 업계 관계자 B씨의 말입니다.

불은 배터리에 나는 건데, 조사위가 ‘배터리’를 가리키기보다는 전체적인 문제라고 진단을 해버린 거예요. 배터리도 문제인데, PCS 등 주변 기기들도 문제라고 해버린 거죠. 이러니까 배터리에서 문제를 찾기보다는 전체적인 설비를 더 추가해라, 소화장비 등을 더 둬라 등 부대적인 대책을 시행하면서 시간이 많이 지난 거죠.

조사위의 3차 화재원인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2020~2021년 발생한 ESS화재사고의 원인으로 ‘배터리 내부 이상에 의한 화재’를 짚으면서도, 배터리 제조사의 문제인지 운영상의 문제인지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대책 역시 배터리셀 적합성 의무화 등 배터리 외에 △자체소화설비 △배기시설의 안전기준 정비 등 포괄적으로 제시됐습니다.

대책 마련에 앞서 조사 방법을 다시 살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배터리사의 소극적인 정보공유를 묵인하면서, 조사가 일부만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세경 경북대 전기공학과 교수의 말입니다.

“ESS 사고가 나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제조든, PCS든, 자연재해든, 계통 노이즈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분석해야 해요. 그러려면 지반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이건 배터리사가 가진 거거든요. 그런데 배터리 제조사들이 기본적으로 안전 문제에서 데이터를 혼자 가지려고 해요. 알아서 해결하려 하고요. 이래서 불이 안 나면 상관이 없는데, 여전히 문제가 생기고 있잖아요. 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죠. 정부 입장에서는 불이 나면 보조금이나 지원정책을 더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까요.”

이 같은 지적에 최근 전기안전공사는 최근 ‘지능형 ESS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에 나섰습니다. ESS 설치 시 전기안전공사로의 데이터 전송을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다만, 한계도 여전히 있어 보입니다. 전송되는 데이터가 개별 셀 정보 등 진단에 필수적인 정보가 아니고, 현재 상태값, 잔량 등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또, 전기안전 ‘승인’을 진행해왔던 전기안전공사가 진단 역량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세경 교수의 부연입니다.

한참 화재사고가 났을 때, 사고조사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배터리 셀을 보고 오라고 하는데, 배터리를 진단하려면 배터리 운영 데이터를 받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안 주죠. 그럼 껍데기를 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고, ‘다녀왔다’ 이게 다거든요. 그런데, 결론은 ‘점검 다 했어, 괜찮아’ 이렇게 나는 거예요. 지능형 ESS 통합관리시스템도 자칫 그런 식으로 논의될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설치하고 ‘땡’ 아냐…유효한 ‘비즈니스 모델’ 먼저 제시돼야


실효성 있는 안전진단 체계 구축과 함께 ‘유효한 인센티브’에 대한 요구도 나옵니다. 

최근 정부는 ESS 생태계 재구축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글로벌 산업 시장이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제품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ESS 생태계 수립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기 때문입니다.

국회에서는 분산에너지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을 활성화하는 것이 내용입니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6년까지 전국에 26.3GW 규모 ESS 설비(재생에너지 백업설비)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설치 개소’에 집중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놓쳤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 A씨의 말입니다.

해외 같은 경우는 사업자에게 전력안정의무를 줘서 설치를 의무화하거나, 전기요금을 시간대별로 다르게 해 ESS 활용을 유인하거나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거든요. 국내에선 ESS 비즈니스 모델이 안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소 EPC 업계 관계자 B씨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습니다. 설치가 우선되고 정작 ‘어떻게 쓸지’는 뒷순위로 밀려있다는 겁니다.

10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설치를 늘려야한다고요. 그런데 그때도 그렇고, 우리는 일단 설치를 한 다음에야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려고 해요. 설치해 놓고 ‘이제 경제성을 확보해라’ 하면 늦어버리는 거죠. 서비스가 되려면, 비즈니스 모델을 정의하는 게 먼저입니다.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로는 ESS의 유동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제시됐습니다. 애초에 ESS는 충방전이 자유롭다는 것이 강점인데, 이제까지 이 지점이 묵과되고 운영 편의가 더 강조됐다는 겁니다. 이어진 B씨의 제언입니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전국 ESS의 충방전을 본사에서 컨트롤해요. 그런데 보통 충방전을 각 지역, 각 건물에서 하거든요. 그러면 같은 ESS라 해도 개념이 아예 달라지는 거예요. 현장에서만 보는 거랑, 전체 지역 상황을 보면서 충방전하는 거랑은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르죠. 또 지금 태양광 연계 ESS를 보면, 충전시간이랑 방전시간을 정해놨거든요. ESS는 다이나믹한 활용이 중요한데, 이러면 활용을 5%도 못 하는 거예요.

담당업무 : 정유·화학·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해파리처럼 살아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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