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25회·전두환 13회 달해
최근 들어 사면 최소화 분위기
재벌총수 사면 이유 '경제 살리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방글 기자]
윤석열 정부가 취임 3개월 만에 8‧15 광복절 특사를 진행하면서 경제인 사면 범위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오는 9일께 사면심사위원회를 열고 광복절 특사 대상자를 심사한다. 사면 대상자는 12일께 발표될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경제인 사면을 기대하고 있다. 앞서 윤석열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누누이 강조해온 데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高 상황, 무역적자, 성장률 둔화 등 복합 위기에 처한 만큼 경제인 특사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수사했던 데다 첫 사면인 만큼 부담감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자신이 구속시킨 인물을 대통령이 되자마자 풀어주는 꼴이 되는 탓이다.
최근 들어 대통령이 사면의 권한을 자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검찰 출신 대통령의 취임 직후 사면 범위 등에 관심이 쏠린 것도 부담이 되는 이유 중 하나다.
역대 대통령들은 얼마나 많은 경제인들을 사면했을까. 또 그 이유는 뭐였을까.
1988년, 그러니까 대통령 임기가 5년으로 고정된 이후 대통령이 사면권을 행사한 횟수는 46회 정도다. 민주화 이전에는 사면 횟수도 많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25회, 전두환 전 대통령이 13회에 달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7차례 걸쳐 사면을 진행했다. 이 외 김영삼 전 대통령이 9회,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8회, 이명박 전 대통령 7회 등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3회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는 6번에 걸쳐 특별 사면을 단행했는데 경제인 사면 최소화라는 원칙을 고수,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은 한 차례도 시행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해 이재용 부회장을 가석방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경제인을 사면한 이유는 비슷하다. 경제 살리기. 기업인 사면이 우리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지어는 경제인 사면 복권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이재용 부회장 사면도 같은 이유에서 힘을 얻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직접, 경제인 사면을 건의하겠다고까지 나섰다.
“(경제인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 어느 정도 처벌을 겪었으면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우리 경제나 국민의 일반적 눈높이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한덕수 총리
“경제 활력 회복 차원에서 모든 국민이 함께 나서자는 취지로 경제인 사면을 적극 검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추경호 부총리
“민생, 경제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기업인에게 좀 더 활발히 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옛날 왕조시대에도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국정 쇄신과 국민 통합을 위해 대사면을 실시해 옥문을 열어 죄인을 방면했다고 한다. 돌아오는 광복절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경제계 인사를 대사면해 국민통합과 경제 대도약의 계기로 삼도록 윤 대통령에 요청한다.”-홍준표 대구시장
“경제가 어려우니 좀 더 풀어줘서 활동 범위를 넓게, 자유롭게 해달라. 기업인 사면이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거다.”-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과거에도 이유는 ‘경제 회복’에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시행한 경제인 사면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정 회장은 아삼육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배신하고 대권에 도전했다 피를 봤다. 친구라 믿었던 정 회장 덕에 어렵게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보복에 들어간다.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는 3년가량 지속됐고, 김 전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로 정 회장을 특별사면‧복권 시키면서 화해한다. 이 때 김 전 대통령은 정 회장 사면의 이유를 ‘경제 발전’이라고 명확히했다.
“딴 생각 말고 경제 전력” 金 대통령 “특별사면 조치에 감사” 정주영 씨
김영삼 대통령은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만나 지난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불편했던 관계를 해소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중략>
김 대통령은 면담에서 “지난 사면 조치는 모두가 힘을 합쳐 일류 국가 건설에 나서자는 뜻”이라며 “사면대상에 경제인이 포함된 것도 경제발전에 진력해 일류 국가의 토대를 만들자는 취지”라고 말했다.김 대통령은 또 정 회장에게 “이제는 딴 생각을 하지 말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전념해 달라”고 당부했다.
-1995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
김대중 정부 말에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과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 등 외환위기를 불러온 경제인들을 사면하면서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비리 관련 재계 인사까지 무원칙하게 사면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IMF 체제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국민 전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느냐”며 “그런 점을 감안해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판결한 건데 이를 일시에 무효로 만들어버리니 허탈하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취재수첩> 또 ‘봐주기 사면’
“이런 사면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 “대우사건 공범피고인중에서 주범만 사면해주면 누가 납득하겠나.” “막대한 공적자금을 탕진한 주요 죄인들을 사면하면 공적자금 낭비·유용을 조사하기 위한 합동수사반은 앞으로 어떻게 수사하란 말이냐.”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에 행한 7번째 사면에 대한 검사들과 시민단체의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면은 연말이라는 것 말고는 어떤 명분도 없는데다 사면 대상 자체도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 122명에 대한 사면복권은 주로 경제인과 고위공직자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들 중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나 최일홍 전 국민체육공단이사장은 실형을 선고받은지 2~4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면됐다. 특히 김우중 전회장이 외국으로 도피해 아직 진실여부도 드러나지 않은 대우그룹의 분식회계에 관여한 전직 임원들이 대거 사면을 받은 대목은 일반인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또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나 김선홍 전 기아그룹회장처럼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시련을 가져온 인물들마저 이번에 사면됐다. 그래서 이번 사면은 DJ정부가 퇴임을 앞두고 그간 은원을 정리하기 위해서 사면권을 남용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2002년 12월 31일자 <문화일보>
노무현 정부는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겠다고 공약했지만, 취임 후 일곱 차례 사면을 실시했다. 2007년 2월에는 취임 4주년(2월 25일)을 맞아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외환위기 10주년을 계기로 경제인 중심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에 다라 박용성‧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과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그룹 회장 등 경제인 150여명이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박용성 전 회장은 특히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된 후 1년 반밖에 지나지 않아 초고속 사면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임기 말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사면의 달인’ 배후를 알고 싶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의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한때 내로라하는 재벌 기업의 총수였다. ‘사면 3관왕’이라는 묘한 기록을 보유했다는 사실도 닮은꼴이다.
김우중 전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두 번의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는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사면에도 이름을 올리며 최초의 사면 3관왕 기록을 세웠다. 최원석 전 회장은 1995년 원전 뇌물사건에 연루됐다 사면받은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이어 1997년 개천절 특사와 2008년 광복절 특사에도 포함됐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두 사람을 ‘사면의 달인’이라고 불렀다.
특별사면은 법적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특사를 단행할 때마다 청와대는 ‘경제 살리기’ 혹은 ‘국민 대화합’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김우중·최원석 두 전직 재벌 총수 사례처럼, 대부분의 특사는 비난을 받았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게만 특사가 집중된다”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12월 26일자 <한겨레21>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인 사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인물로 꼽힌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사면 받았고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이유로 단독사면 해 논란이 됐다. 유죄 확정 4개월 만의 일이었고, 이건희 회장은 3개월 뒤 경영에 복귀했다. 때문에 ‘법치주의를 무너뜨린 사면’이라는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그럼에도 다음해 김준기 전 DB그룹 회장,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들에 대한 사면을 이어갔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단행된 광복절 특사였다.
무엇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양심수들을 외면하면서 재벌 총수들에 사면권을 집중하면서 비난 받았다.
MB, 이건희 ‘1인 특별사면’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이건희(67) 전 삼성그룹 회장 단 한 사람을 특별사면했다.
법무부는 이날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특별사면 및 특별복권을 오는 31일자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경제인 1명만을 대상으로 한 사면은 헌정사상 처음이며, 국경일이나 기념일이 아닌 연말 사면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8월 배임과 조세포탈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뒤 4개월 만에 사면을 받았다. 그는 1997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의 유죄를 선고받은 뒤 특별사면된 바 있어, 이번에 두 번째 특별사면 대상이 됐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이 전 회장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 결정을 발표하며 “이건희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현재 정지중인 위원 자격을 회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범국민적 염원인 2018년 겨울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2009년 12월 29일자 <한겨레>
박근혜 정부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사면의 특혜를 누렸다. 최 회장은 특히 이명박 정권에 이어 두 번 연속 사면되면서 재벌 특혜 논란을 낳았다. 최 회장은 횡령 혐의로 동생 최재원 SK수석부회장과 함께 구속됐다. 최태원 회장은 징역 4년, 최재원 부회장은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았지만 최태원 회장만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면서, 수감 생활은 최재원 부회장이 더 길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朴대통령, 최태원 회장 사면…김승연 회장 제외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특별사면'과 관련, "당면한 과제인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건설업계, 소프트웨어 업계 등과 일부 기업인도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고 말했다.
사면 대상에는 최태원 SK 회장과 김현중 한화그룹 부회장, 홍동욱 한화그룹 여천NCC 대표이사 등 기업인 14명이 포함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과거 2차례 사면을 받은 전력이 있어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수감 중인 LIG그룹의 구본상·구본엽 형제도 1800억원대의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등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혔음에 비춰 국민정서를 고려해 사면 대상에서 빠졌다.
-2015년 8월 13일자 <머니투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중근 부영 회장 등을 가석방하기는 했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가 경제인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이후 6년 만의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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