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SVB 파산사태 원인은 고금리·특수은행
韓금융당국, 경쟁 정책에도 건전성 최우선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갑작스런 파산 사태는 은행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최근 국내 금융권의 화두는 은행 간 경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필두로 금융당국에서도 현재의 시중은행 과점 체제가 금융소비자 이익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은행간 경쟁을 장려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스몰 라이센스 도입, 챌린저 뱅크 설립 등이 경쟁 활성화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불거진 실리콘밸리은행(이하 SVB) 파산 사태가 없었다면, 아마도 이 같은 논의는 더욱 진전됐을 것이다.
SVB는 가계대출보다는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을 주 고객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특수은행이었다. 규모 면에서는 미국 내 은행 중 16번째로, 중소형 은행이라 할 수 있다. 파산은 뱅크런으로 인해 발생했는데, 다른 소형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제2의 SVB 파산 사태를 우려해 예금 인출을 할 경우 미국 내 금융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론까지 불거졌었다.
SVB 파산이 급격하게 이뤄진 건 예금을 맡긴 주 고객인 중소기업들의 1인당 예금액이 일반 가계중심 은행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고금리 영향으로 마땅히 돈을 빌릴 곳이 없어진 스타트업들은 SVB에 맡긴 돈을 찾아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문제는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스타트업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었고, 갑작스런 인출에 SVB는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팔아 예금액을 지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채권 가격이 하락하던 시기였기에 SVB는 막대한 손실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고금리라는 금융환경 변화와 함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은행이라는 점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다행히, 미국 정부가 SVB 고객들에 대한 지급보증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사태는 진정 국면에 들어간 듯 보이지만 아직은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이처럼 전 세계적 금융환경 불확실성이 확대된 현재의 상황에서 은행 진출 문턱을 낮추는 건 과연 옳은 선택일까?
SVB 파산 사태는 은행업에서 경쟁보다는 건전성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무한경쟁으로 부실은행이 양산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처럼 건전성을 갖춘 과점 체제가 낫다는 말이다.
은행 간 경쟁을 통해 수신금리는 높이고 대출금리 이자를 낮추면 소비자에겐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도한 경쟁과 자산 규모가 작은 은행에 문제가 생기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 SVB 파산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결국 예금주들은 은행을 믿지 못하고 인출 러시를 감행, 뱅크런 사태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일부 은행이 아니라 은행 시스템 전반이 국민 신뢰를 상실할 경우, 닥쳐올 경제위기는 끔찍할 수준일 것이다. 은행은 건전성을 바탕으로 신뢰를 얻고, 고객은 시스템을 신뢰하고 돈을 맡긴다.
경쟁? 물론 중요하다. 허나, 그 경쟁은 건전성을 취약하게 만들 정도로 산업 진입 문턱을 낮추면서까지 장려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유사한 경험을 통해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바로 IMF 사태와 저축은행 사태다. 제2의 외환위기와 저축은행 사태를 막기 위해서, 은행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쟁과 건전성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금융당국은 현재 논의 중인 은행산업 경쟁 활성화 정책이 건전성 훼손 우려는 과연 없는 지, 보다 꼼꼼하게 따져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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