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열두 살’ 알뜰주유소…지속가능성 확보하려면? [권현정의 이런E저런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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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열두 살’ 알뜰주유소…지속가능성 확보하려면? [권현정의 이런E저런E]
  • 권현정 기자
  • 승인 2023.05.15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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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경쟁 촉진 목표였지만…주유소 업계에만 부담 쏠려
주유소 폐업 잇따라…“수소충전소 전환 등 출구전략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권현정 기자]

에너지(Energy) 업계 내 ‘이 사람 저 사람’(이런 이 저런 이)의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들을 그러모아 한 데 꿰어보려 합니다. 손에 안 잡히는 수치나 전문용어로 가득한 설명문보다는, 사람의 목소리로 전했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이는 현장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주〉

지난 8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다 ⓒ 뉴시스
지난 8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정보가 표시돼 있다 ⓒ 뉴시스

지난 2011년 도입돼 올해 12년 차를 맞은 알뜰주유소 사업이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오는 6~8월 예정된 7번째 기름 공급사 입찰을 앞두고 제도 개선 요구에 다시 불이 붙은 겁니다.

정유·주유업계는 알뜰주유소가 소비자들의 기름값 부담 경감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지속가능한 제도는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모아봤습니다.

 

같은 제품·다른 가격 ‘기형적 구조’…소비자 저감 부담은 주유소 몫으로


알뜰주유소는 비알뜰주유소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게 특징입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알뜰주유소 12년,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알뜰주유소 휘발유와 경유값은 리터당 23.7원, 24.7원 더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가격 경쟁력의 배경에는 알뜰주유소의 기름 수급 구조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한국석유공사와 NH농협은 정유사 등과 2년 단위 기름 공급 계약을 맺는데, 2개 브랜드에 공급되는 만큼, 대량구매를 진행하게 됩니다. 석유공사 등은 대량구매하는 대신, 정유사에 더 싸게 공급해달라고 요구하고요. 실제로 석유공사 등은 입찰 가격을 국제 제품 가격인 MOPS(싱가포르현물가격)를 기준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련 업계에는 이 같은 구조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우선, ‘계약조건’의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석유공사 등은 공급사에 요구할 수 있는 추가물량의 범위를 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알뜰주유소 기름 공급사는 지난 2020년까지 꾸준히 계약 기준 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해 왔고요. 기준물량보다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하면 계약가격에서 추가 할인도 적용됩니다. 석유공사는 이 과정에서 자체 이윤을 남기지 않습니다. 감소분은 전부 알뜰주유소 공급가를 내리는 데 활용되는 거죠.

대한석유협회 관계자의 주장입니다.

“알뜰주유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존 정부 계획(2022년 기준)이었던 10%를 넘어서 12%까지 늘어났고, 알뜰주유소의 판매물량은 전체 판매 물량의 21% 수준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면, 공급사와의 계약조건에서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같은 제품을 다른 가격으로 제공하는 것은 당초의 취지와도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김형건 강원대학교 교수의 첨언입니다.

“당초 알뜰주유소 취지는 국제 시장에서라도 공급원 상관없이 공급받겠다는 거였어요. ‘중국 기름이 싸면 중국 제품을 사 오겠다. 그래서 국내 정유사도(해외 기름과 경쟁에 나서)가격을 낮추도록 만들겠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의 정유사가 같은 제품을 알뜰주유소에 더 싸게 공급하고 있는 거잖아요. 기형적인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기형적인’ 구조의 피해는 일선 주유소가 가장 크게 보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정유사가 같은 기름을 알뜰주유소에는 더 싸게, 비 알뜰주유소에는 더 비싸게 공급하면서, 소비자가를 낮추는 부담이 정유사가 아니라 일선 주유소에 전가됐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에너지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알뜰주유소 2km 내에 위치한 비알뜰주유소는 같은 지역 내 다른 비알뜰주유소보다 휘발유는 리터당 5.8원, 경유는 8.4원 더 저렴했습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의 말입니다.

“알뜰주유소는 처음에는 정유사들의 경쟁을 통해 기름값을 낮추자는 취지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현실은 정유사들 경쟁은 아예 없고, 주유소 간 경쟁만 남았어요. 일반 주유소는 공급 받는 가격이 다르다보니 알뜰 주유소를 따라갈 수가 없고요. 알뜰이 비정상적으로 싸게 판매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겁니다.”

일선 알뜰주유소도 마냥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2년간 고정된 값으로 기름을 공급받으면서, 기름값이 내려가는 시기에는 마진이 낮아진다는 겁니다. 이덕규 자영알뜰주유소협회 부회장의 말입니다.

“저희가 할인을 크게 하다 보니 많이 팔아 큰 이익을 가져갈 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지난 1~4월 알뜰주유소는 90% 이상이 적자를 봤어요. 전년도에는 알뜰주유소 10~20곳 정도가 일반 정유사로 전환 계약을 했고요. 최근 1~5월 상황을 보면, 기름값이 떨어지면서 정유사가 자체 브랜드에 공급하는 가격이 석유공사 입찰금액보다 더 저렴해졌거든요. 단가 인하 부분은 정유사에서 가져가는 셈이죠. 저희는 손해를 보면서 운영하는 거고요. 정유사 브랜드는 자체 할인 카드도 있잖아요. 알뜰주유소 할인 카드는 카드사 호응이 좋지 않아, 매출액의 2~3%만 들어오는 게 전부에요.”

알뜰주유소 입장에서도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인 셈입니다.

 

주유소 공동화 우려…수소 충전소 전환 등 ‘출구 전략’ 마련 필요성


업계와 전문가 등은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주유소 수가 줄면서, 소비자 후생 측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주유소 밀집도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수는 지난해 12월 말 전년 동월 대비 234곳 줄었습니다. 같은 시기 알뜰주유소는 전년 동기 대비 42곳이 늘어났습니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의 말입니다.

“일반 주유소는 알뜰 가격을 따라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알뜰이랑 큰 주유소만 남고 영세 주유소는 없어지는 거거든요. 이러면 소비자 후생도 떨어지게 되는 거죠.”

가격 경쟁을 포기한 주유소가 가격을 오히려 올릴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김건형 교수의 말입니다.

“가격 차이가 적당해야 경쟁이 가능한데, 내가 1000원에 받아오는데, 옆집이 900원에 판매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박리다매가 안 된다면 비싸게 조금 팔겠다는 곳도 나올 수 있고요. 실제로 서울권에서는 (가격보다)입지가 중요하다 보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 해소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주유소 폐업 시 탱크를 들어내고 정화하는 등 1억 원 정도의 환경비용이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폐업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는 겁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의 말입니다.

“일반주유소 영업이익률은 2.2% 내외로 저조합니다.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알뜰주유소에 대한 기본 저희 입장입니다.”

출구전략 중 하나로 영세 사업장을 수소 충전소 등을 포함한 슈퍼 스테이션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언입니다. 김건형 교수의 말입니다.

“멀쩡한 주유소 폐업 후 바로 옆에 수소 충전소를 만드는 건 낭비잖아요. 에너지를 전환하듯이 업장도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국가적으로 이익일 수 있거든요. 이 전환을 위한 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면 알뜰주유소 명목도 생깁니다. 알뜰주유소를 맨 처음 만들 때 이게 취지에 포함돼 있기도 했고요.”

한편,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하반기 알뜰주유소 입찰 시 제도 개선에 대해 “입찰 제도 개선에 대해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담당업무 : 정유·화학·에너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해파리처럼 살아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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