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중도개발 회생계획 발표 한 달 뒤에 채무보증이행 밝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말 한 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한 마디 말의 가치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속담이지만, 경제·금융시장에서는 단순히 이 같은 표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 한 마디가 실제로 시장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 총재의 말 한 마디가 그렇고, 미국 같은 경우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그렇다. 시장전문가들이 이들 각국 중앙은행 수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분석하고 이를 긴축정책 옹호(매파적)냐 아니냐(비둘기파적)로 판단하는 건 그만큼 시장에 미칠 영향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제당국 수장들은 언제나 말조심을 한다.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분명 중앙은행 수장도 아니고, 경제당국 수장도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국내 단기채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김 지사가 지난 9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레고랜드와 관련해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회생신청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건 분명한 오판이었다. 김 지사의 잘못된 판단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계획이 국내 단기채권시장에 가지고 올 여파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 다른 하나는 논란을 수습할 후속계획 발표가 너무나도 늦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먼저 김 지사는 이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이 레고랜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채무불이행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단기채권시장은 이미 얼어붙은 뒤였다. 급기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경제당국이 50조 원 규모의 단기채권시장 안정화 정책을 내놓기까지 했다.
증권가 등 금융시장 일각에서 ‘2000억 원 안 갚겠다는 한 마디에 50조 원을 불태웠다’는 과장 섞인 푸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50조 원은 경제당국이 발표한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50조 원+α 규모’ 확대 운영 계획에서 나온 액수다. 증권가에서는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발표된 가장 크고 광범위한 규모의 지원이라고 말한다.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위기를 그만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김 지사의 레고랜드 관련 발언에도 이유는 보인다. 사업 시작 전부터 논란이 많았던 레고랜드 사업과 강원중도개발의 적자난의 책임이 자신이 아닌 최문순 전 도시사에게 있음을 명확하게 하고 선을 그으려 했을 것이다. 딱히 잘못된 판단은 아닐 터였다.
그러나 김 지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간과했던 사실이 있다. 그가 말한 강원중도개발의 회생신청이 금융시장에서 강원도의 채무 불이행(디폴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걸 말이다.
강원도의 채무불이행은 그저 강원 레고랜드 사업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와 유사한 수준의 신용도를 가진 지자체의 신뢰도를 흔들었고 이는 단기채권시장의 냉각으로 이어졌다.
초우량 채권이 아니면 채권시장의 외면을 받아야했고,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던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은행 대출을 받았다. 당장 증권사와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가 부각됐다.
증권가에서도 레고랜드 사태가 단기자금 시장 위축을 더욱 심화시켰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부동산 PF에 대한 신뢰 저하를 가져오면서 은행권의 투자 위축을 불렀다. 부동산 PF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면서 은행들도 몸을 사리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김진태 지사의 말 한 마디가 이 모든 위기를 불러왔다는 지적은 과한 면이 있다. 고금리 등 글로벌 금융환경 악화로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며, 언젠가는 찾아올 위기였다. 문제는 김 지사의 발언이 그 위기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경제당국이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말이다.
경제당국이 국제 금융시장을 모니터링하며 예의주시하던 상황에서 느닷없이 내부에서 대형 폭탄이 터진 셈이다.
반발이 커지자 김 지사는 진화에 나섰다. 앞서 그는 지난 10월21일 보증채무를 2023년 초까지 이행하겠다고 밝히며 필요예산인 2050억 원을 예산안에 편성하기로 했다.
이후 강원도는 보증채무를 올해 안인 오는 12월 15일까지 전액 상환하겠다도 말했다. 이행 시점을 앞당긴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기획재정부 등 정부와 사전 협의가 이뤄진 것이라면서 이행 계획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그러나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당초 이번 사태를 촉발한 강원중도개발 회생신청 기자회견 전 경제당국과 김 지사가 소통을 했다면, 겪지 않을 금융위기였기 때문이다. 대책은 기재부와 협의해 만들었으면서, 왜 회생신청 계획 발표 전에는 소통을 하지 않았는 지 안타깝기만 하다.
김 지사는 강원중도개발 회생신청이 정치적 판단에서 이뤄진 결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강원도민의 부담을 줄여보려 노력했던 것 뿐이라는 게 그의 해명이다.
이 같은 해명은 수긍하기 어렵다. 정치적 판단도 아니고, 더욱이 경제적 판단도 없었다면, 그저 짧은 식견(識見)으로 내린 오판(誤判)이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결국 채무보증을 이행하기로 하면서 강원도민의 부담도 그대로였다. 그 어떤 이득도 하나 없이,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만 뒤흔들어놓은 셈이다.
대응 면에서도 아쉬움이 크다. 사태 수습을 위한 대응이 너무나도 늦었다는 말이다.
경제에서는 경제수장의 취임 초기 ‘말 실수’를 가리켜 ‘초보자의 실수’라고 부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거나,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다는 게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통상 초보자의 실수가 발생한 경우, 곧바로 해명에 들어간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거나 또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 뿐이라는 식의 정정이 ‘초보자의 실수’ 발생 직후, 늦어도 당일에 이뤄진다. 잘못된 시그널이 시장에 줄 충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이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던 2014년 3월21일 FOMC 관련 기자회견에서 금리인상 종료 시기와 관련해 “양적완화 종료 후 대략 6개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4월1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초저금리 정책이 ‘상당 기간’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선 발언이 시장에서 금리인상 기조로 해석되자 10여일 뒤 사실상 발언내용을 정정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초보자의 실수’를 했다가 바로 정정한 사례가 있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1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빅스텝 여부와 관련해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발언이 시장에서 ‘빅스텝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고 해석되면서 곤혹을 치렀다. 한은은 곧바로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 뿐이라며 확대 해석에 대해 선을 그었다.
강원도의 해명대로 기업회생 신청이 디폴트를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면, 정말로 ‘초보자의 실수’였다면 채무 이행 확약 등을 담은 해명은 기자회견 당일, 늦어도 다음날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회생신청 계획 발표(9월 28일)와 채무보증 이행 계획 발표(10월 21일) 사이에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시점 차이가 난다. 결국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책임론이 불거지고나서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 셈이다. ‘긴급브리핑’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그 사이 단기채권시장과 증권사, 건설사 등 이해당사자들이 입은 유무형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김 지사의 강원중도개발 회생신청 발언이 없었더라면, 레고랜드 사업 실패에 대한 논란과 책임은 최 전 지사를 향했을 터였다. 도민혈세를 들여 추진한 사업이 실패했다면, 그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김 지사는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채무보증 이행 계획을 밝히면서 나온 “조금 미안하다” 식의 유감 표명이나 “회생신청은 디폴트가 아니다” 식의 해명은 궁색하다. 경제·금융시장은 회생신청을 디폴트를 의미한다고 받아들였고, 그 결과가 지금의 시장 상황이다.
한 달여가 흐른 시점에서의 해명은 사건이 커지자 나온 궁여지책으로 나온 변명으로만 들리는 이유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로 불거진 위기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안에서도 나오고 있는 책임론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과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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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가 뭐 이럴줄 알구 그랬겠니.. 문제가 있음 근원을 찾아 조져야지 왜 뇌관을 잘못 건드린 사람을 자꾸 조질러구 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